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하 연출 연극 ‘하리보김치’ 공연
7월 15일 저녁, 프랑스 남부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아비뇽 미스트랄 고등학교 체육관은 이미 이질적인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의 초청언어로 ‘한국어’가 선정된 올해, 구자하 연출의 신작 ‘하리보 김치’는 축제에서 가장 뜨거운 시선을 받는 무대 중 하나다.
ⓒ아비뇽페스티벌
무대 중앙을 차지한 것은 한국식 포장마차다. 익숙한 주황색 천막과 포장마차 특유의 플라스틱 의자, 그리고 그 위를 비추는 알전구의 불빛은 아비뇽의 오래된 학교 건물을 순식간에 서울의 어느 밤거리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이 포장마차는 단순히 정취를 자극하는 소품이 아니다. 무대 위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 연출가가 제어하는 로봇 오브제들과 결합하며 이주민들이 겪는 은밀한 소외와 문화적 충돌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작품은 ‘음식’을 매개로 삼아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삶과 그 깊숙한 고독을 들여다본다. 무대 위에는 이주와 정체성의 변화를 상징하는 독특한 소재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자기 몸통만 한 집을 등에 지고 느리게 이동하는 달팽이, 유럽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단맛이자 서구식 삶의 방식을 뜻하는 하리보 젤리곰, 그리고 좁은 수조 안에서 꿈틀거리며 결코 지워지지 않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민물장어가 그것이다. 구자하 연출은 서구 사회에 섞이기 위해 애쓰면서도 끝내 변하지 않는 이주민의 뿌리를 이 소재들을 통해 사실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아비뇽페스티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관객의 직접적인 참여다. 포장마차의 주인이 된 구자하 연출은 객석에서 두 명의 관객을 자신의 공간으로 불러들인다. 이들은 단순히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무대 위 포장마차에 앉아 연출가와 마주 보며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핵심 주체가 된다. 낯선 이국땅의 포장마차에서 낯선 이들이 나누는 호흡은 이주민의 고립감을 환대로 치유하는 극의 가장 핵심적인 순간을 완성한다.
공연이 시작되고 포장마차에서 실제로 기름을 두르고 김치전을 부치기 시작하자, 체육관 내부의 공기가 급변했다. 처음에는 강렬하고 낯선 시큼한 김치 냄새에 몇몇 관객이 낯설어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전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가 공간을 채우자 객석 전체에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이 교차했다. 시각과 청각을 넘어 미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연출은 서구 사회 속 아시아계 이주민들이 마주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관객의 감각에 직접적으로 각인시켰다. 무대 위에서는 김치전 외에도 시원한 오이냉국과 바삭하게 튀겨지는 버섯튀김 등 다채로운 한식 요리들이 등장하며 극의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이끌었다.
ⓒ박정선 기자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의 소맥 퍼포먼스였다. 구자하 연출가가 포장마차에서 직접 제조한 소맥 약 20여 잔을 들고 객석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자, 극장 안이 순식간에 술렁였다. 객석 곳곳에서 너도나도 손을 들며 잔을 받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잔을 비워냈다.
공연이 끝난 후 여운은 극장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체육관 외부 마당에 마련된 미니 포장마차에는 밤늦은 시간임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관객들은 공연의 연장선상에서 김치전과 오이냉국을 맛보며 상기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프랑스 리옹에서 온 대학생 클레어는 “처음에는 김치 냄새가 낯설었지만, 포장마차라는 공간 안에서 음식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감각적으로 느껴젔다”며 “특히 달팽이와 하리보 젤리곰 같은 일상적인 소품이 이주민의 고독감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쓰인 점이 인상적이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박정선 기자
ⓒ박정선 기자
벨기에 브뤼셀에서 온 마틴은 “공연 중에 연출가가 나눠준 소맥을 마셨을 때 축제의 진정한 해방감을 느꼈다. 무대 밖에서 이어지는 미니 포장마차의 한식 시식 경험까지,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최고의 시간이었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 대학원생 이준우(28) 씨는 “프랑스의 오래된 고등학교 체육관 안에서 낯익은 주황색 천막을 마주하고, 극장 전체에 한국어 대사와 노래가 울려 퍼지는 순간 자체가 이색적이었다”며 “무대 위 포장마차라는 한국적인 풍경이 현지 해외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 특히 인상 깊었고 공연이 끝난 후 한국음식을 함께 맛보는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를 뭉클한 감정까지 느껴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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