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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들여 '전시행정' 비판만…사라지는 돈의문박물관마을 [데일리안이 간다 10]


입력 2024.01.18 05:04 수정 2024.01.18 05:04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서울시, 2026년까지 돈의문박물관마을 철거해 공원화…120년 만에 돈의문 복원 추진 일환

'돈의문 의상실'·'돈의문상회' 아예 문 닫혀…특정 요일에만 문 여는 곳 많아 방문객들 대부분 헛걸음

방문객들 편의성·안전성 고려하지 않고 곳곳에 '안전제일' 펜스 흉물…"아이하고 오기 불안"

헐어서 공원 만든다니 아쉬움의 목소리도…"돈 들이지 않고 추억 쌓을 체험공간 필요해"

'돈의문 AR·VR 체험관' 1층 건축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서울시가 종로구 정동사거리 인근 돈의문박물관을 철거해 공원화하고 새문안로 구간에 지하도로를 만들어 그 위에 돈의문(서대문)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복원되지 않은 돈의문(서대문)이 120년만에 복원되면 숭례문(남문), 흥인지문(동문), 숙정문(북문)과 함께 서울 한양 도성의 4대문이 모두 완비된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고(故)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지난 2017년 모두 33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하기로 한 사업으로 지난 해까지 120억 원이 쓰인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재생사업을 접목시켜 식당 등이 모여 있던 옛골목 일대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핵심이었고, 이후에도 체험형 전시 공간으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지역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지적과 전시행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도시재생'이라는 명분으로 낙후된 모습까지 그대로 보존하는 바람에 방문객들의 안전에도 문제가 됐다.


◇평일에는 찾는 사람 거의 없어…박물관 이름 무색하게 프로그램 운영도 미비


17일 데일리안은 종로구 송월길 돈의동박물관마을을 찾았다. 낡은 집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오래된 분위기는 감출 수 없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되는 '무인물품 보관소'에는 24개 중 고작 3개만 사용 중이었다. '돈의문 AR·VR 체험관'은 오후 2시까지 14명이 찾았다. 1층 건축실에는 오가는 사람 없이 텅 비어 있었고, 2층 VR 체험 공간에는 방문객 한두 명씩만이 눈에 띄었다.


방문객이 적다고 시설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녀와 돈의문 가상현실(VR) 체험 공간을 찾은 이모(45)씨는 "오후 1시 45분께 찾은 3층 한양도성 VR공간도 보고 싶었는데 점검 중이라고 해 보지 못했고 2층에서만 5분 정도 체험하니 끝났다"며 "지도상 공사장 길이 막혀 있어 못 찾은 곳도 있는데 아이들에게 옛날 학교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2번 한옥 가야금 체험 프로그램은 목금토일에만 운영한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근·현대 의상을 대여해주는 '돈의문 의상실'과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수공예품과 굿즈를 판매하는 '돈의문상회'는 아예 문이 닫혀 있었다. 자개 공예, 세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시설 한옥 체험관도 곳곳에 있었지만 이날 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체험하기는 쉽지 않았다.


광주에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찾은 박모(39)씨는 "서울 여행을 온 김에 아이들과 체험하기 좋을 것 같아서 이곳을 찾았는데 막상 한 곳도 체험해보진 못했다"며 "주로 목요일에 체험 프로그램이 많이 열린다고 해 대충 돌아보다 갈 계획"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보존에만 신경쓰다보니 방문객 편의와 안전은 뒷전


좁은 골목 사이로 출입문이 있는 시설도 있었다. 작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의 작품까지 담아낸 대관 전시 공간인 24동 '시민 갤러리'의 출입문은 건물 외관이 아닌 안쪽 깊숙한 곳에 설치돼 방문객들이 찾기가 어려웠다. 과거 모습을 보존한다는 것도 좋지만 방문객의 편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돈의문박물관마을 스탬프투어를 하던 방문객 김모(15)양은 "돈의문박물관마을 8곳을 방문하면서 스탬프를 모으려고 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있는데 특히 시민갤러리를 찾기 어려웠다"며 "골목 사이로 들어가도 인적이 뜸해서 제대로 온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출입문이 있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60~80년대 우리 영화의 역사와 필름을 전시한 새문안극장 앞에도 '안전제일' 펜스가 놓여 있었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과거 모습 보존을 우선해 조성된 곳임을 감안해도 여러 건물들의 노후도는 심각했다. 마을 내 20동 건물 '서대문여관' 앞은 '안전제일' 펜스가 놓여 있었다. 외벽 일부 훼손 타일 제거 작업으로 길은 막혀 있었다. 인근에 있는 1960~1980년대 영화관을 우리 영화 역사와 필름을 전시한 새문안극장 앞에도 '안전제일' 펜스가 놓여 있었다.


이를 본 방문객 이모(59)씨는 "옛 시절이 생각나 정겹긴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도시재생사업에 수백억 원이나 들여 조성한 곳이라는데 보수 공사하는 곳이나 시설 안전을 주의하라는 문구만 눈에 띄어 아이와 함께 오기는 불안할 것 같다"고 전했다.


17일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이발소'와 추억의 오락실 '돈의문콤퓨타게임장'.ⓒ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그래도 돈의문박물관마을 헐어버린다니 아쉬워요"


돈의문박물관마을을 헐어 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한다는 소식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5년 가까이 돈의문박문물관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A씨는 "코로나 이후에 관람객이 늘어났고 이제서야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데 공원으로 바뀐다니 상실감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방문객 권모(41)씨는 "아이들이 방학이라 체험할 곳을 찾아보다 방문하게 됐는데 교통편이 괜찮고 주변에 돌아볼 곳이 많아 좋았다"며 "이 곳이 공원으로 바뀐다면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생겨 좋겠지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점이 아쉽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추억을 쌓을 체험공간은 많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돈의문박물관마을 곳곳을 사진으로 담고 있던 조모(61)씨는 "편하게 마을을 돌아보는 건 힘들지만 한옥, 얼음빙자 써놓은 낙서 문구, 책방, 소극장, 옛날 영화 프로그램 벽화 등 추억의 환경이 잘 조성돼 있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며 "돈의문(서대문)은 이미 옛날에 사라지고 지금 시점에 다시 만드는 것이니 의미가 없다. 이 곳을 헐고 잔디밭을 만드는 건 경희궁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한 방문객이 돈의문박물관마을 사진을 찍고 있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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