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사업 교섭 의제 주장에 노동부 "투자 결정은 대상 아냐"
법 시행 몇 달 만에 해석 충돌, 경영 불확실성 키우는 모호한 기준
ⓒ데일리안 AI 이미지
"경영진들도 부담스러워한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가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에 반대하며 내놓은 주장이다. 대규모 투자에 사측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낯선 장면이다. 임금과 성과급 협상에서는 회사의 비용 부담 논리를 비판해온 노조가 이번에는 경영진의 투자 부담과 사업성을 반대 근거로 끌어왔다.
노조의 실제 우려는 따로 있다. 초기업노조 자체 조사에서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84%에 달했다. 향후 대규모 전환배치와 근무지 변경, 처우 변화 가능성을 걱정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다. 논란은 초기업노조가 프로젝트 자체를 2027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나서면서 커졌다.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을 근거로 들었다.
개정법은 노동쟁의의 범위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새로 포함했다. 법 문구만 놓고 보면 호남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짓고 향후 직원들의 근무지와 처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결정도 문제 삼을 여지가 생겼다.
재미있는 지점은 고용노동부가 "기업 투자와 공장 증설 자체는 대상이 아니다"며 즉각 선을 그은 사실이다.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이 발생할 때 해당 사안이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노란봉투법 입법을 주도한 민주당이 집권한 지금 벌어진 장면이라 더욱 묘하다. 민주당은 2025년 개정안 처리를 공개적으로 주도했다. 정작 노조가 이 법을 정부 산업정책에 제동을 거는 근거로 꺼내 들자 되레 갑자기 적용 범위에 선을 긋는 모양새다. 사실상 노조의 아전인수식 법 해석만 탓하기도 어렵다.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 역시 14일 "이익을 나누는 일을 교섭할 수 있다면 그 이익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하는 결정 또한 교섭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는 논리"라며 "노동이 회사의 15년 투자 결정을 '교섭하겠다'고 나서고 정부가 이를 막아서는 풍경 자체가 불과 두 달 전 경고했던 사태가 현실이 됐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비판했다.
경영계가 노란봉투법 제정 과정에서 우려했던 대목도 이 같은 불확실성이었다. 투자와 공장 증설, 사업 재편처럼 속도가 중요한 경영 판단이 노동쟁의 대상인지 여부를 놓고 매번 법 해석부터 다퉈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며 별도 해석지침까지 마련했지만 혼선은 벌써 현실이 됐다.
법은 '경영상 결정'까지 범위를 넓혀놓고, 정부는 개별 사안마다 "이 결정은 되고 저 결정은 안 된다"고 다시 경계를 긋고 있다. 노조는 자신에게 유리한 문구를 끌어다 쓰고, 노동부 역시 정책 부담이 커지자 법의 범위를 좁혀 해석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 사이 기업은 투자 타당성뿐 아니라 해당 결정이 노동쟁의 대상이 될 가능성과 정부의 법 해석까지 새로운 변수로 떠안게 됐다.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노란봉투법의 모호성이 현실의 경영 판단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법 해석이 반복되는 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악법'이라는 비판도 쉽게 사라지기 어려워 보인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