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수의 난 – 이번에는 고구려다! [정명섭의 실패한 쿠테타 역사㊵]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7.21 14:06  수정 2026.07.21 14:06

서기 1217년은 최충헌의 세 번째 허수아비 고종이 즉위한 지 4년째 되는 해이자 몽골에게 쫓긴 거란의 잔당들이 쳐들어온 지 2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집권자 최충헌이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고, 제대로 된 군대를 파견하지 않으면서 고려군은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거란족들을 제대로 물리쳐서 쫓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거란족들은 항복한 고려군이나 천대받던 양수척들을 이용해서 개경의 성문 앞까지 와서 병사들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납치했다. 최충헌은 자기가 거느린 사병들은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서경병마사이자 상장군 최유공에게 명령해서 서경의 군대로 하여금 거란족을 물리치게 했다. 하지만 최유공은 부하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수탈하면서 민심을 잃었다. 그런 와중에 전쟁터로 나가라고 하자 부하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결국 그해 6월, 북쪽으로 행군하던 서경의 병사들 중 한 명인 최광수가 반기를 들었다.


마을 신당ⓒ직접 촬영



최광수(崔光秀)는 출전을 수긍하지 않고 독기(纛旗)를 세워 군사를 불러 모은 후 되돌아서 서경으로 향하였다. 최유공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김성은 술에 취해 고꾸라져 인사불성이었다. 최광수가 마침내 서경에 웅거해 반란을 일으켜 고구려흥복병마사 금오위 섭상장군(高勾麗興復兵馬使 金吾衛 攝上將軍)이라 자칭하고 막료들을 임명하여 배치한 후 정예군을 모았다.

고려사 세가에는 관련 기록이 없고, 오히려 전라초군별감 홍보가 보고한 전주의 군사들이 일으킨 반란만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최광수의 반란은 정의라는 관리의 열전에 자세히 나와있다. 최광수는 병사를 뜻하는 사졸이었다. 하지만 독기 혹은 둑기라고 불리는 깃발은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 치우의 머리를 상징하는 깃발로 소의 꼬리로 만들었으며 끝에는 삼지창이 붙어있었다. 이 깃발을 들었다고 병사들이 따른 것이 아니라 아마 그것을 든 최광수의 카리스마나 그의 주장에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최광수는 어떤 주장을 내세우면서 서경의 병사들을 휘어잡았을까? 오래 끄는 전쟁에 대한 염증, 그리고 전쟁을 이겨서 백성들을 보호하겠다는 마음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최충헌의 자세, 그리고 그런 최충헌에게 말 한마디 못하는 임금과 대신들에 대한 분노가 차근 차근 쌓였을 것이다. 거기다 지휘관이라도 제대로 처신했다면 모르겠지만 최유공은 병사들을 괴롭히는 것에만 열중했을 뿐 전쟁을 승리로 이끌만한 자세와 능력이 없었다. 아마 이 부분이 결정적 이었을텐데 이대로 나갔다가 최유공의 졸렬한 지휘로 인해 개죽음을 당할 게 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평양인 서경으로 돌아온 최광수는 뜬금없이 고구려를 내세운다. 최광수는 아마도 청주 사람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갑자기 고구려를 내세운 이유는 서경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로 보인다.


김사미와 효심, 그리고 이비와 패좌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신라의 부흥을 내세운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고구려는 당시 신라보다 훨씬 더 이전에 멸망한 나라다. 그런데도 고구려 부흥을 외치고 그것이 호응을 얻었다는 점은 현실의 고려가 너무나 못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기다 서경은 묘청과 조위총의 난 때 개경 세력의 토벌을 당해서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개경과 맞먹을 뻔 했던 정치적인 위상도 많이 하락한 편이었다. 그런 일들을 겪은 서경 주민들의 마음 속은 불만으로 가득찼을 것이고 최광수는 그 지점을 잘 파고든 것이다. 그는 단순히 고구려의 부흥을 외치는 정도가 아니라 막료들을 임명하고 북계의 여러 성에 사람을 보내서 지지세력을 모으려고 했다. 거란족의 침략으로 인해 북쪽이 혼란한 상황에 최광수가 고구려 부흥을 내걸고 세력을 모으는 그야말로 난장판 일보 직전이었다. 이 시점에서 최광수와 고고려에게는 불행하고, 최충헌과 고려에게는 행복한 일이 일어났다. 정의가 움직인 것이다.


어릴 때 아명이 정준유인 정의는 청주사람으로 최광수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한다. 그는 최광수의 행동을 못 마땅하게 여기고 처벌할 기회를 노린다. 고구려 부흥을 내걸고 지지세력을 모으던 최광수는 신당 같은 곳을 다니면서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반란이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정의는 김억과 필현보를 비롯한 10명의 군인을 데리고 소매 안에 도끼를 숨긴 채 최광수를 만나러 간다. 아마도 반란에 가담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것 같다. 같은 고향 사람이 10여 명의 부하를 데리고 가담하기를 청하자 최광수는 아마 별다른 의심 없이 기뻐하면서 그들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빈틈을 노린 정의가 숨겨둔 도끼로 단숨에 내리쳐서 최광수를 죽인다. 그리고 그의 동조자이자 지지자들 8명도 함께 죽인다. 삽시간에 반란군의 지휘부를 제거한 정의는 나머지 가담자들에 대해선 별다른 처벌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민심을 다독거린다. 그것으로 고구려 부흥을 위한 반란은 짧게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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