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노인의 일기' '그녀가 말했다'로 부국제 참여
"이창동 '가능한 사랑' 보고 충격...자유롭다고 느껴"
배우 판빙빙이 장편과 단편 두 편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노년의 욕망을 마주하는 여성과 거짓의 과거를 고백하는 여성, 전혀 다른 두 얼굴이다. 그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으로 ‘즐거움’을 꼽으며 국경을 넘나드는 협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판빙빙은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1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해 웨인 왕 감독의 ‘미친 노인의 일기’와 아이번 탄 감독의 ‘그녀가 말했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판빙빙은 작품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제 기준은 즐겁게 놀 수 있느냐다. 영화에서 결과물만 추구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좋은 캐릭터와 극본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감독, 캐릭터와 함께 노는 과정이 즐거운 게 중요하다. 그래야 좋은 컨디션을 찾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고 말했다.
배우 판빙빙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미친 노인의 일기’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정체성을 지키며 활동해 온 웨인 왕 감독의 신작이다. 뇌졸중으로 몸 왼쪽이 마비된 70세 노인 우츠기(릴리 프랭키)가 중국인 며느리 수수(판빙빙)를 향해 관능적인 욕망을 품게 되는 이야기다.
판빙빙은 “웨인 왕 감독을 워낙 좋아했고, 저를 찾아주셨을 때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며 “원작은 노인과 질병, 죽음, 욕망에 대한 의미 있는 소설이었다”고 출연 배경을 밝혔다. 이어 “촬영을 시작할 때 감독님은 이게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고 하셨다. 70대임에도 현장에서 창의력을 보여주셔서 굉장히 즐거웠다”며 “즐겁게 찍고 난 뒤엔 더 많은 작품을 찍을 수도 있겠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그는 “배우로서 위험한 관계에 놓인 캐릭터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현실에서 그런 상황을 자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뇌졸중으로 신체는 퇴화했지만 욕망은 살아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 나이대 노인의 욕망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고 무시해 왔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릴리 프랭키와 제가 연기하는 위험한 관계에서 새로운 불꽃이 튄다. 감독님은 이를 블랙코미디로 그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토론토에서 공개된 이 작품을 두고 관객 반응은 엇갈렸다. 판빙빙은 “일부 관객은 호평했고, 일부는 불편해하기도 했다”며 “영화는 평면이 아니다. 관객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제가 즐겁게 놀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은 예전엔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 원하던 작품이 아니라며 100번 이상 자신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는데, 이번엔 편집 과정도 행복했고 본인이 원하던 작품이 나왔다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말했다’는 와이드 앵글 아시아 단편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남자친구의 청혼을 받은 링(판빙빙)이 범죄단지에서 로맨스 스캠을 하다 탈출했다는 과거를 고백하면서, 그 말의 진실을 묻는 작품이다. 판빙빙은 “싱가포르 신인 감독의 작품이다. 프로듀서가 찾아와 젊고 아카데믹한 감독이 이런 작품을 찍고 싶어 한다고 했고, 각본이 재미있을 것 같아 하겠다고 했다”며 “부국제에 초청받는 성과를 신인 감독에게 줄 수 있다면 영화인으로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 판빙빙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여러 나라 감독과 작업해 온 그는 협업의 의미도 강조했다. 판빙빙은 “중국 배우지만 다양한 나라와 협업했다. 나라마다 고유한 영화 언어와 특색이 있다”며 “‘미친 노인의 일기’에서도 현지 언어를 배웠다. 이런 과정이 새로운 창문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이어 “언어가 소통의 장애가 될 수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영화적 교류”라며 “배우들이 밖으로 나가 다양성과 가능성을 찾아야 새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영화에 대한 부러움도 숨기지 않았다. 판빙빙은 “많은 한국 영화인과 협력하면서 한국 영화가 굉장히 부러웠다. 한국 배우와 감독들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자유롭게 표현한다”며 “토론토에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배우들이 영화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2023년 ‘녹야’로 호흡을 맞춘 이주영에 대해서도 “프로페셔널한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덕분에 제 연기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전했다.
AI 시대 배우의 역할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판빙빙은 “AI는 아직 진행형이다. 중국에는 AI 숏폼 드라마가 많고 저도 가끔 본다”면서도 “한 편을 보든 열 편을 보든 스타일만 다를 뿐 배우들이 비슷하게 생겨 얼굴을 구분하기 어렵다. 이런 모습으로는 좋은 작품이 되긴 힘들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AI가 배우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판빙빙은 “예산 절감을 위해 AI를 쓰지만, 사람이 전달하는 감정과 기술, 노련함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며 “‘가능한 사랑’을 보면서도 AI는 절대 저런 연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감독과 배우가 서로를 잘 알기에 그런 관계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연기란 바로 그런 데서 나온다”고 말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