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제작 지원…“완벽하고 절대적인 창작의 자유 보장받아”
“훌륭한 감독은 협업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들어”…배우 경험이 만든 연출관
메기 질렌할 감독이 마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만든 ‘플레시 임팩트’를 통해 여성과 여배우로 살아가는 경험을 들여다봤다.
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1층 기자회견장에서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플레시 임팩트’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출을 맡은 메기 질렌할 감독이 참석했다.
‘플레시 임팩트’는 마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네시스의 제작 지원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배우로 오랜 시간 활동한 뒤 ‘로스트 도터’로 장편 연출에 데뷔한 질렌할 감독이 마릴린 먼로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봤다.
메기 질렌할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질렌할 감독은 부산 방문 소감으로 “어제 저녁에 도착해 조금 피곤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며 “비행기에서부터 한국 음식을 먹었고 기차를 타고 오면서도 떡을 비롯해 여러 음식을 먹었다. 한국에 온 뒤 계속 먹고 있다”고 웃었다.
‘플레시 임팩트’는 제네시스가 질렌할 감독에게 마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단편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미국에서 마릴린 먼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대부분 아이콘화되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알고 있다. 저 역시 깊이 알고 있지는 않았다”며 “제안을 받고 ‘내가 과연 할 말이 있을까’ 생각하며 일주일 정도 고민했다. 여러 자료를 읽고 영화를 다시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처음 떠올린 구상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다. 질렌할 감독은 “‘이걸 제안하면 안 된다고 하겠지. 그렇다면 만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네시스에서 해보자고 했다”며 “그 주말에 각본을 모두 썼다. 쓰면서 이 프로젝트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엘런 버스틴과 다코타 존슨이 합류하면서 점점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마릴린 먼로를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작품의 시선은 여성 배우들의 경험으로 뻗어나갔다. 질렌할 감독은 “‘플레시 임팩트’는 마릴린 먼로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세상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경험, 특히 여배우로 살아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저 역시 오랫동안 배우로 일했고 그 경험은 제가 이 작품을 연출한 이유와도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에서 각본가와 감독으로 영역을 넓혀온 과정도 돌아봤다. 질렌할 감독은 “어렸을 때는 여성 감독이 정말 많지 않았다. 영화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면서 여성이라면 배우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느껴졌다. 여배우는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한 그는 어느 순간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며 “배우로서 제가 할 것은 다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 8년 전 각본을 쓰면서 새로운 여정과 문이 열렸다. 이후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각본을 쓰고 연출하면서 굉장히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배우로 보낸 시간은 감독으로서 현장을 만드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로스트 도터’를 처음 연출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배우와 촬영감독, 프로덕션 디자이너 등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의 생각과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고 돌아봤다.
질렌할 감독은 “감독인 제가 최종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묵살할 이유는 없다”며 “배우로 활동하며 만난 훌륭한 감독들은 협업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에는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고,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들을 때 혼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코타 존슨과 엘런 버스틴을 캐스팅한 이유도 기존에 보여준 모습을 반복하지 않는 데 있었다.
그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누군가 제가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제안할 때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느꼈다”며 “저 역시 배우들에게 이전에 했던 것을 다시 보여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역할을 만나면서 자신에 관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발견하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코타 존슨에 대해서는 “‘로스트 도터’에서도 함께했고 정말 좋아하는 훌륭한 배우”라며 “마릴린 먼로와 외모가 닮지는 않았다. 하지만 먼로는 너무 오랫동안 아이콘이자 판타지로 소비됐다. 그를 실제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과연 그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창작자가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영화계 현실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13편 가운데 여성 감독 작품은 4편이다.
질렌할 감독은 “여성에게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면 다른 종류의 책을 쓰고 다른 영화를 만든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여성들이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게 되고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남성 감독이 만든 작품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제가 성장하며 본 많은 영화는 남성 감독이 만들었고 그중에는 제 인생을 바꾼 훌륭한 작품도 많다. 하지만 그런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제 방식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제 경험과 100% 같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질렌할 감독은 “다른 배경에서 나온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역시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성 영화에는 다른 언어가 있다. 많은 관객이 그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굉장히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54년 한국전쟁 직후 한국을 찾아 미군 위문공연을 펼친 마릴린 먼로의 일화도 언급됐다. 질렌할 감독은 이를 알고 있었다며 “제가 읽은 바로는 먼로가 그날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훌륭했던 날 가운데 하나로 기억했다”고 전했다.
제네시스에서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완벽하고 절대적인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았다고 했다. 그는 “영화인들을 지원하고 특별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 그들이 원했던 것 같다”며 “처음에는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과감한 이야기를 정말 만들겠다고 할지 놀랐다”고 말했다.
질렌할 감독은 현재 두 개의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디어도 발전시키고 있다. 그는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무엇을 말하려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서 ‘왜 이 아이디어가 지금 나에게 왔는가, 왜 지금 이 작품을 해야 하는가’를 발견한다”며 “두 프로젝트 역시 지금 그 핵심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단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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