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흔든 한국어…티아고 총연출 “전통·혁신 조화에 유럽 매료” [D:인터뷰]

데일리안(프랑스, 아비뇽) =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7.16 10:44  수정 2026.07.16 10:44

“올해 한국어 초청, 일회성 아닌 지속적 교류의 시작”

제주 4·3 등 역사적 비극 다채로운 시선으로 소화

10여 편 유럽 순회 공연 논의 중

세계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 축제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이 올해로 80회를 맞이했다. 1947년 프랑스 연출가 장 빌라가 창설한 이 축제는 국가가 아닌 ‘언어’를 중심으로 매년 초청 언어를 선정한다.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에 이어 올해 네 번째 초청 언어로 ‘한국어’가 선정됐다.


15일(현지시간) 현지에서 만난 티아고 호드리게스 총연출은 “이번 초청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며 한국 공연예술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시작점”이라고 강조했다.


아비뇽 페스티벌이 국가 단위가 아닌 언어를 초청하는 이유에 대해 “역사를 통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쓰이고 말해지는 언어의 힘과 그 언어의 세계적인 차원”이라며 “여러 가지 이유로 분단되거나 나눠져 있는 것을 넘어, 언어와 예술을 통해 서로 교류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초청 언어를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초청 구상은 2022년 가을 서울 방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최석규 예술감독 등을 만나 한국 동시대 공연예술의 역동성을 확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비뇽 페스티벌이 지난 28년간 한국 예술가를 한 번도 초대한 적이 없다는 문제의식도 작용했다.


최근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과 더불어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유럽 내 관심은 높아졌으나, 상대적으로 동시대 한국 공연예술은 덜 알려져 있었다.


호드리게스 총연출은 “일반 관객뿐만 아니라 유럽과 프랑스의 전문가들조차도 한국에서 어떤 동시대 예술가들이 공연예술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며 “한국어 초청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2026년 한불 수교 140주년이라는 시기적 의미가 더해지며 올해 한국어가 최종 초청 언어로 선정됐다.


올해 축제에는 한국 예술가 7명의 작품 9편이 무대에 오른다. 호드리게스 총연출을 비롯한 아비뇽 측은 2024년부터 매년 두 차례 이상 한국을 직접 방문해 예술가들을 만나고 실황 공연을 확인하며 작품을 엄선했다. 판소리 명인 이자람을 비롯해 다큐멘터리 형식 연극을 선보이는 구자하, 이경성 연출 등 장르와 미학적 특성의 균형을 고려했다.


호드리게스 총연출은 초청작들이 핵심 주제로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꼽았다. 그는 “한국 예술가들이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이러한 모습들이 프랑스 관객들이 자국 공연에서 느끼지 못하는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주었고, 새로운 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특히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품이 세 편이나 포함된 점도 눈길을 끈다. 호드리게스 총연출은 이경성 연출의 공연과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 학살을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주제에 대해 여러 작품을 올리는 것이 좋을지 고민도 했지만, 똑같은 주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주저않고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 공연에 대한 현지 관객과 유럽 공연 전문가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초청된 작품 중 상당수가 유럽 또는 아비뇽 초연임에도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축제 기간 중 다른 국가의 연극을 섞어 보지 않고 한국 공연만 전편 관람하는 마니아 관객층이 형성될 정도다.


호드리게스 총연출은 “관객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만장일치로 매우 긍정적이었고, 예술가와 관객의 만남은 폭발적이었다”며 “현재 한국 작품 약 10편이 다른 해외 페스티벌 초청 및 유럽 순회 공연을 논의 중이다”라고 성과를 전했다.


아비뇽 페스티벌 측은 올해 행사를 기점으로 한국 공연예술계와의 협력을 한층 더 심화할 계획이다. 당장 올가을 서울에서 열리는 SPAF에서는 ‘아비뇽 포커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에는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를 배우 이혜영과 이자벨 위페르가 줄리 델리케 연출 하에 낭독하는 공연이 포함되어 있으며, 아비뇽에서 첫선을 보인 후 한국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호드리게스 총연출은 “올해의 만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한국 정부, SPAF 등과 긴밀히 협력하며 한국 예술가들이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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