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서 후배 공개 저격…심수봉이 놓친 대선배의 품격 [초점]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9.23 13:15  수정 2026.09.2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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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저 선수(김다현) 내보내지 마라”…도 넘은 훈수

“누구인지 몰랐다…망신 주기 위해 한 말 절대 아냐” 사과

같은 고민한 이미자는 후배 무대에 올려 ‘맥’ 이었다

지난 20일 전북 진안군에서 열린 ‘2026 진안홍삼축제’의 ‘제10회 진안고원 트로트 페스티벌’에서 불미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원로 가수 심수봉(71)이 54살 어린 후배 김다현(17)을 관객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날 김다현은 첫 순서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연호 속에 공연을 마쳤다. 이어 무대에 선 심수봉은 두 곡을 부른 뒤 “제 앞에 노래 부른 여자가 제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젊은 아가씨가 노래가 뭔지, 삶이 뭔지도 모르는 아가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앞으로 제 앞에 저 선수를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세대가 한 무대에 어우러져야 할 지역 축제가 대선배의 공개 면박으로 얼룩진 순간이었다.


반세기 가까이 가요계를 지켜온 심수봉의 기준에서 보면, 10대 후배의 창법이나 무대 방식이 자신의 음악관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심수봉은 다음 날 낸 사과문에서 “평소 가요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있었고, 당일에는 행사장 소음으로 큰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원로로서 가요의 본질과 후배들의 방향을 고민하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소신을 드러낸 때와 장소, 그리고 방식이다.


트로트 가수 심수봉(왼쪽)과 김다현 ⓒ데일리안DB, 현컴퍼니

조언과 쓴소리에도 허용되는 자리가 있다. 심수봉은 2023년 12월 MBN ‘현역가왕’에 스페셜 마스터로 출연해 김다현의 무대를 직접 심사한 이력이 있다. 당시 1대1 대결에서 그는 김다현 대신 상대 가수를 택했다. 평가가 전제된 경연장에서 심사위원이 내리는 냉정한 판단은 역할에 따른 정당한 몫이다.


그러나 축제 무대는 성격이 다르다. 가수의 서열이나 기량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출연자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건네는 자리다. 반박할 기회조차 없는 17세 미성년 후배를 ‘여자’ ‘아가씨’ ‘선수’라 지칭하며 깎아내린 것은 애정 어린 조언이라기보다 지위를 앞세운 일방적 면박에 가깝다.


심수봉은 사과문에서 “앞 순서 가수가 정확히 누구인지 몰랐고, 특정인을 망신 주기 위해 한 말은 절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핵심은 ‘누구인지’가 아니다. 설령 대상이 누구인지 몰랐다 해도, 방금 무대를 마친 동료 가수를 수많은 관객 앞에서 공개적으로 깎아내렸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인지도 모르는 후배를 향해 그런 말을 했다는 점이 더 아프게 들린다.


같은 고민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원로도 있다. 지난해 4월 66년 가수 인생을 마무리한 이미자다. 그는 고별 무대의 제목을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으로 정했다. 전통가요의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걱정에서 출발한 무대라는 점에서, 문제의식의 뿌리는 심수봉의 ‘걱정과 근심’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공연-맥을 이음' 공연 무대에 함께 선 (좌측부터)조항조, 주현미,이미자, 정서주, 김용빈ⓒ쇼당이엔티

하지만 이미자가 걱정을 푸는 방식은 후배를 무대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는 고별 공연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에 후배 주현미와 조항조를 대동했다. 그리고 “노래한 지 66년째 되는 해입니다만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했다. 전통가요가 사라지지 않도록 대를 이을 사람을 찾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기 공연에 게스트를 세우지 않는다는 오랜 원칙도 깼다. 마지막 무대에는 주현미·조항조와 함께 ‘미스트롯3’ 진 정서주, ‘미스터트롯3’ 진 김용빈 등 젊은 가수들을 세웠다. 공연의 대미는 이들과 함께 부른 ‘섬마을 선생님’이었다. 지적이나 배제가 아닌 무대 공유와 실천적 격려로 세대교체의 길을 연 것이다. 가요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은 같았지만, 한 사람은 포용을, 다른 한 사람은 배척을 택했다.


사건 이후의 대처는 누가 더 어른스러웠는지를 보여줬다. 김다현은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자신의 무대를 모니터링하다 해당 발언을 접하고 한참을 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친 김봉곤 씨에 따르면 김다현은 평소 심수봉을 존경해 왔다. 첫 전국투어 콘서트에서는 직접 피아노를 연습해 ‘백만송이 장미’를 불렀을 정도다. 존경하던 선배에게 들은 말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그럼에도 김다현은 이튿날 심수봉과 직접 통화해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어 SNS에 “저는 마음 잘 추스를 테니 걱정 마시고, 우리 밝은 모습으로 만나자”라고 적어 오히려 팬들을 다독였고, 추석 연휴 경남 고성 엑스포 무대 등 예정된 일정을 그대로 소화할 예정이다. 김봉곤 씨도 공식 석상에서 ‘아가씨’ ‘선수’를 입에 올리며 인생을 논할 일은 아니었다고 아쉬움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할 말이 있었다면 따로 얼마든지 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감정적인 비난은 삼갔다. 이번 논란에서 성숙함을 보여준 쪽은 10대 후배와 그 가족이었다.


심수봉의 빠른 사과와 김다현의 너그러운 수용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심수봉은 사과 과정에서 김다현이 ‘백만송이 장미’를 피아노로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연습했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도 했다. 그 마음이 무대 위에서 먼저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대중이 ‘원로’에게 기대하는 것은 히트곡의 수나 활동 연수를 넘어, 긴 세월을 견딘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넉넉함이다. 대선배의 품격은 이제 막 길을 걷기 시작한 후배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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