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시대에 던지는 연대와 치유,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9.22 09:26  수정 2026.09.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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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에반 핸슨 역에 박강현·임규형·나현우

“누군가 나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 주기를, 이 철저한 고립 속에서 나를 찾아내 주기를.”


우리는 때때로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철저한 혼자임을 느낀다. 언제나 타인과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단절감에 시달린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이러한 현대인의 짙은 고독과 소외감을 파고든다. 불안도, 외로움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보편적인 위로를 건네며 두 번째 시즌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극은 사회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외톨이 고등학생 에반 핸슨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심리 치료를 위해 스스로에게 쓴 편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급생 코너 머피의 유서로 오해받으며 사건이 시작된다. 코너의 부모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 에반의 작은 거짓말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간다. 하지만 이 거짓말은 자식을 잃은 코너의 가족에게, 그리고 소외감에 시달리던 학교 친구들과 에반 자신에게 뜻밖의 위안을 준다.


ⓒ에스앤코

극은 거짓말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져가는 에반의 심리적 궤적을 좇는다. 작품 속에는 에반뿐만 아니라 상실감에 갇힌 코너의 부모, 워킹맘으로서 아들에게 다가가지 못해 애태우는 에반의 엄마 등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들의 서사가 촘촘하게 엮여 있다.


이를 통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어, 타인과의 소통에 목말라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끝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와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강렬한 연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작품은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휩쓴 최정상 창작진의 결과물이다. 영화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으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 듀오가 음악을 만들었고, ‘렌트’ ‘넥스트 투 노멀’의 마이클 그라이프가 원작 연출을 맡았다. 극본을 쓴 스티븐 레븐슨은 섬세한 심리 묘사로 극의 깊이를 더했다. 2017년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상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입증했다.


한국 프로덕션은 원작의 텍스트와 음악을 유지하되, 무대와 연출을 국내 정서에 맞게 재구성한 논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제작됐다. 2024년 아시아 최초 라이선스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약 2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았다.


ⓒ에스앤코

작품의 가장 큰 무기는 단연 음악과 시각적 연출의 조화다. 팝 록 베이스의 넘버들은 요동치는 인물들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극대화한다. 무대 연출은 현대 디지털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옮겨왔다. 무대를 둘러싼 다수의 스크린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소셜 미디어 피드는 물리적으로는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가상 공간에서는 철저히 노출된 시대의 역설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정보의 확산과 군중 심리 등 온라인의 명암을 날카롭게 포착한 무대미술은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다.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 에반 핸슨 역에는 박강현, 임규형, 나현우가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10대 소년의 불안과 성장의 과정을 그려낸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박강현은 탄탄한 발성과 시원한 가창력으로 고난도의 넘버들을 흔들림 없이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는다. 폭발적인 가창력 못지않게 연기의 디테일도 돋보인다. 틱 증상이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 미세한 신체의 떨림 등 에반의 심리적 압박감을 정교하게 빚어냈다. 소심한 소년이 거짓말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죄책감,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는 서사가 그의 목소리와 섬세한 연기를 통해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디어 에반 핸슨’은 단순한 청춘물을 넘어선 웰메이드 심리극이다.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이 빚어내는 파열음 속에서, 끝내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는 과정이 긴 여운을 남긴다. 거짓말이라는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서 피어난 진실한 위로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위안을 건넨다. 공연은 11월 1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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