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석연 위원장 SNS 갈무리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위원장이 정부·여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이병태 전 규제개혁위원회 부위원장(총리급 예우)이 지난 6일 배재고 야구부의 응원구호 논란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가 밀려난데 이어 12일에는 이석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부총리급 예우)이 “검사의 보완 수사권 완전 폐지는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보완수사권 폐지 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정 간에 엇박자가 있기는 했지만 민주당의 이 기세를 꺾을 만큼 청와대나 정부의 입장이 다른 것도 아니다. 법제화를 이끌고 있는 민주당은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박탈하는 대신 보완수사 요구권 강화로 저항의 벽을 넘으려 하는 모양이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야 위헌 경고 정도는 귓등으로도 안 들을 만큼 충분히 오만해져 있겠지만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가 있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기분 정도는 느낄 법하다.
“보완수사권 폐지 위헌 소지 있다”
이 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수사의 주체인 검사가 가진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헌법의 체계정당성(헌법 전체 구조와의 논리적 일관성)의 원리에 반하여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자 보호와 실체적 진실 발견, 형사사법의 신속한 정의 실현뿐 아니라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어떤 형태로든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 “책임 있는 공당이라면 당장의 지지층이나 당리당략에 매달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기본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며 “제도 자체에는 선악이 없고, 어떤 제도든 이를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개혁(그들은 혁명임을 과시하지만)을 한답시고 이재명 정권이 하는 일은 기존 제도의 파괴다. 특히 검찰을 ‘만악의 근원’ ‘악의 소굴’쯤으로 매도하면서 본때를 보인다고 아예 검찰청이라는 기관 자체를 폐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라 검찰청은 오는 10월 2일부로 사라진다.
이병태 규제개혁위 부위원장의 경우와는 달리 이 위원장에 대해서는 정부·여당 쪽에서 아직 이렇다 할 반박이나 불쾌감 표시가 없는 게 별 일이다. 탕평인사의 상징적 인물들을 잇달아 궁지로 모는 게 부담스러워서일까? 아니면 청와대와 정부의 우려를 대변하기 때문인가? 하긴 경우가 다르긴 하다. 이 부위원장은 이재명 정권과 좌파정치세력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을 건드렸다. ‘표현의 자유’든 뭐든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성역에 대한 침해는 용납할 수 없다는 감정이 일시에 분출해서 삽시간에 확산됐다.
이석연 위원장의 위헌 경고가 갖는 정서적 자극성은 훨씬 덜하다. 감정적 민감성이 떨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 내에서 극소수이긴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법무부 등에서도, 지금은 정리가 된 모양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법조계와 학계 일각의 비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윤기 사건’이 검사 보완수사권의 폐지에 대한 제동력을 더 보탰다. 13일엔 국민의힘이 ‘보완수사권 유지를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당론 발의를 의원총회에서 결정했다.
사람 문제는 덮고 제도 탓만 하다니
이런 상황에서 이 위원장의 비판에 퇴진압박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탕평인사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라 여겨 치지도외(置之度外·없는 것인 양하다)하기로 했음직하다. 반박하거나 비난하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뿐이다. “또 쫓아내려고 하느냐”는 여론이 형성되면 이 대통령의 입장만 어려워진다. 그리고 민주당으로서는 검수완박 법제화의 완성이 중요하다. 위원장이 정권 측의 비난을 모면할 수 있었던 배경을 짐작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 위원장이 공격의 과녁 신세를 면하긴 했지만 자리에 안착하지 못한 점은 이 전 규제개혁위 부위원장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위원장까지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 대통령이 입을 손실도 예사로울 수 없다. 일껏 모셔놓고 그들의 조력을 받을 생각은 않고 정부 방침에 호응하기만 원했는가 하는 민심의 질문에 봉착하게도 될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 소신을 피력할 기회를 주지 않는 인상까지 보이면 이는 권력의 오만한 ‘인재낭비’가 되고 만다.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범정권적 질책과 조리돌림으로 아직 10대를 넘어서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은 일생을 통해서 지워지지 않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속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 그 아이들을 위한 변명으로 ‘표현의 자유’를 말했다고 해서 이 부위원장을 내칠 정도의 좁은 속으로 굳이 우파 인사를 영입해 이름만이라도 거창한 자리에 앉힌 ‘이재명의 진심’은 무엇인가?
이 위원장의 말처럼 문제는 제도보다 이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더 있다. 형사사법제도와 그 운영 시스템에 악이 웅크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권력으로 그걸 좌지우지 하는 사람, 그 권력의 자락을 움켜쥐고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라며 악당 노릇을 서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사법적 정의가 무너져 왔던 게 아닌가? 그러면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은 권력자와 그 추종집단일 것이다.
제도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입법자에게도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법사위원장이 방망이를 두들기지 않으면 법은 하나도 통과를 못합니다. 국회 법사위원장이 상임선대위원장이 되었으니 정원오 후보님 하고 싶은 것 다해. 정원오 원하는 대로 다해. 더불어민주당 원하는 대로 다해. 필요한 것 있으면 내가 방망이를 다 두들겨 드리겠습니다”(서영교 법사위원장, 5월 21일 서울시장 후보 출정식 당시 발언).
하나의 조직원리를 강조한 대통령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 내는 법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법사위원장의 말 한마디가 국회 입법과정의 정당성 적법성을 송두리째 매장해 버렸다는 시실을 민주당은 기억해야 한다.
같은 날 이 위원장은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자문회의·위원회 간담회에 참석, 이 대통령에게 “의사결정을 할 때 집단사고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며 반대토론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모두가 모든 문제에 동의하고 토론과 반대 의견 개진 없이 내려진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역사가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간담회 모두에서 “비판하고 조언하는 것은 정말 자유롭게 해달라”고 말한 다음 “하나의 조직 원리가 작동한다는 점을 숙지하고 계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전날 이 위원장이 청와대 행정관의 ‘경고성 메일’에 대한 불쾌감을 보도 자료로 표출한 바 있다.
언론은 이와 관련된 이 대통령의 주의 환기용 언급이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의 질서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처지에서 하는 말이지만, ‘자유로운 비판과 조언’이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는 대신 ‘하나의 조직원리’만이 작동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위원장은 보도자료에서 “40년 넘는 공직 생활 동안 이런 무례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몹시 격앙됐다는 뜻이겠는데 이 대통령에게는 이런 표현이 달갑잖게 들렸던 모양이다. 이 위원장이 “최근 국민통합위와 본인의 행보에 불필요한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반복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했는데 청와대의 반응이 대통령의 언급 외에도 더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분위기 돌아가는 것으로 미루어 이 위원장의 자리도 안정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자신이 용기를 내어 한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스며드는 게 아니라 바로 튕겨 나온다고 느껴질 때가 인사권자의 자신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유효기간이 다해갈 즈음이다. 이 위원장이 얼마나 더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의 가치관을 좌파정부의 그것과 융화시킬 수 있을 지에 국민적 관심이 쏠릴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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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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