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전쟁 개입 파병 없다"…외신은 '거부' 해석
靑 "협조 요청 거절한 것 아냐" 진화
유엔총회 계기 트럼프와 조우 가능성
시민사회 "우회적 파병도 침략전쟁 가담" 반발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비서실장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둘러싼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밖에서는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다는 해석이, 안에서는 파병 자체를 반대하는 범여권의 압박이 동시에 이어지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이 성사될 경우 '전쟁 불개입'과 '청해부대 역할 강화'라는 절충안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 및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면담 등 공식 일정에 들어가지만, 물밑에서는 호르무즈 문제 등 한미 간 현안 조율이 치열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는 지난 3월부터 반년 넘게 이어져 온 현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14일 SNS를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을 지목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을 보낼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파병을 요구했다. 이란 전쟁 개시 이후 제3국에 참전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첫 사례다. 청와대는 당시 "한·미 간에 긴밀하게 소통하고 신중히 검토하여 판단해 나갈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국내 반대 여론은 오히려 확산됐다. 601개 시민단체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파병 거부를 촉구했고, 여론조사에서도 파병 검토가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거론됐다.
여기에 '거부' 해석 논란이 더해진 건 지난 18일 대국민 기자회견 이후다. 이 대통령은 "전쟁의 관여 또는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며 "이미 청해부대가 파견돼서 해적 등을 포함한 선박 수송로 국민 안전 위협에 군이 대비하고 있다. 이를 좀 강화하는 부분에 대해서 검토하고 고심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발언을 두고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파병 요청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파장이 커지자 청와대는 이튿날인 19일 언론 공지를 통해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중동 관련 협조 요청을 거절한 것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다만 "전쟁·전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입장 하에 구체적 기여 방안을 계속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기존 원칙은 그대로 유지했다.
청와대 진화에도 미국 측과의 해석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를 앞두고 공개된 외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파병·대미투자 압박에 대해 "미국 대통령의 입장에서 다양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제3국 간에 이미 진행 중인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금지돼 있다"고 선을 그었다.
외교 채널에서도 양국의 온도차는 드러나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 뒤 정부는 미국 측이 우리 입장에 이해를 표시했다고 설명했지만, 미 국무부 결과자료에는 호르무즈 해협 항행 자유를 위한 협력의 중요성과 대미투자 신속 이행 등이 담겼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내 결정도 한 차례 미뤄졌다. 당초 17일 열릴 예정이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는 파병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청와대는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미국 측 입장을 확인한 뒤로 회의를 미뤘다.
결국 이번 순방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 여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1일 브리핑에서 "미국, 호주 등 주요국 정상들과 다양한 방식의 별도 접촉이 있을 예정"이라며 "긴밀한 정상 간 교류를 이어나가고 우리 국익을 확대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유엔총회 기간 두 정상이 조우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정식 양자회담이 아닌 약식 회동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접촉이 성사되면 파병과 함께 대미투자 이행 문제도 의제로 오를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청해부대 역할 강화라는 절충안에 대해서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와 종교·정당 단체로 구성된 파병반대 긴급행동은 기자회견 다음 날인 19일 서울 종로에서 집회를 열고 "우회적 파병으로 이를 돕는 행위 역시 명백히 침략 전쟁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청해부대를 비전투병으로 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참여연대 등도 논평을 내고 청해부대 임무 강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부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청와대로서는 '거부' 해석은 차단하면서도 지지층 반발은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 결과에 따라 순방 이후 파병 논의 방향도 갈릴 전망이다.
여권에서도 여론과 한미 관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시민사회의 파병 반대 집회에 대해 "여론은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하는 만큼, 여야를 떠나 국민 여론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대통령의 '파병 거부' 해석에 대해 "사실상 거부는 아니다"라며 "한미동맹이라는 틀도 있는 만큼 조율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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