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8.4GW AI 데이터센터 구축 청사진 내놔
전력·냉각 장비 등 전후방 산업 수요 확대 기대
LG전자·LS일렉트릭 등 시장 공략 속도 눈길
정부 청사진 속 미확정 물량·실행계획 구체화는 과제
2027년 가동 예정인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조감도 ⓒSK그룹
인공지능(AI) 투자 수혜의 범위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데이터센터를 실제로 움직이는 전력·냉각 인프라로 넓어지고 있다. 정부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계기로 관련 기술과 장비를 국산화하고 해외 수출 산업으로 키우는 전략을 내놓으면서다.
LG전자와 LS일렉트릭 등 국내 기업들도 이미 데이터센터 냉각과 차세대 전력 솔루션 사업 확대에 나선 만큼 정책 방향과 산업계의 움직임이 맞물리는 모습이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550조원 투자 계획에는 아직 검토 단계인 물량이 포함된 데다 국산화와 수출을 뒷받침할 세부 실행계획도 구체화되지 않아 실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14일 정부가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선정하고 관련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한다. AI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는 총 550조원을 투자해 8.4기가와트(GW)급 인프라 구축을 추진한다. 민간 투자 유치분을 포함한 규모로, 2028년 상반기 내 착공하고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HBM 넘어 전력·냉각까지…AI 전후방 산업 키운다
눈에 띄는 대목은 데이터센터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전후방 산업이다. 정부는 2027년부터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IT와 클라우드·소프트웨어(SW)뿐 아니라 전력·냉각 기술과 장비의 국산화 및 수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AI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컴퓨팅 인프라가 아닌 하나의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을 기반으로 특화 클러스터를 지정하고 전후방 산업 육성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내 기술과 부품을 활용한 AI 솔루션과 AI 데이터센터, 신재생에너지를 하나로 묶은 'K-AI 패키지'를 개발도상국에 확산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간 AI 인프라 투자의 대표적인 수혜 제품으로는 GPU와 HBM 등 첨단 반도체가 주로 꼽혔다. 그러나 AI 서버의 연산 성능과 전력 밀도가 높아지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열 관리 기술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GPU와 HBM이 AI 연산을 담당한다면 전력과 냉각 설비는 이를 실제 데이터센터에서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인 셈이다.
실제 국내 기업들의 사업 확장도 이미 이 같은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 냉각을 미래 성장사업으로 육성하며 대형 칠러에서 냉각수분배장치(CDU), 콜드플레이트 등 액체냉각 솔루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버 칩에서 발생하는 열을 직접 식히는 기술부터 데이터센터 전체 시설의 냉각까지 아우르는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선 것이다.
전력 분야에서는 LS일렉트릭이 최근 독일 인피니언과 에너지저장장치(ESS)용 전력변환시스템(PCS), 반도체 변압기(SST), 반도체 차단기(SSCB) 등 차세대 직류(DC) 전력 솔루션 공동 개발에 나섰다. 변압기와 전력망, 케이블 업체에도 AI 데이터센터 확대는 새로운 수요처로 꼽힌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송배전 인프라와 전력기기 투자도 함께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센터를 국산 전력반도체 '첫 시장'으로
정부는 데이터센터 구축 확대를 국산 전력반도체 시장을 키우는 계기로도 활용한다.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민간 수요와 연계한 차세대 전력반도체 연구개발(R&D)을 추진하고 개발된 제품은 국내 파운드리가 주도해 성능을 검증하고 양산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전력반도체 양산과 실증을 지원하기 위한 민관 협력 상용 파운드리 구축 방안도 검토한다. 정부 자료에는 합작법인 설립과 설계·소재·부품·장비 기업 간 협력 등이 방안으로 제시됐다. 전력망과 데이터센터 등 공공 부문이 국산 반도체의 초기 수요처 역할을 하는 방안도 포함됐는데, 이는 국가 안보 인프라의 국산 반도체 우선구매 조항을 신설해 공공 부문이 수요 창출을 견인하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전력반도체는 전력을 변환하고 제어하는 핵심 부품이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전력변환장치와 반도체 변압기, 차단기 등에도 활용된다. 국내 업체들이 기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대형 인프라 사업자가 검증되지 않은 신규 제품 도입을 꺼릴 경우 실제 양산과 시장 진입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정부가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을 초기 수요처로 제시한 것도 이 같은 '첫 고객' 문제를 보완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550조 청사진…미확정 물량·실행계획은 과제
다만 정부가 내놓은 전략이 실제 국내 기업의 수주와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정부가 제시한 8.4GW 가운데 4GW는 자료상 '권역별 추가 검토' 물량이다. 550조원도 정부 재정 투입액이 아니라 민간 투자와 투자 유치분을 포함한 전체 계획 규모다. 이에 따라 550조원을 이미 확정된 투자금으로 보기는 어렵다. 개별 사업의 입지와 사업자, 전력 공급 계획과 착공 일정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전체 사업 규모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전력·냉각 기술과 장비의 국산화 계획 역시 아직 구체성이 부족하다. 이번 전략에는 현재 국산화 수준과 목표치, 집중 지원할 세부 품목이나 지원 규모가 담기지 않은 탓이다. 2027년부터 국산화와 수출을 지원한다는 방향은 제시했지만 어떤 기업과 기술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할지는 후속 과제로 남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럼에도 이번 전략은 AI 산업의 범위를 GPU와 HBM에서 전력·냉각 등 데이터센터 인프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실제 국산 장비의 실증과 구매로 이어질 경우 국내 냉각·전력 기업에는 신규 수주를 위한 레퍼런스를 확보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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