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하 작가, 밥솥과 포장마차를 지나 케이팝으로 향하는 이유 [D:인터뷰]

데일리안(프랑스, 아비뇽) =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7.17 12:43  수정 2026.07.17 12:43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까지 아비뇽페스티벌서 공연

“연극은 이 시대의 속도를 가장 정확히 전달하는 매체”

“저는 어렸을 때 연극을 싫어했던 사람입니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에서 만난 구자하 작가는 이 이외의 고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대 위의 정형화된 관습들이 오히려 창작을 제한한다고 느끼고 일찍이 한국을 떠난 그는, 벨기에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무대를 구축해왔다.


구자하 작가의 '한국 연극의 역사' ⓒ아비뇽페스티벌

연출가나 배우라는 고정된 타이틀 대신 ‘무대 위의 메이커(Maker)’를 자처하는 그는 기존 연극의 대안을 미술계의 ‘플럭서스(Fluxus)’ 운동에서 찾았다. 플럭서스는 1960년대 백남준 등이 주도했던 전위 예술 운동으로, 미술관에 갇힌 예술 대신 일상의 즉흥적인 행위와 관객의 참여를 무대로 가져온 흐름이다. 구 작가 역시 완성된 대사 대신 음악과 영상, 기계 장치와 관객의 현장 참여를 주요 언어로 삼아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었다.


이 독창적 시도는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페스티벌 측은 이례적으로 구 작가에게 극장 한 곳을 꼬박 2주간 통째로 내어주며 그의 대표작 3개를 동시에 선보일 것을 제안했다. 본래 페스티벌 측이 제안했던 것은 그의 초기작이었으나, 구 작가는 전 연령대 관객이 호흡하기에 더 적합한 작품을 직접 제안해 라인업을 완성했다.


“사실 유럽의 대형 페스티벌에서는 서너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벨기에나 브라질에서도 하루에 세 작품을 연달아 총 6시간 동안 공연하는 일정을 소화하곤 했죠. 이번에도 내심 네 작품까지 고민했지만, 한 극장을 제가 다 차지하면 다른 아티스트들의 공연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세 작품으로 절충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보다는, 아비뇽은 비즈니스 미팅과 교류가 워낙 많아 그에 따른 에너지가 더 많이 쓰이는 편입니다.”


이번 축제는 그가 지난 10여 년간 구축한 세계관을 종합해 보여주는 기회였다. ‘하마티아 3부작’ 중 사회적 고립을 밥솥이라는 오브제로 풀어낸 대표작 ‘쿠쿠’와 한국 연극계를 돌아보는 ‘한국 연극의 역사’가 무대에 올랐고, 이주민의 삶을 포장마차라는 공간으로 풀어낸 최신작 ‘하리보 김치’까지 차례로 관객을 만났다.


구자하 작가의 '하리보 김치' ⓒ아비뇽페스티벌

특히 ‘하리보 김치’는 무대 위에 관객을 올려 직접 음식을 대접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노릇하게 구워낸 김치전, 얼음을 띄운 오이냉국(미역냉국), 바삭한 버섯튀김 그리고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젤리까지 무대에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소품을 넘어 정체성과 기억을 매개하는 장치다.


“음식과 관련해서, 그리고 냄새와 관련해서 사람마다 각자 다른 경험과 트라우마, 기억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5·18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 영향은 여전히 제 삶에 존재합니다. ‘냄새’라는 감각을 통해 아버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제 자신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음식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성질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말로 하는 언어보다 음식 문화를 통해서 서로의 차이를 더 깊이 이해하고 정답게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럽에서 활동한 지 어느덧 15년. 벨기에를 기반으로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지만, 그는 유럽에서는 ‘한국인 아티스트’로, 한국에서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로 분류되는 경계에 서 있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해서 세계를 돌며 무대를 만드는 건, 연극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연극의 가능성은 지금 이 시대에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모든 매체의 속도가 워낙 빨라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속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예술이니까요. 그렇기에 무엇보다 참여적이고 정치적이며 사회 반응적입니다. 관객과 마주하는 그 순간을 통해 연대의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구 작가는 현재 작업 중인 신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다음 프로젝트로 케이팝을 주제로 한 ‘비투비 케이팝(B2B K-POP)’을 준비 중인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연출가로서 네 명의 퍼포머를 이끌 예정이다.


“이 작업은 케이팝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케이팝이 가진 성질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자본의 시스템을 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콘서트와 연극 사이의 하이브리드 형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중음악이 가진 힘을 활용해 또 다른 사회 운동을 만들 수 있을지, 동시대 연극에 어떤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을지 매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하고자 합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인터뷰'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