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예술인들 네 번째 집단행동
"비전문가 예술감독 부끄럽고 통탄할 일"
문체부 측 "인선 이유, 과정 등 관련 입장 정리 중"
문화체육관광부가 단행한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초대 단장 겸 예술감독 인선을 두고 공연예술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8개 공연예술협회와 현장 예술인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예술인들이 보여준 네 번째 집단행동이다.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은 2011년부터 약 15년간 연구와 창작, 관객 개발을 이어온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를 모태로 지난해 별도 극단으로 분리·개편됐다. 조직 분리 이후 1년 넘게 수장 자리가 비어 있었던 만큼, 극단의 정체성과 비전을 세울 초대 수장에 현장의 관심이 컸다.
어린이·청소년극은 성인 연극의 부속 영역이 아니다. 영아부터 청소년, 장애 아동까지 발달 단계와 감각·정서적 특성을 다뤄야 하는 독립된 전문 영역이라는 것이 현장의 오랜 주장이다. 문체부는 임명 보도자료에서 신임 단장이 축적해 온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언급했으나, 예술인들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행정 역량이 예술적 전문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문화연대가 청와대 앞에서 연 이재명 정부 문화예술 인사정책 규탄 기자회견 ⓒ뉴시스
개인 서명자 맨 앞에 이름을 올린 김우옥 한예종 초대 연극원장은 “내 인생을 바친 이 분야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홀대와 모독을 당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흘렀다”고 했다.
방지영 한국아시테지 이사장은 “우리 어린이·청소년극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내년 아시테지 세계총회도 한국에 유치했는데, 가장 바쁘게 일해야 할 시기에 비전문가 예술감독이라니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라고 했다. 세계총회를 1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인선의 무게는 더 크다.
이번 자리는 단장과 예술감독을 겸한다. 조직 운영과 대외 협력을 위한 행정 역량이 필요한 자리인 것도 사실이다. 다만 경영과 예술이 한 사람에게 묶이면, 정량화하기 쉬운 행정 성과가 장기적인 예술적 비전을 가리기 쉽다. 분리·개편의 명분이 학교·지역 협력 강화였던 만큼 이 우려는 가볍지 않다.
9월 11일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초대 단장 겸 예술감독에 임명된 어연선 전 광명문화재단 대표(오른쪽)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휘영 장관 SNS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현장 공연예술인 748명이 연대 서명해 성명서를 내고 공개 포럼을 열었고, 문화연대 등은 청와대 앞에서 정부의 문화예술 인사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6월에는 국립발레단 단원들이 캠프 출신 인사가 단장으로 거론되는 현실을 우려해 입장문을 냈다. 황교익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서승만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인선을 두고도 셀럽 인사, 낙하산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진보 계열 단체까지 규탄에 나섰다는 것은 이 문제가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안마다 배경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어떤 기준과 절차로 그 자리를 채웠는지 설명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성명서에도 “초대 예술감독의 경력에서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찾아볼 수 없다”며 “문체부는 어떠한 기준과 과정을 통해 초대 예술감독의 전문성과 적합성을 검증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문체부는 이번 인선의 이유와 과정에 대해 “입장을 정리 중이며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임명 나흘 째다.
첫 단추가 어떻게 끼워지느냐에 따라 기관이 그릴 궤도 전체가 달라진다. 공모가 있었는지, 심사위원회는 구성됐는지, 지원자는 몇 명이었고 무엇을 기준으로 골랐는지. 예술인들이 요구한 것도 결국 이것이다. 절차가 설명되지 않는 한 어떤 인사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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