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비는 소 잔등을 가른다’는 말이 있다. 한 발짝 차이로 비가 내리는 곳과 내리지 않는 곳이 갈리는 여름철 국지성 호우를 이르는 말이다. 문득 몇 년 전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날이 떠오른다. 내 쪽은 와이퍼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장대비가 쏟아졌는데, 중앙분리대 건너편은 거짓말처럼 맑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빗속을 뚫고 달리는 차와 햇빛을 받으며 달리는 차가 한 도로에서 엇갈리는 광경은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도로 한쪽은 소나기가 내리는데 반대쪽은 햇빛이 쏟아지는 장면ⓒAI 이미지 활용
얼마 전 양평 두물머리 부근을 지나다가 나는 그때처럼 자연이 빚어낸 보기 드문 장면과 마주했다. 여주와 이천을 거쳐 온 남한강은 상류에 쏟아진 폭우로 크게 불어나 있었다. 산과 들에서 쓸려 내려온 붉은 흙과 나뭇가지, 여러 부유물을 품은 강물은 거센 황톳빛 물살이었다. 반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춘천과 화천을 지나온 북한강은 푸르고 잔잔했다. 같은 날 같은 하늘 아래를 흘러왔지만, 두 강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서로 다른 물빛은 더욱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두 강물은 두물머리에서 만났지만 섞이지 않았다. 한쪽은 탁하고 거칠었으며, 다른 쪽은 맑고 흐름이 완만했다. 서로 다른 빛깔과 속도를 지닌 두 물줄기가 선명한 경계를 사이에 두고 팔당댐을 향해 천천히 흘렀다. 어느 쪽도 상대의 흐름을 막거나 밀어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과 우리 사회를 생각했다. 황톳빛 남한강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푸른 북한강만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없다. 두 강의 물빛을 달라지게 한 것은 각기 지나온 지역의 지형과 날씨였다. 어느 물줄기가 더 낫다고 가르기보다, 저마다의 환경을 거쳐 이곳에 이르렀으니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남한강의 황토물과 북한강의 푸른 물이 섞이지 않고 흘러가는 모습ⓒAI 이미지 활용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오래된 우화가 있다.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사람은 기둥이라고 하고, 귀를 만진 사람은 부채라고 했다. 저마다 자신이 만진 부분은 옳았지만, 그것이 코끼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통해 진실의 한 부분을 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생각에 이르렀는지 알아보기도 전에 편부터 가르곤 한다. 내 견해와 어긋나면 틀렸다고 단정하고, 상대의 말에서 잘못된 부분만 찾아내려 한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꺾으려 하고, 자신의 판단이 무시되면 패배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내가 옳고 상대가 틀린다고 하기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AI 이미지 활용
갈등은 생각이 같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기 판단만 옳다고 믿고 다른 목소리에 귀를 닫을 때 대립은 깊어진다. 정치적 성향과 세대, 지역과 계층에 따라 갈라진 오늘의 우리 사회가 그렇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자극적인 말과 비난이 빠르게 퍼지고, 큰 목소리가 어느새 여론으로 자리 잡는다. 차분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말은 그 소란 속에 묻히기 십상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물리쳐야만 내 주장이 인정받는다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자기 목소리만 높이면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생각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계를 끊고 상대를 적으로 돌린다면 함께 살아갈 자리는 갈수록 좁아질 수도 있다.
분열된 시대를 이끌었던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정치적 경쟁자와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인물들까지 내각의 주요 직책에 기용했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기보다 반대편의 능력과 견해도 국정에 활용하려 했을 것이다. 남북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정파의 이익보다 나라의 통합과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선택이었다. 생각이 맞지 않는다고 유능한 사람을 밀어내서는 닥쳐올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비판적인 인사를 기용하여 국정에 활용ⓒAI 이미지 활용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과 개성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같이 이루어야 할 목표를 확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넓혀 가는 일이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며, 자신의 판단이 그르다고 깨달으면 고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성숙한 사회는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를 내는 곳이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상대가 말할 권리를 인정하고,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합의점을 찾아가는 곳이다. 화해와 타협을 원칙 없는 양보나 패배로 여겨서도 안 된다. 조금씩 물러나 함께 지켜야 할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다.
다른 색깔의 두 물이 만나 한강이 되듯이 화합이 필요ⓒAI 이미지 활용
어느덧 두물머리에 저녁 햇살이 내려앉았다. 황톳빛 남한강과 푸른 북한강의 수면이 노을을 받아 반짝이자 선명했던 경계도 조금씩 흐려졌다. 두 물줄기는 팔당댐 수문을 지나면서 마침내 ‘한강’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서해를 향한다. 서로 다른 산과 들을 거쳐온 물이 자신의 빛깔을 조금씩 내어주며 더 크고 넓은 강을 이루는 것이다. 물빛은 저마다 달라도 강은 그 다름을 품으며 바다 쪽으로 깊어진다. 우리 사회도 두 강처럼 서로 다른 생각과 사연을 품더라도 나란히 흐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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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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