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나경원 "나라 구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왔다" [정국 기상대]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6.07.14 06:59  수정 2026.07.14 06:59

13일 데일리안TV '나경원을 말한다' 대담

존 볼턴에 편지 써서 '종전선언' 저지 비화

"보수는 이걸 모르고, 좌파는 알고 날 극렬히

싫어해…그래도 지탱해주는 힘은 애국심"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을 통해 확인해주세요.

* 인터뷰 내용을 인용 보도할 경우 프로그램명 '데일리안 유튜브 〈정국 기상대〉'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본 방송 내용의 저작권은 데일리안에 있습니다.

데일리안 유튜브: www.youtube.com/@데일리안TV


* 프로그램: 데일리안 유튜브 〈정국 기상대〉

* 진행: 정도원 데일리안 정치부장

* 출연: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진행: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데일리안TV 정국 기상대는 특집 대담으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국민의힘 5선 중진, 시청자 여러분들 모두 잘 아시는 나경원 의원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나경원 의원: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진행: 오늘 이렇게 귀한 발걸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경원 의원: 아닙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행: 나경원 의원이라고 하면 사실 시청자 여러분들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거예요. 인지도에서 가장 발군인 보수 진영의 대표 정치인인데, 그렇다 보니까 시청자분들이 오히려 나경원, '나경원은 내가 잘 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연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는 나경원 의원, 그리고 나경원 의원의 정치, 정치 행적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계십니까? 오늘은 '정치인 나경원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한번 직접 얘기 나눠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진행: 우선 처음부터 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보수가 정권을 빼앗기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보수가 정권 탈환을 위해 절치부심하던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특보로 정계에 입문하신 게 맞죠?


▶나경원 의원: 네, 맞습니다. 예, 예.


▷진행: 그리고 2004년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첫 등원을 하셨고, 그 때 당 대변인도 하시고 초선 의원으로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으로 정권교체에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우시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2008년 총선에 재선에 도전하게 되는데, 이게 사실 저희 정치부 기자들이 잘 알지만 여성 비례대표 의원이 재선하기가 진짜 쉽지 않아요. 그때 보수 정당에 있어서 굉장히 좋은 지역구를 받는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험지인 서울 중구로 가셨어요. 이 중구라는 데가 어떤 데냐, 민주당의 거목인 정일형 박사가 8선을 하셨고, 그 아드님인 지금 헌정회장인 정대철 의원이 5선, 부자가 합계 민주당에서 13선을 한 곳입니다. 그곳에 이제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재선을 '당신이 여기서 하라'라고 가라고 그랬는데, 어떻게 좀 부담감이나 섭섭함은 없으셨을까요?


▶나경원 의원: 너무 과거 얘기부터 가네요. (웃음) 저는 사실은 DJ 정권 때 이 보수가 대한민국을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또 평소 존경하던 대법관 출신의 이회창 총재의 선거를 돕게 되었고요. 2004년은 사실은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해서 완전히 역풍 맞을 때였습니다. 그때 사실 저는 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해놓고, 그전까지는 기회가 되면 하고, 기회가 안 되면 나한테는 정치인의 기회는 없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정치를 하게 된 데는 보수 정치가 대한민국을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우리 딸을 키우면서 느꼈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 이런 것을 제도나 법으로 먼저 바꾸고 싶어서 정치권에 공천 신청도 하고 했는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국민을 굉장히 갈라쳤잖아요?


1대99 이렇게 했는데 그 당시 중학교밖에 안 나온 내 형 앞에 어느 사장이 머리를 조아리고, 이런 말씀을 하시고 그래서 그 사장이 투신 자살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탄핵을 했다가 역풍을 맞아서 완전히 그 당시에 저희 당이 힘들어지던 시기였는데요. 저는 이런 정치는 좀 바꿔야 되지 않느냐, 이렇게 국민을 극단적으로 갈라치는 정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꼭 국회의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 비례대표로 입성을 해서 2007년에 정권교체를 하게 됩니다.


2008년이 됐는데요. 그 당시에 민주당 당대표가 손학규 씨였어요.그런데 손학규 씨가 종로로 갈지 중구를 갈지 모른다고 하니까, 저보고 중구에 가서 죽든지 살든지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 사실은 제가 2007년 대선 때 굉장히 기여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서 국민들한테 여론조사를 하면 제가 거의 모든 여론조사 1등이더라고요.


서울 시내 어느 지역을 넣어도 굉장히 여론조사의 결과가 잘 나왔지만 저한테 굉장히 부담스럽더라고요. 민주당 현직 당대표하고 싸우라고 하니까. 그러나 방법이 없더라고요. 결국은 제가 계파에 줄을 안 서서 그래요. 그 당시에 친이~친박의 계파가 있었는데, 저는 친이계도 친박계도 아니었고 단지 당 대변인을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께서 우리 당 후보가 된 다음에 제가 대통령 후보 대변인이 됐고, 그래서 8월 말에 우리 당 후보가 되셨으니까 9, 10, 11, 12월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 계속해서 후보 대변인을 했는데, 그래서 저는 굉장히 이제 측근인 줄 알았더니 친이계에서는 저는 외부 사람인 거죠. 그래서 그 당시에 친이계 핵심 의원이 저한테 전화해서 그러시더라고요. "대변인 한 번 했다고 공천 받는 줄 알아!" 막 이러면서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소위 그 친이계에 가서 '저도 하나 주세요, 공천 주세요' 이래야 되는데 고개 안 숙였다는 얘기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중구 가라 그래서 가서 열심히 해서 당선돼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중구 공천 주고요. 중구 공천을 선거일 30일 전에 주셨는데, 일주일 지나니까 지원유세를 다니라고 그러더라고요. 당에서 항상 그래요.


▷진행: 그때부터도 이미 지원 유세를? 본인 선거도 지금 비례대표로서 재선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에서는 정범구 의원을 공천을, 그리고 얄궂게 이게 1 대 1로 싸워도 선거라는 게 후달리는데, 의원님이 도우셨던 이회창 총재 당에서 신은경 후보를 냈고, 친박연대에서도 오현석 후보라고 또 다른 후보를 내서 보수당이 세 명의 후보가 나왔어요. 이게 소위 말하면 선거에서 구도가 불리하다고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나경원 의원: 아니, 그러니까 구도가 굉장히 어려운 선거인데, 당에서 또 도우라고 그러니까, 저는 또 차마 거절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보수는 완전 분열이고 진보 쪽은 하나 나왔는데, 당에서는 저한테 또 막 선거 어려운 선거 도우라고 그러더라고요. 참 제가 보면은 계산에 밝지는 못한 것 같아요.


▷진행: 그러니까요. 계파의 덕을 보신 것도 없고, 일찍부터 이렇게 지원 유세에 불려 다니시는 정치 활동을 해오신 것 같습니다.


▶나경원 의원: 이번 지방선거도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제가 지방선거 끝나고 몸무게가 쑥 줄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지방선거, 제가 이제 이렇게 선거 때마다 지원 유세 요청을 많이 받으면 한 군데라도 더 해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밥을 못 먹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느 지역을 가면 그 지방에는 뭐가 유명하다든지 뭐가 음식이 맛있다든지 이런 건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여기는 저 역앞에서 유세를 했지, 여기는 저 시장에서 유세했어 그 생각만 나요.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 때도 너무 어려운 때인데 지원 유세를 요청할 인물이 마땅치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하루 종일 김밥 8알 먹은 적도 있고요. 그렇게 도왔는데 제가 그래도 기분 좋은 거는 표차가 아주 적게 나서 당선된 데는 제가 좀 기여를 많이 한 느낌이잖아요.


마지막날 가서 유세한 데 중에 하나가 제물포구청장도 200표 차이 났고, 그 전날 간 충주시장도 100여 표, 그 전에 부여군수도 40몇 표 이러니까 '아, 그래도 힘들게라도 갔다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행: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아셔야 될 게 이동석 충주시장, 이번에 국민의힘에서 당선이 된 후보 같은 경우에는 불과 120여 표 차이로 당선이 됐는데, 이게 사실 기초단체장 후보가 나경원 의원 지원 유세를 유치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전국에서 와달라고 요청이 있기 때문에. 진짜 어려운 데를 많이 많이 다니셔서 이렇게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가 많고, 그 과정에서 서울~부산 거리를 14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런 얘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항상 잘한 거는 알려지지 않고, 우리 정치권이라는 데가 서로 흠만 잡고 흉만 보다 보니까 누가 못했다 이런 건 잘 알려지는데, 누가 잘한 거는 알려지지가 않습니다.


▶나경원 의원: 그냥 늘 묵묵하게 지원 유세는 정말 언제든지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저희 지역도 편하지 않은데 지원 유세 요청은 너무 많아서, 거의 뭐 새벽 5시 첫차 타고 내려가서 유세하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특히 TK PK도 무소속 바람도 좀 있고 그래서.


평소에는 지방선거는 TK PK는 구태여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됐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데까지도 신경 쓰게 돼서 하여간에 녹록하지 않았던 지방선거 운동 기간이었습니다.


▷진행: 원래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1년 후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2018년처럼 폭망하기가 십상인데 그래도 국민의힘, 보수 진영이 이만큼 버틴 거에는 상당히 나경원 의원의 지원 유세 공로가 있었다, 그런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말씀드리고 싶고요. 이게 불과 15년 전 일인데 완전히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진 게,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했다가 투표율 미달로 개함에 실패하면서 물러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는데, 그때 지금은 우리 당에 있지만 안철수 의원께서 박원순 후보하고 포옹을 하고 이러는 바람에, 갑자기 박원순 후보 지지율이 확 솟구쳐서 '누가 나가도 진다' '무조건 지는 선거다. 20%p 이상 진다'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현역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계시는데 그걸 던지고 거길 나가셨어요. 그 때 왜 그러셨습니까?


▶나경원 의원: 그때 정말 안철수 지금 우리 당 의원이 박원순 씨 손을 들어주니까 5% 하던 박원순 후보가 45%가 됐어요. 그때는 안철수 의원이 제일 셌었던 때예요. 그래서 5%로 하던 박원순 후보가 45%가 됐는데 그러니까 우리 당에 거론되던 후보들이 전부 다 출마를 안 한다고 했죠. 그리고 사실은 그 선거는 우리 시장이 시장 자리를 던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당선되기도 어려운 자리인데, 그러고 나니까 누가 나가도 20%p 이상 지더라고요.


그때 당에서 나가시겠다는 분이 한 분이 계시기는 했었는데 그분은 이제 인지도가 높지도 않고 국민들이 잘 모르는 분이니까, 갑자기 그 당시에 당대표께서 일요일날 저녁에 롯데호텔 일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그러시더라고요. 생전 저한테 밥을 안 사주신 분이. 그래서 왜 그런가 그랬더니 '만나자' 그러시더니 제발 당을 위해서 희생을 좀 해달라. 그때가 2011년 10월 26일이 선거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내년 2012년 4월에 총선이고, 2012년 12월에 대선인데, 이번 보궐선거에서 우리 당이 너무 망하고 나면 도저히 회복할 길이 없으니 제발 이번에 가서 선전해 달라.


우리가 그래도 어느 정도 민주당하고 근접해야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볼 수 있다고 하셔서, 저는 그때도 그냥 당을 위해서 희생해 달라는 말에 '아, 그러면 어차피 내년 총선이라서 조금 있으면 총선 가고 이번에 배지 떼더라도, 선거는 어려워서 당선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만, 곧 선거운동 기간이니까 그다음에 당을 위해서 희생했으니까 공천이야 주겠지' 하고선 그래서 배지 떼고 나갔어요.


그런데 나간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그 선거는 지는 선거니까 중앙당에서 일체 도와주지 말라 그런 게 당대표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도 안 도와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지어 제가 이 선거대책본부를 모든 의원들을 같이 넣어서 하겠다, 그래서 경기도 의원을 선대본부장을 하겠다 그랬더니 막 화를 내시면서 서울 국회의원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들하고만 선거운동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갖고 선대본부도 사실은 그런 걸 잘하시는 본부장님을 모시려고 그러고, 그 경기도 국회의원도 오케이 했는데 못하게 하고, 그다음에 서울 선거는 돈이 많이 들거든요. 30억이 넘게 드는데 원래 지는 선거는 돈과 정보가 안 옵니다. 그러니까 후원금이 걷히면 좋은데 후원금은 제 지인들 외에는 아무도 안 내주는 거예요. 그래서 후원금이 6~7억이 걷혔나 이래서 30억짜리 선거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원래 보궐선거를 하면 당이 보통 돈을 빌려줍니다. 근데 당이 돈 없다고 그러면서 5억 밖에 안 빌려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남편이 정말 그때 대출을 20몇 억을 받았어요. 저희가 그래서 선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거 끝나고 났더니 대출 이자 비용은 후원금으로 안 된다고 그래서 저희가 이자 비용 1억 원을 저희 생돈으로 쓰고 말았는데.


▷진행: 진짜 사재로 선거를 치르셨네요.


▶나경원 의원: 어쨌거나 그런 스토리뿐만 아니라 이제 딱 박원순 시장 후보랑 해보니까 너무 준비가 안 돼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토론을 몇 번 하니까 제가 쭉쭉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20%p 차이가 3%p로 딱 좁혀지니까 저쪽에서 네거티브를 시작하더라고요. '1억 피부과'라는. 그런데 그 당시에 당대표가 지는 선거니까 돕지 말라고 그래 갖고 대변인 논평이 하나가 안 나왔습니다.


▷진행: 네거티브 대응도 안 해준다.


▶나경원 의원: 그래서 제가 그때 너무 속상했고 그래서 결국은 7%p 차이로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진행: 사실 이 '1억 피부과' 논란, 이런 게 지금으로 놓고 보면 이른바 소위 요즘 말 많은 허위 조작 정보거든요? 이게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10억의 과징금을 때릴 수 있는. 사실 아까 전에 이자 비용 1억도 지금 같으면 5배 징벌적 손해배상 받아서 메꾸시면 1억 메꾸고도 남을 정도로 온갖 허위 조작 정보에 당하셨어요.


▶나경원 의원: 저는 사실 그 선거뿐만 아니라 민주당 쪽이나 소위 우리 당을 반대하는 세력들, 저는 그 세력이 꼭 국내 세력만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굉장히 집요한 공격을 늘 받아 옵니다. 그래서 사실은 초선 때부터도 저에 대해서 계속해서 허위 사실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고요. 주로 친일 프레임을 굉장히 오랫동안 저한테 가져왔고요. 그 밖에는 저희 가족에 대한 허위사실이라든지, 이런 쪽으로 계속 발전을 했는데요. 정말 제가 당한 네거티브를 책으로 쓰면 몇 권을 쓸 것 같습니다.


▷진행: 그러니까 이 징벌적 손해배상 받으시면 나경원 의원 재벌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나경원 의원: 우리 지역 선거도 늘 그런 식이었는데 22대 선거, 이번에 선거할 때도 정말 지하철역마다 아침이면 전부 다 전국에서 오는 거예요. 그래서 확성기 틀고 반대하고 계속 네거티브 하고 그리고 전국에서 와서 온 동네에는 파란색이 정말 다 판치고 그러는데요. 그래서 저희 지역 선거를 할 때는 단순히 우리 지역에서 선거한다 생각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움을 합니다. 아무도 모르실 거예요. 21대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진행: 21대는 그렇게까지 표독하게 할 줄은 모르고 있다가 진짜 한 번 당하셨고.


▶나경원 의원: 그때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MBC 스트레이트 방송이 저희 가족에 대한 허위 사실을 세 번에 걸쳐서 방송을 해요. 첫 번째 11월 말에 한 번 45분에 하고, 1월에 한 번 또 45분에 하고, 2월에 또 45분을. 그렇게 해도 1월까지도 안 떨어지니까 2월에 종합판을 막 하는 거예요. 2월에 딱 하고 나니까 10%p 떨어지더라고요. MBC 스트레이트 허위 방송이 가짜 뉴스가 굉장히 컸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로는 선관위도 그때 선관위가 편파적이라는 것이 그때도 저를 친일파로 모는 것과 가족에 대한 허위 사실이었는데, 친일파는 '친일 청산' 이런 걸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요. A4 용지 크기를 들 수 있잖아요. '친일 청산' 앞에다 '백년 친일 청산'이라고 쓴 거예요.


그래서 이거 나한테 계속 친일파라고 그러는데, 이거 나를 떨어뜨리는 거 아니냐, 이걸 못 들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랬더니 선관위가 '백년 친일 청산'이라고 썼기 때문에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민생 파탄'을 들면 안 된대요. 그것은 문재인 정권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래서 저희가 '십년 민생 파탄' 이랬더니 그러면 양쪽 다 들지 말라고 마지막 순간에.


▷진행: 그제서야요? 사실은 이게 무슨 대학생단체니 무슨 시민단체니 사회단체니 이렇게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어떤 특정 진영에 속해서 국민의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이 총결집해가지고, 동작을에서 항상 회전(會戰)을 치른다. 이게 참 희한한 일이고 이렇게 계속 어렵게 선거를 치른다는 걸 또 누가 알아주지 않지 않습니까?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선거가 치러지는데, 한 군데에서 우리 사회의 사상과 이념의 첨예한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그 선봉에 서셨다는 점 말씀을 드리고요.


▷진행: 아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 2021년 보궐선거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게, 그 다음해에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있다 보니까 지더라도 좀 '졌잘싸'해야 진영을 보존할 거 아니냐.


▶나경원 의원: 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죠.


▷진행: 2011년. 그러니까 7%p 차이로 결국은 좁혔습니다. 최종적으로 이게 공교롭게도 이재명 대통령하고 김문수 후보 격차하고 거의 비슷한 격차인데, 그때도 작년에 그 정도로 어쨌든 좁혀놨으니까, 올해 또 지방선거도 치르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나경원 의원: 그렇죠, 그만큼.


▷진행: 누가 나가서 이렇게 진영을 추스르고 결집한다는 게 중요한데, 아까 의원님도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설마 총선 공천 안 주겠느냐' 싶었는데, 의원님 커리어에 보면 '33개월 공백기'가 있습니다.


▶나경원 의원: 이제 그게 서울시장 보궐선거 나가느냐고 배지 뗀 때부터 2014년 동작을 보궐선거 돌아올 때까지죠.


▷진행: 그때 사실은 완전히 놀으셨던 건 아니고 패럴림픽 IPC 집행위원 활동도 하셨고, 스페셜 올림픽 한국 위원장 열심히 활동하셨는데, 그때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그런 활동도 어떤 정치적인 배경이 있어야 힘을 받는데, 좀 적나라하게 말씀드릴게요. '나경원 의원이 이제 끈 떨어졌다' 무슨 그런 게 도니까, 나중으로 갈수록 점점 안 되고, 염량세태적인 세태를 느꼈다는 말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이제 와서 좀 말씀해 보시면.


▶나경원 의원: 사실은 총선 출마가 이제 어려워져서 공천을 안 주겠다고 세 번 전화 오길래 불출마 선언을 하고, 2013년 1월이 제가 유치했던 스페셜 올림픽 세계 동계대회를 개최하는 때였습니다. 그때 조직위원장을 전직 총리를 모시고 싶어 했는데 아무도 안 오시려고 그러더라고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으니까요.


스페셜 올림픽하고 패럴림픽은 세계 양대 장애인 스포츠 대회입니다. 패럴림픽은 올림픽 끝나고 하게 돼 있고 지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고, 스페셜 올림픽은 올림픽이라는 단어로 유일하게 쓰는 그 발달 장애인을 위한 올림픽이고, 이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누이 둘 중에 한 명이 발달 장애인이었고, 또 다른 누이가 이 스페셜 올림픽을 1968년에 창시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장애인 올림픽이 아니라 다른 거고요. 그러나 두 개 다 IOC에서 정식적으로 인정하는 세계 장애인 스포츠 대회입니다.


스페셜 올림픽을 유치했는데 조직위원장을 아무도 안 하시려고 그래서 제가 부득이 맡고 있었는데요. 저는 총선 출마를 못하게 되면서 '아, 이 대회를 내가 열심히 하라는 건가 보다' 그래서 정말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열심히 했습니다. 아까 패럴림픽은 IOC 위원하고 달리 IPC 집행위원이라는 게 있고, 그것은 전 세계에서 10명만 선출하게 돼 있습니다. IPC 집행위원도 지냈고, 스페셜 올림픽 국제이사도 지내게 됩니다. 열심히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 활동도 하고,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활동도 하고 열심히 했는데, 2014년이 되니까 진짜 끈 떨어졌다고 생각해 갖고 후원금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진행: 세상의 세태가 그렇게.


▶나경원 의원: 아니,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라는 데가 무슨 어마어마한 조직이 아니라 직원 8명 있는 NGO 단체입니다. 제가 2년 정치를 쉬었을 때, 그 스페셜 올림픽 활동을 했을 때 30평 되는 곳에서 전체 직원들이 일을 했었습니다. 30평이 안 됐나요? 이게 아주 작은 단체이고, NGO 단체니까 후원금이 들어와야 되는데, 2014년이 되니까 진짜 후원금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선거 나간다고 그러니까 후원금이 들어오대요. 그게 세상인가 봐요. 그래서 그때 이제 2014년 되면서 정말 후원금이 안 들어오니까, 직원들은 저한테 후원금을 모아오라는 눈빛을 보내는데, 진짜 그게 너무 참 이 후원금 모으는 게 저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나 하고 있는데 그때 이제 동작에 출마할 사람이 없어서 저한테 기회가 온 거 아닙니까?


▷진행: 그렇죠. 이상하게 서울시장 뒷수습을 많이 하시게 되는데, 그때 동작을도 정몽준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서 물론 지셨죠. 그리고 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는데 이 동작을, 선거를 하는 데가 시청자 분들 기억하시겠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허동준에서 기동민, 또 기동민에서 노회찬, 이렇게 민주당하고 여러 가지 진보좌파 정당이 단일화 쇼를 하면서 계속 선수가 바뀌고 있는데, 이 야권 단일화라는 게 지금은 진부하지만 그때만 해도 엄청 먹혔어요. 그래서 이게 동작을이 험지다라고 그래가지고 아무도 안 나가려고 하다 보니까, 시청자 여러분들 이름만 들으면 바로 아실 만한 분들한테 제안이 갔는데 다들 안 나가겠다고 손사래 치고, 본인의 다른 정치적 셈법도 있고 그래가지고, 돌고 돌아서 이 끈 떨어진 걸로 오해를 받던 의원께 기회가 돌아가게 됩니다. 이 야권 단일화 쇼 대항하기 쉽지 않으셨을 테고, 실제로 표차가 929표 차이밖에 안 났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때 선거에 대한 얘기를 좀 하시면요.


▶나경원 의원: 그때가 2014년 7월 30일에 재보궐선거가 있는 거죠. 2014년 4월이 세월호였고요. 6월 지방선거에서 정몽준 의원님이 자기 지역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작을에서) 17%p를 집니다. 서울 전역에서 12%p를 지셨는데 동작에서 17%를 졌으니까 7월 한 달 만에 이제 17%p를 이겨야 되는 거죠. 그 당시 당에서는 저한테 그 당시 보궐선거가 굉장히 한꺼번에 많이 있었는데요. 수원에 나가달라는 거예요, 저한테.


▷진행: 거기 또 손학규 대표가 출마한 곳 아닙니까?


▶나경원 의원: 예. 그러니까 그때 남경필 지사가 수원 팔달에서 5선을 하고, 그걸 버리고 경기도지사를 나가는데, 저한테 나가달라고 그러는데, 저는 사실은 거기가 밭은 좋지만 명분이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서울시장을 나갔던 사람인데, 갑자기 수원 팔달에 나가는 게 명분이 없는 거예요.


근데 거기에 나오려는 사람은 경기도지사를 한, 분당에서 국회의원도 했던 손학규 씨니까 명분이 제가 밀리는 거죠. 그래서 제가 '저는 아니다. 수원에서 중·고등학교 나온 사람을 공천을 줘라' 했더니, 그 당시 친박 실세들이 말 안 듣는다고 앞으로 다음 공천도 안 준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명분 없는 정치는 절대 안 하거든요. 저는 제 소신을 그렇게 함부로 바꾸는 사람은 아니라서. 저는 그래도 '알겠습니다. 전 그래도 수원에는 출마 안 해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고 그래서 저에 대한 수원 출마 종용은 포기를 했죠.


동작구는 그 당시 경기도지사를 그만둔 누구한테 부탁을 한 거죠. 그런데 그분이 안 나가겠다고 저 소록도까지 가버리셨어요. 동작구 안 나오겠다고. 그래서 후보 등록일이 모레인데 후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나가겠느냐고 오퍼가 왔고, 저는 공천을 못 받는 중구보다는 차라리 공천을 받는 동작구가 낫겠다 해서 이번에 패배하더라도 여기서 갈고닦아보겠다 하고 출마를 했고요. 아, 그 선거도 힘들었습니다.


▷진행: 안성맞춤으로 또 동작에는 마치 연고가 있으셨잖아요?


▶나경원 의원: 제가 동작구 노량진동이 제 본적지였고요. 그리고 그 선거에서 보니까 정의당 노회찬 후보로 단일화가 된 다음에, 안 그래도 세월호도 노란색인데 막 노란색이 동네를 다 휩쓸고, 불법선거운동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전투표부터 감이 이상했는데, 나중에 까보니까 사전투표는 굉장히 많이 졌습니다.


제가 그래서 사전투표 끝난 일요일 날 아침에 노회찬 후보한테 '반칙하시지 말라'고 얘기를 했더니, '뭐, 작은 당이 그렇지' 그러시더니 그날 드디어 가짜 선거운동원들,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빼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그때 선거운동을 잘한 것 같아요. 제가 그 선거운동 구호를 바꿉니다. '살려주세요'로.


▷진행: 살려주세요.


▶나경원 의원: 살려주세요, 동작. 살려주세요, 나경원. 이렇게 구호를 월요일날 바꿨고 그게 신문에 크게 나오면서 화요일날 오후에 시장을 갔더니 어떤 분이 오시더니 '선거 구호가 바뀌어서 선거가 어려워진 것 같아서 본인이 휴가를 취소하고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 내가 되겠구나' 정말 아슬아슬하게 됐습니다.


▷진행: 그러니까요.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고, 그때 수원 팔달 출마 종용, 저도 그 친박 핵심이 어떤 분인지까지 얘기를 들은 게 있지만 이 자리에서 굳이 또 실명 언급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의원님의 정치 여정의 중대 변곡점이랄까요?그게 이제 2019년 원내대표다. 그 이전과 그 이후 물론 계속 끊임없이 부침과 시련이 많았지만, 2019년 원내대표 시절에 의원들을 결집해서 가열차게 투쟁을 하면서도 또 안팎으로 오해도 많이 받으셨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운신의 폭이 좁았다. 그러니까 일응 투쟁을 하면서 또 일응 협상이라는 게 항상 있어야 되잖아요. 원내대표는 그때 홍영표 원내대표, 이인영 원내대표가 이제 카운터파트였는데, 투쟁하고 협상하고 이러려고 그랬는데, 계속 그때 보수 정당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당대표가 계속 원외 당대표가 서고, 또 원내 정치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당대표를 하고 그러다보니까 엇박자가 나고, 그리고 이것은 이 자리에서 드리는 말씀인데 당시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그때 장외 집회를 많이 했는데 의원님이 굉장히 장외 집회에서 호소력 있는 연설을 많이 해서 시샘을 샀다, 질시를 샀다, 이런 얘기까지 있었어요. 2019년에 당이 어렵던 때 원내대표가 돼서 열심히 강경 투쟁을 했는데, 갑자기 그 해 연말에 이게 임기가 강제 종료되다시피 끝납니다. 그때 있었던 여러 가지, 시청자분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던 이런 정황들, 어째서 이런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경원 의원: 그전에 사실 우리가 2016년에 탄핵을 거치고 2018년 지방선거는 폭망하고, 보수 정당이 어떻게 살아나야 되는가를 고민해야 되는 때였습니다. 2018년 12월에 제가 원내대표가 되고 나서 저는 어쨌든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최대한 드러내야 우리가 다음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했고요.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인 이념은 저희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가장 치적으로 내세웠던 것이 소위 판문점 선언이었고, 저는 판문점 선언을 보면서 이 정권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우리 대한민국은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철수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그를 위한 원내대표가 되고 싶었고, 원내대표를 최대한 열심히 했던 겁니다.


판문점 선언 얘기를 잠깐 그전에 먼저 말씀을 드리면, 판문점 선언이 2018년에 있었죠. 2018년에 있고 나서 저는 딱 판문점 선언이 나오자마자 그걸 읽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것은 결국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갖다주겠다는 거구나. 그래서 그 당시 저는 국회직도 없고 당직도 없었지만 제가 미국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우리로 따지면 안보실장이죠, 존 볼턴한테 편지를 써서 '나를 만나달라'고 했는데 원래 외교는 의원은 의원끼리, 그리고 정부는 정부끼리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야당 의원을 백악관에서 안 만나줍니다. 그러나 이제 존 볼턴하고 그전에 제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존 볼턴이 무슨 마음이었는지 만나겠다고 했고, 아마 존 볼턴은 국내 정치 상황을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판문점 선언에 대한 해석은 존 볼턴이나 저나 차이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5분 안에 짧게 얘기하고, 문재인 정부의 본 모습을 알려줬습니다. 아시다시피 문재인 정부는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하려다가, 그것은 실패하니까 교과서에서 자유를 삭제했습니다. 결국 이념적으로 대한민국을 위험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부분 '자유'민주주의를 삭제하려고 했었다니까, 존 볼턴이 굉장히 깜짝 놀라고, 트럼프 정부 안에서는 종전선언이나 평화 협정을 하지 않겠다고 저한테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제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재미있는 게 보수 지지자들은 이걸 모르시고요. 좌파들은 저를 그래서 극렬하게 싫어합니다. 문정인 그 당시 외교안보특보도 강의를 하면서 '나경원 때문에 종전선언을 못하게 됐다'고 비난을 했고, 그 당시 국립외교원장은 책에다도 그걸 쓰기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나라를 구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나서 원내대표가 돼서는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제가 원내대표 돼서 제일 먼저 한 게 환경부 장관 블랙리스트 사건을 밝혀낸 거였습니다. 기억들을 못하시겠지만 그 당시 대통령실의 김태우 씨가 나와서 양심 선언을 했고, 저희가 정보를 수집해서 환경부 장관 블랙리스트 사건을 만천하에 알리고 결국 이 사건으로 환경부 장관은 구속됐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한 것이 손혜원 씨 목포 땅 투기 의혹 사건을 1월에 밝혀내고 목포까지 내려가서 저희가 자료를 받아서 투기 의혹을 밝혀내고, 이것도 역시 기소돼서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구속은 안 됐지만.


그리고 나서 그다음에 조해주 선관위원 건을 밝혀내고, 그다음에 하루에 2명씩 의원을 바꿔치면서 소위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린 것을 저희가 극렬하게 반대했고, 이것을 가지고 저희가 기소돼서 5년여 동안 재판을 받지 않았습니까?


▷진행: 아직까지도 곤욕을 치르고 계신.


▶나경원 의원: 그래서 그 사건이 있었고요. 그러나 그렇게 강경 투쟁했을 때 결집하더라고요. 저희의 지지율은 그전에는 20% 초반, 10% 후반에서 30% 중반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조국 사태'가 났고,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명되니까 너무 많은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법사위원 5명으로는 이걸 밝혀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TF를 만들고 TF 의원들 10명과 보좌진들까지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저희가 그때 웅동학원, 입시 비리, 사모펀드, 팀을 나눠서 회의를 했고 결국은 시민들과 함께 조국 전 장관을 사퇴시켰죠. 그때도 역시 우리 당 지지율이 최고로 올라갔었습니다.


▷진행: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 나라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꽉 채웠어요.


▶나경원 의원: 그때가 10월초에 하고 끝났는데, 우리가 그다음은 협상을 하고 이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과 공수처법이랑 정리를 해야 되는데, 사실은 안타깝게 단식을 들어가시고 하는 바람에, 저희로서는 굉장히 어려워졌고, 저는 12월초에 원내대표 임기는 만료됐지만 그 다음 해가 총선이니까 6개월 이내로 남아 있을 때는 보통 다시 연장을 그냥 하는데 쫓겨났죠. 그래서 안타까웠습니다.


▷진행: 그래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은 일이 그렇게 된, 조국 대표까지 다 끌어내리고 끝맺음만 잘하면 되는 상황에서 끝맺음을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됐다.


▶나경원 의원: 그래서 21대 공천 같은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그때 결국 당시 당대표도 선거에 나가서 떨어져 낙선을 하시고, 그다음 21대가 굉장히 힘들게 출발을 했었던 기억입니다.


제가 21대 낙선을 해갖고 4년을 쉬고 22대를 들어왔는데요. 저는 지금도 너무 속상한 게 지금 법사위원장 민주당이 가지고 끝끝내 공소 취소랑 지금 보완수사권 폐지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말은 서영교 위원장이 거기까지 하고, 그다음에 걔네들도 그쪽도 법사위원장을 교체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같이 우리가 어려워진 시초는 22대에 들어와서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같이 가진다고 했을 때 우리가 끝끝내 막아서 법사위원장을 뺏어 왔었어야 됩니다.


원래 국회는 국회의장하고 법사위원장을 나눠 갖는 거 아니었습니까? 1988년 헌법에 국회한테 막강한 권한을 준 것은 국회 안에서의 견제와 균형이 있어라, 그 견제와 균형을 있게 하는 것이 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나눠 갖는 건데 이걸 민주당이 22대에 들어와서 그렇게 갖는다고 했을 때, 제가 오랜만에 국회에 들어와서 의총을 하는데 그 얘기를 해서 제가 깜짝 놀라서 나가서 '안 된다. 우리 일주일 동안 로텐더홀에서 먹고 자면서 이거 강경하게 반대해야 된다'고 그랬더니, 그때 의원들의 생각이 이런 게 있더라고요. 20대 때 강경 투쟁에서 21대 총선을 망했다, 이렇게 생각들을 하시고 내가 오래간만에 들어왔는데 '저 사람은 또 강경 투쟁이야' 해서 제 얘기를 안 들으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때는 우리 당이 여당이었잖아요. 그때 하는 얘기가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이 있으니까 우리 그냥 이렇게 싸우지 말고 그냥 하자고 그랬는데 저는 그게 결국 오늘의 불행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국회에서 한번 완충을 해줘야 되는데 대통령을 그냥 전면에 그 당시 야당하고 싸우게 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불행한 사태를 가져오는 데 한 원인도 됐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지금이라도 이걸 찾아와야지 저희가 무슨 툴이 생기는데, 지금 저희는 할 수 있는 수단이 아무 것도 없어요. 법사위에 지금 들어가서 보완수사권 갖고 좀 싸우라는데 싸우면 뭐 합니까? 지들은 토론 종결 마음대로 시키고, 아시잖아요?


검찰 해체하는데 토론 딱 30분 했어요. 우리 당 2명, 민주당 2명하고 '토론 종결합니다' 그러고 그냥 표결입니다. 아니, 방통위 폐지하는 데 15분 걸렸어요. 이게 국회입니까? 우리 완전 들러리예요.


▷진행: 그리고 간사는 당에서 알아서 뽑는 건데, 간사를 그걸 투표를 해서 선임을 안 해주고. 난생 처음 보는 일들이.


▶나경원 의원: 난생 처음 보는 일이고요. 법사위원장을 본인들이 가진 다음에 막 본회의장에서 표결을 하니까 국회가 다 표결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국회는 합의제가 다수결보다 먼저고요. 상임위에서는 표결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식물국회가 된 다음에 상임위 표결이 바로 강행 통과인데, 19대 때 4년 내내 10건 했고요. 20대 때 7건 했는데, 21대 후반기부터 민주당이 이제 시동을 걸기 시작했어요. 21대 후반에 63건 했어요. 21대 통틀어서. 22대 들어서 지금 전반기 지났는데 몇 건 한 줄 아십니까? 상임위 표결을 320건 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국회가 아니에요. 우리가 들어가서 우리가 아무리 의견 표명을 해 봤자 그냥 지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예요. 이거 막는 거는 국민들 여론밖에 없습니다. 보완수사권은 지금 사회적 이슈가 있으니까 저들도 주춤하는 거거든요.


지금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국회에서 제가 그래서 배지 떼는 각오로 우리가 싸워야 된다 하는 건데요. 아마 배지 뗀다고 그래도 그들은 콧방귀도 안 낍니다. 배지를 우리가 또 마음대로 못 떼거든요.


▷진행: 그렇죠.


▶나경원 의원: 폐회 중에는 의장이 사인해야 되고, 그러니까 회기가 아닐 때는 의장이 사인해야 되고 회기 중에는 의원들이 표결해야 되잖아요. 3분의 2. 그런데 아마 민주당 의원들이 미운 나경원만 동의하려나.


▷진행: 그러게요. 찍어서 이 사람들만 밖으로 내보내자.


▶나경원 의원: 투쟁력 좋은 사람들.


▷진행: 20년이 넘는 오랜 정치 여정을, 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계속 얘기를 하다 보니까 지금 시간이 많이 흘러서 슬슬 정리를 들어가야 될 것 같은데, 이 부분을 못 여쭤보는 게 아쉬워요. 진짜 대한민국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차분하게 말씀하셔서 그 위험성을 모르실 수가 있는데, 시청자 여러분들 아셔야 돼요. 이 종전선언이라는 게 이제 좌파들의 평생 숙원이었던 주미철, 주한미군 철수로 가는 그런 수순이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이라는 게 없어지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막아내셨고. 이런 많은 활동을 하셨으니까 저는 당연히 이런 활동이 평가받을 줄 알았는데, 정권교체가 되고서도 굉장히 치욕적이고 모멸을 많이 당하셨다. 저출산고령사회부위원장 맡아서 열심히 헝가리 모델 제시하시고 했는데, 해임을 당하시고, 무슨 처신 운운하는 모욕을 당하시고, 이 믿었던 동료 의원들에게 연판장을 당하시고.


▶나경원 의원: 이제, 이제 그만 언급하죠. 안타까운 일이고요. 저는 이제 이게 우리 당의 민주성을 회복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당이 소수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거나 찍어 누르거나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우리 당이 늘 안타까운 것이 시스템화되어 있지 않는 부분, 민주성 부분에 있어서 그런 거에요.


또 하나는 민주당은 안 그런데, 좌파 진영은 안 그러는데요. 우파 진영은 꼭 뭐가 되면 중도 타령을 하는데요. 대한민국은 물론 실용 정책도 굉장히 필요할 때가 있지만, 이 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동안의 역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굉장히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모든 이슈를 보면 이들이 어떻게 움직여질지가 보이기 때문에 걱정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엊그저께 보니까 통일부가 이제 조총련을 일종의 반국가단체로 보는 거를 지우겠다는 거예요. 이제 좀 있으면 아마 조총련에 지원도 한다고 그럴 겁니다. 저는 지금 보면 우리가 역사 전쟁에 있어서도, 최근의 스벅 논쟁이나 이런 걸 보면, 그런 식으로 따지면 어느 화장품 광고가 '625 침투'라고 돼 있던데 '625% 침투'인데 결국은 숫자로 보면 '625 침투'로 보이는 거예요. 그것도 큰 논쟁이 돼야 되지만 우리는 얘기하지 않잖아요?


그런 지금 여러 가지 이념적인 대립 속에서 사실은 그게 다 북한 문제거든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 결국 남북 통일을 어떻게 볼 것이냐, 이런 부분하고 다 귀결되는데, 이걸 평화롭게 중도 운운해서 해결이 되는 게 아닌데, 선거 때만 되면 우리는 중도 타령을 안 하면 안 되고, 민주당 쪽은 절대 중도 타령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꾸 우리가 이 전선이 뒤로 밀리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진행: 지금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국가정체성, 대한민국의 존폐 앞에서 중도라는 건 있을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현안에 대해서는 오늘 굳이 여쭙지 않겠습니다. 장동혁 대표가 지키던 물러나든 2028년 총선 전에는 어차피 총선을 이끌 지도부를 언제가 되든 전당대회로 다시 뽑아야 되거든요. 이 2028년 차기 총선을 이끌 보수 정당의 당대표가 반드시 지녀야 될 자격 요건, 자질, 그리고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될 가치,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나경원 의원: 저는 일단은 어쨌든 갈갈이 찢겨 있는 생각들, 이런 것을 원칙 있게 통합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진행: 원칙 있는 통합.


▶나경원 의원: 예, 무조건 함께 잡탕으로 섞자는 것이 아니라, 원칙 있는 통합이 되어야 될 것이고요. 어쨌든 이념적인 지표는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가치겠죠. 그것이 꼭 지키는 그런 선거가 돼야 될 것이고, 다만 이것을 어떻게 소위 중도 무당층한테 소구할 것이냐,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는 우리 당의 비전을 반드시 제시해야 된다. 지금 이재명 정부 비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다음 대안을 이야기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 준비를 해야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천은 어쨌든 시스템 공천이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진행: 그 부분이 굉장히 민주당에 비해서 뒤처져 있죠?


▶나경원 의원: 그렇습니다. 저희 당은 상임위 재석률이 민주당보다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또한 당의 시스템 자체도 실질적으로 이 로터리 인사로 인해서 전문성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의원급 뿐만 아니라 사무처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저희의 혁신, 진짜 뼈를 깎고 가죽을 벗겨내는 노력 없이는 저희가 정권을 다시 찾아오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저는 그런 준비가 너무 늦지 않게 되어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진행: 지금 굉장히 중요한 점을 지적을 하셨고요. 사실 2016년·2020년·2024년 세 번의 총선을 보수 정당이다 패배했는데, 그 중심에 이 공천 혼란, 잘못된 공천, 그게 있다는 거 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동의하실 거고요. 그 부분에 있어서 확고한 원칙과 대안, 그리고 이재명 정부 비판을 넘어서 이제 보수 정당에 대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대해서 타협이 없는 그런 당대표가 제대로 서서 2028년 총선을 이끌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 하나 같으실 걸로 생각을 합니다.


▷진행: 방송 시작한 지 지금 50분이 다 돼 가는데 오랜 시간 방송을 함께해 주신 시청자분들, 오늘 '나경원을 말한다' 특집 대담을 통해서 '나경원이면 내가 알지'라고 생각했던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 미처 모르고 계셨던 면모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 많으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셨던 분인데 그 부분을 얘기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고, 나중에 또 좋은 기회 다시 한 번 내주실 걸로 생각을 하면서요. 오늘 이제 우리 오랜 기간 동안 함께해 주셨던 우리 데일리안TV 시청자분들, 그리고 많은 또 보수 진영의 당원과 지지자분들에게 덕담 한말씀 해 주시면서 오늘 마무리하면 감사하겠습니다.


▶나경원 의원: 늘 대한민국 지켜주시는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정치 시작한 지 진짜 꽤 됐더라고요. 2002년에 처음 왔죠. 그런데 저를 지탱해 주는 힘이 무엇일까 늘 생각해 보면 역시 애국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하게 잘될 수 있는 것, 또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주는 것은 저는 바로 헌법 가치이고 우리 당이 지향하는 보수의 가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가치 함께 응원해 주시고 그것을 지켜가는 데 있어서 늘 함께 해주신다면 저희가 더 좋은 대한민국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진행: 오늘 귀한 시간 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나경원 의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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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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