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걱정은 내일 하셔도 됩니다 [정상환의 시대읽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9.24 07:00  수정 2026.09.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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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가장 바꾸고 싶은 건 '사적인 질문'

걱정은 말하는 사람, 상처는 듣는 사람 몫

거실에서 열 올린다고 바뀌는 건 없다

오늘만큼은 묻지 말자

추석 명절을 하루 앞둔 23일 오전 전남광주 서구 유·스퀘어종합버스터미널에서 시민들이 귀성길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추석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추석을 앞두고 해마다 나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늘 씁쓸한 공감대가 있다.


최근 조사에서도 '친척들의 지나친 간섭과 사적인 질문'이 명절에 가장 바꾸고 싶은 문화로 꼽혔다. 가족·친척 사이에서 부담스러운 대화로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 △연봉·소득 △취업·이직 △정치·사회 이슈 △결혼 등이 차례로 꼽혔다.


세태는 변했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던지는 무심한 질문과 듣는 이의 부담감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며느리에게 시댁 방문은 '가족의 만남'이라기보다 의무적 긴장을 동반하는 '휴일 근무'에 가까울 수도 있다. 남편에게는 편안한 집이지만 며느리에게는 아무래도 '남편의 집'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가를 찾는 사위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직장인에게는 '결혼은 언제 하니?', '보너스는 얼마 받았니?'라는 말이 불편하고, 대학생에게는 '어느 대학 다녀?', '그 과 취업은 잘 되냐?'는 질문이 상처가 된다.


중·고교생에게는 '좋은 대학 가야지'라는 격려를 빙자한 압박이, 초등학생에게는 '사촌 반만 닮아라'라는 비교가 싫은 말이다.


가족이라서 편하게 묻는 것인데, 가족이라서 더 아픈 말이 되기도 한다.


가족은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남에게는 묻지 않을 것을 가족에게는 쉽게 묻는다. 남에게는 조심스럽게 말할 것도 가족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지."


맞다. 걱정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걱정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상처는 듣는 사람의 몫이다.


세상이 그만큼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기 힘든 세상이기에 단박에 이런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


"요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아세요? 1년 전보다 무려 3% 이상 올랐어요."


"결혼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요. 예식장과 스드메 같은 비용만 평균 2000만원 이상 든대요."


"취업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청년 고용률이 44.1%에 불과해요."


"추석 차례상도 만만치 않아요. 전통 시장에서 4인 가족 차례상을 차리는 데 30만원 이상이에요."


볼멘소리가 나온다. 질문은 가벼웠는데 대답은 무겁다.


어르신들도 예외는 아니다.


"제 친구 시댁에서는 전세금을 보태주셨대요."


"친구는 장인이 사업 자금을 대주셨어요."


"남들은 친정에서 애들 돌봐줘요."


"요양 병원비가 비싸요. 건강 챙기세요."


"퇴직 후에는 무슨 일 하세요?"


무심코 한 자식들의 한마디에 기분이 묘해진다.


의도야 있었겠느냐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다.


그렇게 뻘쭘해진 분위기에 TV를 켜면 오히려 세상은 더 시끄럽다.


대통령 지지율이 어떻고, 부동산이 어떻고, 인사가 어떻고, 사법 체계가 바뀐다 하고, 공소 취소를 놓고 또 싸운다. 개헌 이야기도 나온다.


온통 심란한 세태다. 정치가 개인의 삶을 관통한다는 것이 실감 난다.


"정치 좀 잘하지..."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이…."


거실의 화제가 나라 걱정으로 옮겨오면 진지한 국정 토론회가 열린다.


정치적 의견 일체가 되는 가족이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라 걱정하다가 가족 관계에 걱정거리를 하나 더 만드는 꼴이 된다.


오늘 내가 목소리를 높인다고 대통령의 정책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더 국민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언론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열 내어 이야기하다 보면, 애꿎게 우리 가족의 마음만 멀어질 수 있다.


자칫 명절 분위기가 파장 날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 만큼은 정치 이야기를 접어두자.


거실에서 열 올린다고 뭐가 바뀌겠는가.


대통령을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내 말을 듣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 지지율은 다음 주에도 다시 발표될 것이고, 부동산 문제도 그대로일 것이다. 사법 논란도 계속될 것이고, 국회도 다시 고성을 주고받을 것이다.


나라 걱정은 내일 다시 하자.


뭔들 크게 바뀔 게 있겠는가.


그러니 이 즐거운 추석날, 괜히 기분 상하지 않으려면 오늘 만큼은 참자.


정치 콘텐츠 유튜브도, TV 시사프로그램도 잠시 꺼두자.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따뜻한 대화를 시도해 보자.


오랜만에 만났기에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감히 아이스 브레이킹, 그 얼음을 깨는 용기를 내보자. SNS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모르는 사람에게 좋아요를 누르며 따뜻한 댓글을 달듯 말이다.


할머니에게는, "할머니, 밥 먹고 싶었어요."


큰아버지에게는, "요즘 더 편안해 보이세요."


조카에게는, "너, 참 많이 컸네."


그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말하지 않는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아무리 가족이라도.


가족도 좋은 말을 들으면 좋고, 무심한 말에는 상처 받는다.


이번 추석에는 연봉도, 취업도, 결혼도, 집도 잠시 묻지 말자.


나라 걱정도 내일 다시 하자.


더도 덜도 말고, 오늘 만큼은 크게 웃는 한가위를 즐기자.


오늘은 송편을 맛나게 먹자.


글/ 정상환 자유시장연구소 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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