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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일과 임신, 미혼여성의 딜레마


입력 2021.10.21 14:43 수정 2021.10.21 14:44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십 개월의 미래’

대한민국 인구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망자 수가 출생아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데드 크로스’(dead cross)까지 발생했다. 문제는 해를 거듭하며 줄어드는 출산율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예산을 책정하고 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산모가 첫째를 낳는 출산연령도 32.3세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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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십 개월의 미래’는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는 미래의 모습을 다룬다. 프로그램 개발 일을 하는 스물아홉의 미래(최성은 분)는 며칠째 속이 좋지 않자 만성 숙취를 의심하지만 이내 곧 자신이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 친구 윤호(서영주 분)에게 소식을 전하고 임신중절 수술을 생각하지만, 혼란을 점점 가중시킨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당혹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미래는 일과 임신이라는 갈등상황에 놓이게 된다.


영화는 임신한 여성이 겪게 되는 불안정한 심리적 상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임신은 여성에게 있어 큰 변화를 제공하는 엄청난 사건으로 호르몬의 변화도 급격히 달라진다. 영화 속 미래가 뱃속 아이에게 ‘카오스’라는 태명을 지어준 것처럼 임신한 여성은 신체적인 혼란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혼돈의 상태가 된다. 연출을 맡은 남궁선 감독은 임신으로 인한 임산부의 심리상태와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또한 임신 중인 주인공은 물론 주변 인물이 겪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세밀히 잡아냈다. 영화는 미혼여성의 임신을 다루고 있지만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관객들은 미래라는 캐릭터에 공감하고 몰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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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동시에 일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들의 현실도 다루고 있다. 업무에 있어서 충분한 실력을 갖춘 미래지만 임신을 하고 보니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정규직 전환도 힘들고 해외 파견에도 걸림돌이 되고 만다. 미혼여성으로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 공을 세운 것도 사라지고 직장 동료에게 혐오 섞인 시선도 받게 된다. 배가 불러오는 모습에 아이들은 돼지라고 놀리기도 한다. 영화는 커리어 우먼이 임신 후 경력이 단절되고 정체성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무겁지 않게 녹여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남성이 겪는 심리적 고뇌도 놓치지 않는다. 남자 친구인 윤호는 여자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고 결혼을 결심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직장이 없다. 선배의 일을 돕고 있는 윤호를 향해 미래가 걱정의 말을 할 때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결국 그마저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새로운 가족을 위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돼지농장에 일하러 가게 된다.


젊은 세대들은 경제가 좋지 않아 취업이 힘들고 주택가격은 연일 고점을 찍는 상황에서 결혼도 힘든데 무슨 출산이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한다. 젊은 층이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도 미루는 상황에서 출산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젊은 인구가 줄어들 경우, 성장률이 하락하는 악순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저성장, 양극화 속에서 미래는 암울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영화 ‘십 개월의 미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관심사인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에 대한 고민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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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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