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희한의원 구로디지털단지점 이한별 원장.
장마가 길어지면 빨래만 눅눅해지는 게 아니다. 몸도 덩달아 무거워지고 무릎이며 어깨가 괜히 욱신거린다. 할머니 무릎이 기상청보다 정확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런데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날씨가 정말 통증을 악화시키는지, 비 오는 날의 가라앉은 기분 탓에 더 아프다고 느끼는 것인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한의학은 이 현상을 일찍부터 정리해 두었다. '황제내경'은 바람·차가움·습기, 곧 풍한습(風寒濕)이 몸에 침입해 통증을 일으킨다고 보고 이를 비증(痺證, 기혈의 흐름이 막혀 저리고 아픈 병증)이라 불렀다. 특히 습기가 주범이면 착비(着痺)라 해 무겁고 둔한 통증과 부종감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 오랜 관찰을 뒷받침하는 대규모 연구가 있다. 2019년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은 만성 통증 환자 1만3207명에게 스마트폰 앱으로 매일 통증 점수를 기록하게 하고 위치 기반 날씨 정보와 맞춰 분석한 연구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결과가 흥미롭다. '비 와서 아프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정작 강수량 자체는 통증과 무관했다. 가장 강한 변수는 습도였고 기압이 낮을수록 통증이 늘었다. 최악의 날씨 조합에서 통증 발생 확률은 평소보다 약 20% 높아졌다.
물론 반대 결과도 있다. 2024년 호주 시드니대 연구팀의 종합 분석에서는 일반적인 무릎 통증·요통과 날씨의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결과가 모순은 아니다.
꽃가루가 날려도 대부분의 사람은 멀쩡하지만,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봄마다 고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체 평균을 내면 민감한 소수의 반응이 지워질 뿐, 이미 만성 통증을 가진 사람에게는 날씨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습기에 유독 민감한 체질이 따로 있다는 한의학의 오랜 관찰과도 통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장마철만 되면 온몸이 무겁고 쑤셔요"라고 호소하는 분들이 바로 이 경우다. 임상에서는 이런 착비 유형에 몸속 습을 내보내는 율무가 주약인 의이인탕(薏苡仁湯)을, 몸이 차면서 습한 한습(寒濕) 유형의 요통·하지 통증에는 오적산(五積散)을 활용한다. 같은 통증이라도 체질과 변증(辨證, 증상의 유형을 가리는 진단)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므로 반드시 진단 후 복용해야 한다.
날씨는 바꿀 수 없지만 습기와 저기압이 몸에 남긴 영향은 치료로 되돌릴 수 있다. 한의원에서는 침 치료와 함께 뜸이나 심부 온열치료로 정체된 기혈을 풀어주는데, 온열 자극이 혈류를 늘리고 근육 긴장을 풀어 통증 역치를 높인다는 현대의학의 설명과도 맞닿는다. 집에서는 무릎 안쪽 아래 움푹한 곳의 음릉천(陰陵泉)혈을 가볍게 지압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활 관리의 방향도 달라진다. 문제는 비가 아니라 습도인 만큼 장마철에는 제습기나 에어컨 제습 기능으로 실내 습도를 50~60% 이하로 유지하고 통증이 심해진 날의 날씨를 함께 적어두면 자신만의 통증 패턴을 찾는 데 유용하다.
다만 관절이 붓고 열이 나거나 통증이 갑자기 심해졌다면 다른 질환일 수 있으므로 자가 관리에 앞서 의료기관 진료가 우선이다. 올여름 장마에는 눅눅한 집 안의 습기뿐 아니라 몸속에 스며든 습기까지, 치료와 관리로 함께 다스리는 습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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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한별 한의사·구로디지털단지 고은경희한의원 대표원장(lhb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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