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공습으로 이란 군사 목표물이 폭발하고 있다. 이 사진은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가 지난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게시한 영상 속 한 장면. ⓒAFP/연합뉴스
미·이란 전쟁이 사실상 재개됐다. 휴전 협정은 휴지 조각이 되고 미국이 며칠째 이란 군사 시설과 핵시설에 대규모 폭격을 계속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휴전 협정 백지화의 몇 가지 이유 중에는 이란이 트럼프 암살을 획책한다는 첩보도 포함된다.
이란, 떼라도 쓸 수밖에
모름지기 협상이란 양 당사자가 포기하기 어려운 아까운 뭔가가 남아 있을 때 성립하고 유지된다. 이란 입장에서는 국토가 초토화되고 수십 만이 사망한 현재로서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재건기금 5000억 달러는커녕 당장 급전을 쓰고 싶어도 2000억 달러 규모인 하메네이 비자금도 여전히 묶여 있다. 뭐든 떼를 써야 할 판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란을 석기시대로 보내겠다고 협박하며 이란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짓밟았다.
이 달 초 하메네이 장례식을 치르면서 이란 혁명수비대와 강경한 국민들은 미국에 대한 ‘피의 복수’를 다짐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란이 정규전으로는 미국에 이길 수 없으니 게릴라전과 테러 밖에는 수단이 없다. 트럼프 암살이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게릴라전, 테러 아니겠나? 그러니 이란 입장에서 트럼프 암살 계획은 당연한 순서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쟁의 체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벌인 체면이 서지 않는다. 무기 재고를 모두 소진해 가며 넉 달이나 전쟁을 치른 체면이 서지 않는다. 유럽의 여러 동맹국들과 불편한 관계를 감수해가면서 전쟁을 치렀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수입하지 못하게 된 중국은 이란과 가까워졌고, 국제 유가가 치솟아 러시아 석유 금수도 풀어줬다. 결국 견제해야 할 중국과 러시아 좋은 일만 해준 꼴이다.
그런 판에 정보보고는 암담한 이야기뿐이다. 이란의 무기 재고가 빠른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핵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트럼프 암살 음모 첩보를 전달해온다. 안 그래도 몇 차례나 테러에 시달린 트럼프다. 당연히 이란을 세게 응징해야 한다. 그러니 재개전은 필연이다.
영예로운 퇴진의 중요성
사실 지난 2월말 개전한 후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 4개월 동안 트럼프가 명예롭게 전쟁을 끝낼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 개전 초 4주 동안은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때리기였다. 권투로 치면 한 선수가 소나기 펀치를 2분 50초 때리면 일방적으로 맞던 상대 선수가 한 차례 팔을 뻗고 공이 울리는 식이었다. 이 때가 트럼프로서는 명예로운 퇴진의 호기였다.
필자는 개전 4주 차에 접어든 3월 말부터 꾸준히 트럼프에게 영예로운 회군을 권고했다. 트럼프의 탐욕과 미국의 국익은 일치하지 않으며(본란 3월 24일자 ‘이란의 치명적 실수 또는 항복할 결심’), 2주 후 미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전폭기, 불패 신화의 F-15가 격추되고 무기통제관 대령이 적지 이란에서 간신히 구출됐을 때(본란 4월 6일자 ‘구사일생 트럼프’) 이겼을 때 만족하라는 동양의 교훈을 알려줬다.
재개전과 갈대같은 트럼프 마음
질질 끌다가 넉 달이나 지나 휴전하긴 했다. 휴전하고 보니 트럼프는 후회막급이다. 차라리 전쟁 벌이지 말 걸. 아니 휴전 받아주지 말 걸. 에이 홧김에 휴전 폐기, 재개전을 선택했다. 그러나 곧 후회할 것이다. 동맹국들에게 전비 부담을 요구해야 하는데, 재개전이 얼마나 오래 끌지 돈이 얼마나 더 들지 알 수가 없다. 트럼프가 이란에 물리고, 러시아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물리고, 두 마초 정치인은 판박이로 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2026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는 탐욕으로 일관하다 그 많은 기회를 놓쳤다. 여러 가지 이유와 동기가 있다. 이란에 확실한 굴복을 강요하고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표면적 이유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때보다는 더 이란을 압박하는 결과를 얻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에너지·금융 자본을 비롯한 미국 군산 복합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지지 세력에 대한 서비스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전쟁의 끈을 당겼다 늦췄다 하면서 개인과 가족, 친지들이 금융 시장에서 이익을 챙기는 재미도 쏠쏠했을 것이다.
세상일 뜻대로는 안 된다
세상일은 인간이 의도한 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선의로 출발해도 결과가 좋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하물며 탐욕과 과시욕으로 시작한 일이 좋게 끝날 리 없다. 기획부동산, 주식시장 작전 세력, 일부 정상배는 마지막 동전 한 닢, 마지막 이삭 하나까지 미련을 두다가 위험을 떠안고 패가망신하게 마련이다.(본란 4월 10일자 ‘항룡유회 또는 지족불욕’) 결국 트럼프는 마지막 동전 한 닢, 마지막 벼이삭까지 챙기려다가 금고째, 곡식 창고째 날릴 위험에 처했다.
새해 벽두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할 때만 해도 좋았다. 이란 전쟁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지상군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안 풀리는 것이다. 트럼프에게는 오는 9월 시진핑의 미국 방문이 마지막 기회다. 그 때 시진핑에게 뭐라도 받아내 전리품이라고 내세워야 중간선거를 넘길 수 있다. 시진핑은 겁 안나는데 중국은 조금 켕긴다. 어떻게 시진핑을 달래서 중간선거 치르나, 트럼프는 그 생각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시간이 없다
중간선거 지면 탄핵 절차 시작되고 탄핵 절차 들어가면 재산 증식 과정부터 문제 될 것이다. 바로 감옥행이다. 중간선거는 오는 11월, 겨우 넉 달 남았다. 이제 트럼프는 정말 시간이 없다. 유가는 여전히 불안정한데 한 번 오른 물가는 내릴 줄 모른다. 미국 내 여론은 싸늘하고 공화당 내부 분위기도 예전같지 않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거 봐라 식으로 냉소적이다. 걸프 회원국도 별로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오만은 호르무즈 해협 관리를 둘러싸고 이란에 동조한다. 그토록 견제하려던 중국은 점점더 목소리가 커졌다. 요즘 트럼프에게는 안팎곱사등이(안팎으로 하는 일이 잘 안되어 답답한 경우를 비유)라는 말이 딱이다. 아마 이번 여름은 트럼프 80 인생에서 가장 길고 무더운 여름이 될 것이다.
ⓒ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