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

美에 맞서 中, 첨단기술·인력·데이터 해외유출 방벽 쌓아

중국 정부가 내달부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과 데이터, 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다. 중국과 네덜란드 간의 중국 차량용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Nexperia·安世半導體)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과 미국 빅테크(기술대기업)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모기업)의 중국 AI 에이전트 스타트업인 마누스(Manus) 인수를 불허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중국이 ‘제2의 넥스페리아·마누스 사태’를 막기 위해 기술·인력·데이터의 해외 유출을 막는 통제 장벽을 높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국무원은 오는 7월1일부터 기업이나 개인이 해외투자 과정에서 국가가 제한한 상품·기술·용역·데이터를 당국의 허가 없이 해외로 이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대외투자에 관한 규정’을 시행한다고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지난 1일 보도했다. 중국 국무원 규정은 법률의 하위 규범인 행정법규로 한국의 대통령령과 유사하다.
모두 34개 조항으로 구성된 새 규정은 기업 또는 개인이 해외투자를 할 때 국가가 제한하고 있는 상품·기술·용역·데이터 등을 당국에 사전 허가를 받지 않고 해외로 유출하면 안 된다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와 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중(對中)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판국에 중국 역시 해외투자와 기술 유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맞불’ 조치로 읽힌다.
기술자들의 해외 파견도 금지했다. 새 규정은 “기술 인력을 국경을 넘어 파견하거나 다른 국가에서 근무할 인력을 배치할 때, 국경을 넘어 기술지도를 제공하거나 인력교육을 주선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가가 수출을 금지한 재화·기술·용역 및 관련 데이터를 다른 국가로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정의했다. 이 조항은 중국 AI 엔지니어의 해외 취업을 제한하는 최초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중국 고급 기술인력들의 해외 근무가 크게 제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최근 중국 최대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AI 스타트업인 딥시크(Deep Seek·深度求索) 등 민간 기업들의 AI 전문가의 해외여행까지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중국 당국이 민간 기업에 종사하는 AI 인재들을 대상으로 출국제한 조치를 부과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인들의 해외주식 투자 역시 사실상 금지했다. 새 규정 12조는 투자자가 해외에 투자할 때 승인 및 신고, 정보보고, 국경 간 자본등록 등 절차를 법적으로 끝내고 정확한 정보를 제출하며 관련 당국의 감독 및 검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오는 12일 상장 예정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앞둔 세계 최대 AI 스타트업 앤스로픽 등 미국 테크기업의 대규모 IPO가 임박하자 중국 민간 자본이 미국 증시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 유동성을 자국 증시와 첨단산업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무허가 경로 등을 통해 중국에서 빠져나간 단기성 자금이 2006년 후 최대인 무려 1조 400억 달러(약 160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필요한 해외투자 승인 및 신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자료를 제출한 경우 불법 이익을 몰수당하며 투자액의 0.1%에서 0.02%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번 규정이 개인을 기업 및 사회단체와 나란히 투자자로 명시한 점도 주목된다. 이 때문에 중국 내에서 개인의 해외투자에 대한 추가 규제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처벌 규정도 명시했다. 중국 당국은 국가가 금지한 투자로 판단할 경우 투자 중단과 자산 처분을 명령하고 불법 수익을 몰수할 수 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투자액의 최대 1%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이 해외투자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명문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투자 승인·등록 절차를 완료하지 않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할 경우 당국은 시정 명령을 내리고 불법 이익을 몰수하며 투자액의 최대 5%에 해당하는 벌금을, 시정 조치에 응하지 않을 경우 투자액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각각 부과할 수 있다. WSJ는 “이번 규정은 중국이 서방과의 기술 경쟁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새로운 증거”라고 진단했다.
중국이 보복할 권리도 부여했다. 어떤 국가가 중국 투자를 제한할 경우 중국은 해당 국가 기업들의 중국 기업과 거래를 금지할 수 있다. 이 규정은 홍콩과 마카오, 대만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에게도 적용된다. 규정 24조는 외국 정부나 국제기구가 중국 투자자에 차별적 조치를 하면 중국 당국이 해당 조치에 관여한 조직·개인을 제재 리스트에 올리고 중국 내 투자와 수출입은 물론 입국도 금지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25조는 제재에 따라 중국 기업과의 정상적인 거래를 중단하는 등의 차별적 조치를 할 경우 중국 내 수출과 투자, 인력 반입, 운송, 취업, 거주 등이 금지·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예컨대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 중국 수출통제를 따른 기업이나 개인 역시 보복 조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법무부·상무부는 공동 설명 자료를 통해 “방어적·보호적 조치”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WSJ는 사실상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제재에 대응하는 중국판 경제보복 도구라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15조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해외투자를 시행할 때 안보심사를 받도록 처음으로 규정했다. 조직과 개인은 심사에 협조해야 하고 이를 거부할 수 없으며, 심사 결정을 준수하도록 의무화했다. 32조에서는 홍콩·마카오뿐 아니라 대만에 대한 투자도 이 규정이 적용된다고 명시됐다.
헨리 가오(高國柱) 싱가포르 경영대 법학과 교수는 “자본 유출을 억제하고 중국 기업과 투자자를 미국과의 전략 경쟁 도구로 포섭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량카이인(梁開銀) 닝보(寧波)대 법학원장은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 영자신문 글로벌타임스(GT)에 “기존에는 대외투자 권익 보호와 상호주의적 반격이 산발적이었으나 이번 규정의 시행으로 통합 법체계가 구축됐다”고 말했다.
중국과학원은 앞서 지난 3월 미국의 수출통제 방법론을 역설계해 위성 양자암호통신, 전자식 사출 장치, 소형 AI 등 중국이 제한해야 할 기술 63개를 선정했다.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마누스 사례처럼 중국에서 성장한 기술기업이 해외 법인 이전과 외국자본 유치를 통해 중국의 규제망을 우회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중국 본토에서 창업한 마누스는 지난해 7월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했고, 이후 메타에 20억 달러에 매각되는 방안이 추진됐다. 중국 당국은 마누스가 중국 기술 인력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성장했음에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겨 중국 자본 비중을 희석하는 이른바 ‘싱가포르 워싱’(세탁)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했다고 판단해 인수 철회를 명령했다.
스샤오리(史曉麗) 중국 정법대 세계무역기구(WTO) 법률연구센터장은 “중국의 해외 투자가 포괄적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로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이번 규제 시행이 신속하고 시기적절하다”며 “이번 규정의 조건은 ‘싱가포르 세탁’ 전략을 통한 마누스 인수 프로젝트와 같은 투자가 불법임을 보여주며 다른 중국 기업들이 해외 투자 규정을 준수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도 중국이 해외투자 심사를 강화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자본 유출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는 한편 이미 개인의 외화 매입 한도를 연간 5만 달러로 제한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벌금이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이번 규정으로 인해 중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자금 유치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오 교수는 “어떻게 보면 이는 (중국 입장에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시도”라며 “자본 유출을 막는 동시에 자국 기업과 투자자들을 미국과의 광범위한 전략적 경쟁에서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라고 지적했다.
‘대외투자에 관한 규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푸팡젠(傅方劍) 싱가포르 경영대 교수는 싱가포르 연합조보(聯合早報)에 “이번 규정이 해외투자를 제한하기보다는 정밀관리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라며 “해외투자에 끼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선멍(沈萌) 샹송 캐피털 이사는 “민감한 기술을 보유한 민간 기술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기업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는 규제 당국의 결정에 달렸다”고 규제의 불명확성을 우려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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