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백'부터 '나의 어머니'까지...영국 평단 흔든 현대 희곡들 한국 상륙
국내 연극계에서 이른바 ‘문제작’으로 평가받는 영미권 현대 연극을 도입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와 에든버러 등에서 화제를 모으거나 논쟁 중인 현대 희곡을 빠르게 수입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흐름은 관객에게 위로나 안도감 대신 가감 없는 화두를 던진다.
연극 '플리백' 김히어라 ⓒ브로쉬씨어터
대표적인 사례로는 현재 국내 초연 중인 연극 ‘플리백’과 올해 상반기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상연된 ‘더 와스프(말벌)’, 그리고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린 ‘그의 어머니’가 있다. 이들 작품은 모두 영국 초연 당시 현지 평단과 관객에게 큰 충격을 줬던 현대 희곡들이다. 한국 무대 역시 이러한 영국발 신작들을 수입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높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세 작품은 성, 폭력, 뒤틀린 모성 등 전통적인 사회적 금기나 외면하고 싶은 인간 심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정면으로 다룬다.
‘플리백’은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뒤흔든 화제작이다. 초연 당시 ‘에든버러 프린지 신작상’(Fringe First Award)과 ‘더 스테이지 베스트 1인 공연상’(The Stage Best Solo Performer)을 수상했다. 이듬해 런던 호소 시어터에서 진행한 앙코르 공연으로는 영국 비평가협회 연극 어워드(Critics' Circle Theatre Awards)에서 ‘최우수 유망 극작가상’을 수상하고, 오프 웨스트엔드 시어터 어워드(Off West End Theatre Awards)에서 ‘최우수 여자 연기상’과 ‘최우수 신인 극작가상’을 석권했다. 2016년엔 BBC와 아마존을 통해 TV 시리즈로 제작되며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극작가이자 배우인 피비 월러브리지의 1인극으로, 겉으로는 냉소적이고 거침없어 보이는 한 여성이 내면에 품은 깊은 상실감과 성적 욕망, 그리고 죄책감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다룬다. 주인공이 무대 위에서 객석을 향해 직접 자신의 감정과 비밀을 털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의 실수와 돌발 행동, 성적 농담과 냉소를 통해 거침없는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죄책감, 상실, 자기혐오가 날카롭게 숨어 있다. 동시에 이러한 감정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자기 인식을 무너뜨리고, 삶의 균형을 흔드는지를 집요하게 포착한다
연극 '그의 어머니' 진서연 ⓒ국립극단
지난 4월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고, 현재 지역 투어 중인 ‘나의 어머니’는 영국 유명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의 실화 바탕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2010년 초연 후 캐나다 극작가상, 영국 크로스 어워드 신작 희곡상을 수상했다. 2025년 한국 초연도 관객들의 호평에 힘입어 2026년 ‘관객 Pick 공연’으로 선정돼 재연으로 이어졌다. 작품은 미성년자 아들이 성폭행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상황에 직면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범죄자 임에도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려는 모성애의 본능과, 엄격한 이성적 윤리 기준 사이에서 격렬하게 갈등하는 인물의 내면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더 와스프’는 영국 극작가 모건 로이드 말콤의 대표작으로, 2015년 영국 런던 햄스테드 극장에서 초연된 후 한국에서 처음 관객을 만났다. 작품은 학창 시절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성인이 되어 20년 만에 재회하며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다. 사적인 복수극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인간 내면에 잠재된 가학성과 가정 내 학대가 어떻게 한 인간을 파괴하고 폭력을 대물림하게 만드는지 추적한다.
이처럼 세 작품은 관객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없는 주제를 선택하여 인간의 취약성을 서술한다. 동시에 화려한 무대 장치나 대도구를 배제한 미니멀리즘 형식을 기본으로 삼는다. 무대 효과를 최소화하거나 배우 맞춤형으로 간소화한 자리에 배우의 연기력과 밀도 높은 대사를 배치하여 관객이 극 중 상황 자체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외 현대극의 유입과 흥행은 국내 연극 관객의 변화와 직결된다. 상투적이고 예측 가능한 서사 구조나 일방적인 위로에서 벗어나, 지적인 자극과 깊이 있는 사유를 원하는 관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연극계에서 말하는 문제작은 사회적 통념과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시대가 당면한 과제를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질문하는 예술적 도전을 의미한다”며 “영미권의 불편한 신작들이 국내 무대에서 연이어 성공하는 현상은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서사의 확장성을 증명한다. 관객에게 극장 문을 나선 이후에도 지속적인 고민과 토론을 이어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흐름은 한국 연극의 지평을 넓히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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