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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기계와 조화, 러닝머신 위 오리…레이첼 윤이 포착한 삶


입력 2025.04.29 15:59 수정 2025.04.29 16:00        이예주 기자 (yejulee@dailian.co.kr)

얼핏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조합 투성이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9일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G Gallery)에서 작가 레이첼 윤의 개인전 '노 스웨트'(NO SWEAT)가 열렸다.


ⓒ지갤러리

레이첼 윤은 조각과 설치를 기반으로 한 작업물을 선보이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중고로 거래되는 마사지기와 러닝머신 기계, 인공 식물을 활용해 격렬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날 레이첼 윤은 "한국은 아시아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라며 "한국을 1월에 처음 방문했는데, 다르지만 익숙함을 느낄 수 있어서 놀라웠다. 특히 빠르게 움직이는 자본주의적 사회 시스템이 미국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이런 기기들이 왜 만들어지는가', '인간에게 시간이 없어지며 해낼 수 없게 된 부분을 기기가 대체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전시장 곳곳에서 러닝머신, 전동 육아용품, 마사지 기기 등이 움직이고 있었다. 레이첼은 "작품에 사용된 기계는 모두 중고 제품으로 직접 구입한 것"이라며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구입하지만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을 때 물건을 요하는 사람에게 넘긴다. 이 과정에서 충족되지 않은 욕망과 새로운 기대감을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계는 움직임을 반복하지만, 사우나와 헬스장에서 생기는 땀을 얻을 수는 없다. 이 모습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하는 노력이 허황될 때나 거짓으로 보여질 때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더불어 "다이어트 기기 위에 대나무가 있고, 사우나에는 원적외선이 나온다. 우리는 어떠한 기대를 품고 공간에 머물거나 기기를 소비하지만 사실은 이것들이 정확히 어떤 효능을 갖고 있는 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또 인조식물들에게는 생장등을 켜 놓았는데, 이것은 영양분을 공급하는 기기를 배치했지만 그게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모르는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앞선 작품들과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지갤러리

전시장 중앙에는 러닝머신 위를 뛰고 있는 오리 가족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에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는 레이첼은 "부모님과 나의 모습"이라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온 가족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바깥의 창문으로 진짜 자연을 볼 수 있지만, 정작 오리 가족은 러닝머신에 설치된 유리 액자 속 재현된 자연을 보며 달려나간다"고 설명했다.


또, 조화를 이용한 것에 대해 "식물이 가지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다. 완벽하게 피어있는 상태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전시명인 '노 스웨트'가 '문제 없어'(No problem)라는 뜻을 가진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전시를 보여줄 때는 문제 같은 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힘을 많이 들였고 땀을 많이 흘렸다"고 전했다.


망가지기 쉬운 중고 제품을 이용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레이첼은 "기계가 잘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고장나고 멈추기도 한다. 그렇지만 고장이라는 서사도 작업에 흡수해 '멈출 때까지 달린다'는 이야기를 더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계들은 쓸모를 다하거나 고장 나면 버리고 교체하도록 만들어지는데, 그런 식으로 한 행위를 반복하다 망가져 버리는 순간이 인간이 심리적으로 한계에 치닫는 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멘붕'에 치닫는 순간은 너무나 감정적이라 작품이 부서지는 순간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간담회 말미 레이첼은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전시에 사용된 기기는 모두 신체와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 행위들은 어떻게 보면 사적이고,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행해졌을 땐 스스로를 많이 공개해야 하는 행위다. 그런 것들이 인간의 접촉 없이 이뤄진다는 것에 대한 미묘한 지점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기계가 갖고 있는 친밀성과 사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 작업적인 내용에도 연결하게 됐는데, 최근엔 천천히 움직이는 기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천천히 움직이면 움직임을 조종하기가 쉬울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느껴지는 에로틱함도 더해진다. 기계가 스스로 몸이 되는 자체로도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들을 조금씩 작업해서 더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노 스웨트'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린다.

이예주 기자 (yeju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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