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

정책은 덩샤오핑처럼…에너지 흑묘백묘 [기자수첩-정책경제]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실패로 중국 경제가 파탄 난 1962년. 덩샤오핑의 눈에 비친 중국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참새 박멸로 메뚜기떼가 들끓고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는 참상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인민에게는 이념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절박했다.
중년의 지도자 덩도 선택을 해야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였던 그가 자본주의에서 해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덩의 ‘흑묘백묘론’은 그렇게 등장했다. 이념보다 성과를,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운 그의 철학은 이후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 됐다. 오늘날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성장의 밑바탕에는 덩의 실용주의가 깔려 있다.
인민을 구했다는 평을 듣는 덩이지만 당시 그의 실용주의는 파격 그 자체였다.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에는 공산당 내에서 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권력자, 이른바 ‘주자파’로 몰려 철저히 고립됐다. 두 차례 실각을 겪은 그는 권력에서 밀려난 뒤 트랙터 수리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덩이 다시 정치 일선에 설 수 있었던 건 1977년에 이르러서였다. 이듬해부터 중국은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농업에 생산 유인을 불어넣고 시장과 외국 자본, 기술에도 문을 열었다.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1978년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는 중국 개혁·개방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놀라운 점은 덩이 사회주의 이념을 버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보더라도 그는 철저하게 인민들을 탄압했고, 일당지배 체제를 끝까지 고수했다.
그럼에도 경제정책에서만큼은 이념에 수단을 가두지 않았다. 그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이후 중국의 변화가 보여준다. 세계 최빈국에 가까웠던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거쳐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섰다.
덩의 정책 방향을 옹호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국가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단을 이념에 가두지 않았던 실용주의만큼은 곱씹어볼 만하다. 그가 보여준 실용주의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 당시 내건 ‘실용과 성과’라는 국정원칙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특히 에너지정책은 정부가 내세운 ‘실용과 성과’의 진정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꼽힌다.
정부는 인공지능(AI) 세계 3강을 목표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첨단산업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문제는 전력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활용하는 에너지믹스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상이지만 현실성 있는 대책인지는 불분명하다.
더욱이 전기는 더 필요한데 탄소는 더 줄여야 하는 모순도 있다. 그렇다고 선택을 미룰 여유는 없다. 기술패권 경쟁에서 한 번 뒤처지면 시장을 빼앗기고 산업 자체가 도태될 수 있어서다.
때문에 글로벌 산업패권을 다투는 지금, 현 정부의 정책이 우리의 실정에 맞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은 정책이라면 더욱더 살펴봐야 한단 얘기다. 지금껏 정부는 ‘비용’이란 물음에 답한 적이 없다.
결국 성패를 가를 것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늘렸느냐가 아니다.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지, 기업과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인지가 우선돼야 한다.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00GW 이상으로 확대하고, 원전의 역할을 두고 약 3개월간 공론화에 나선다고 하지만 국민의 피로감이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선택을 미룰수록 비용은 커지고 기회는 줄어든다.
다음 달 6일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는 해묵은 공방만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실용주의’를 내건 정부라면 이제 구호가 아닌 숫자로 답할 때다.
60여년 전 덩샤오핑이 던진 질문은 간단했다. 고양이가 무슨 색이냐가 아니라 쥐를 잡을 수 있느냐였다. 우리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에너지정책이 산업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는가.
우리 에너지정책에 흑묘백묘가 필요한 이유다.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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