영화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결투(Duel)는 일반적인 의미로는 승패를 결정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을 말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참가자 둘의 상호 동의하에 입회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이는 싸움을 의미한다. 결투의 기원은 기독교 이전 바이킹 사회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추정되지만 가톨릭교회는 중세부터 귀족들의 결투와 결투 재판을 야만적인 풍습으로 보고 금지해 왔다. 최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가 개봉했다. 중세 프랑스의 결투 재판을 다룬 에릭 제이거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시대극으로 14세기 프랑스 땅에서 벌어진 두 기사의 마지막 법정 결투를 담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유서 깊은 카르주 가의 부인 마르그리트(조디 코머 분)가 남편 장(멧 데이먼 분)이 집을 비운 사이 불시에 들이닥친 장의 친구 자크(아담 드라이버 분)에게 성적 폭행을 당하면서 시작된다. 용서받지 못할 만행을 저지른 자크는 마르그리트에게 침묵을 강요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감내해야 할 불명예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크의 죄를 고발한다. 결백을 주장하는 자크에게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장은 결투 재판을 요청하고 단 한 번의 결투로 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마지막 결투가 시작된다.
영화는 중세시대 지위가 낮았던 여성의 인권과 여성차별을 담았다. 당시 여성의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연결을 위함이었고 여성의 역할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함이었다. 남성은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이자 재산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기에 여성이 남편 이외의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배신은 물론이며 남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여겼다. 영화에서처럼 강간을 당했더라도 여성은 이를 숨겨 사건을 일단락시키거나 남편으로부터 살해당하기도 했다. 당시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영화 속 마르그리트의 모습은 지금의 여성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해자인 여성이 수치스러움을 감내하면서 재판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린 영화 ‘에일리언’과 ‘델마와 루이스’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라스트 듀얼’에서 중세의 마르그리트를 빌어 현재의 여성상을 말하고 있다.
진실의 상대성을 반격한다. 같은 사건에 대한 상대성 혹은 주관성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절대적인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인간은 알 수 없다는 전제에 암묵적인 기반을 두고 서사를 전개하는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은 살인사건에 얽힌 서로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진실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마저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남기고 마무리한다. 영화 ‘라스트 듀얼’은 ‘라쇼몽’과 같은 서술 방식을 취한다. 영화는 크게 3개의 챕터로 나뉘는데 장이 말하는 진실, 자크가 말하는 진실 그리고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의 순서다. 그러나 영화에서 세 사람은 자신이 입장에서 말하지만 영화 ‘라쇼몽’처럼 진실은 상대적이라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르그리트의 입장에서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임을 명확히 밝힌다.
기사도 정신과 인권의 의미도 되새긴다. 당시 귀족들은 결투를 통해 자신의 기사도를 확인했기 때문에 결투는 기사도의 꽃이며 가장 신성한 귀족들의 일이었다. 중세 유럽의 기사도는 정의를 수호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여성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영화는 충격적인 역사적 실화를 통해 중세 기사들의 민낯을 폭로하고 있다.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중세의 야만적인 행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정의와 기사도 정신 그리고 약화되고 있는 서민들의 인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혼란스럽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기심으로 각자의 진실은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가. 영화 ‘라쇼몽’은 진실의 상대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아카데미 외국어상을 수상했다. 영화 ‘라스트 듀얼’ 또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혼란스러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리고 밝혀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