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 개편이 성공하려면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고혈압과 당뇨병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아픈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으니 위기로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숫자는 이미 큰 경고를 보내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고혈압, 당뇨병과 암 등 만성질환으로 숨진 사람은 28만2000여명, 전체 사망의 78.8%다.
고혈압 환자는 2024년 기준으로 774만명, 2형 당뇨병으로 진료받은 사람만 2025년 373만명에 이른다. 고혈압 치료를 위한 진료비는 4조5000억원, 2형 당뇨병은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젊은 세대도 안심할 수 없다.
30대 고혈압 환자 가운데 자신의 병을 아는 사람은 10명 중 4명에 그치고 30세 미만 2형 당뇨병 발생률은 10여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다. 초고령사회와 청년 만성질환이라는 이중의 과제 앞에서 일부 지역의 일부 노인만 돌보는 사업을 확장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질병관리청이 19개 시·군·구의 '고혈압·당뇨병 등록교육센터'를 '만성질환 통합관리센터'로 바꾸고 2027년 하반기부터 대상 지역을 단계적으로 넓히겠다고 발표했다. 65세 이상 등록환자에게 주던 연 4만2000~6만6000원의 진료비·약제비 지원은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의 건강생활실천지원금(연 최대 8만원)으로 바뀐다.
오래 지원을 받아 온 어르신과 현장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한정된 재원으로 더 많은 국민을 돌봐야 하는 정부의 고육지책이자 만성질환 정책의 확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고혈압, 당뇨병환자를 지원하는 사업은 2007년 대구지역에서 국가시범사업으로 첫발을 뗏고 지역사회 만성질환 관리의 소중한 마중물이 됐다. 그후 2012년에 19개 시군구에 고혈압당뇨병등록관리센터가 설치, 운영됐으나 14년 동안 확장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었다.
현재 전국 시군구의 8.4%, 등록환자 약 40만명은 65세 이상 고혈압 환자 609만명의 6.6% 수준이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예산이 연중에 바닥나 지원금을 제때 주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해마다 예산을 새로 따내야 하는 구조로는 사는 곳에 따라 혜택이 달라지는 형평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재원을 건강보험의 건강생활실천지원금으로 옮기고 보건복지부와 질병청으로 나뉘어 있던 두 사업을 잇겠다는 이번 개편은 바로 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책적 전환이라 볼 수 있겠다.
개편의 장점은 분명하다. 지원 대상이 65세 이상에서 전 연령으로, 질환이 고혈압·당뇨병에서 이상지질혈증 등으로 넓어진다. 혜택은 사는 지역이 아니라 참여 여부에 따라 주어지고 지원 한도는 두 배 가까이 커진다.
별도 카드 없이 동네의원에서 포인트로 진료비를 낼 수 있게 된 것도 반갑다. 청년·중년층을 공중보건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합병증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예방의 관점에서 큰 진전이다.
기존에 운영 중인 센터에서는 교육·상담과 리콜·리마인드 같은 기존 서비스는 그대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장점을 살리려면 속도와 내실을 함께 챙겨야 한다.
이미 76만여명이 등록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과 통합관리센터가 한 몸처럼 움직이도록 동네의원은 진료와 처방을, 보건소와 센터는 교육·상담과 지역 연계를 맡는 역할 분담을 지역마다 분명히 해야 한다.
전환기에 보완할 점도 적지 않다. 다음 4가지 전략으로 단점의 빈틈을 줄일 것을 제안한다.
첫째, 만성질환관리법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관련 법안은 2012년 이후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5년 단위 종합계획, 중앙·광역·기초 단위 센터의 설치 근거와 인력 기준, 안정적인 재원을 법에 담아야 이번 개편이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2013년에 시행됐던 '만성질환 예방 및 관리모형 개발' 보고서에서도 지적됐듯이, 환자등록과 통계뿐 아니라 교육·상담 같은 현장 활동의 근거까지 법에 담아야 한다.
둘째, 재정 인센티브가 대상자를 참여와 지속적 지원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 디지털 기기에 낯선 어르신이나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 포인트 제도는 또 하나의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기존 등록 노인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일정 기간 전환기 보호 장치를 두고 보건소와 센터가 직접 찾아가 등록과 사용을 도와야 한다. 걷기·자가측정·교육 이수처럼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행동에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는 살리되 치료를 중단한 환자를 다시 불러오는 연결고리는 더 단단히 해야 한다.
셋째, 만성질환의 관리를 위한 지원의 질적 완성도도 높여야 한다. 정책보고서 등에는 환자 발견의 부족, 사업 간 정보 단절, 복합만성질환을 돌볼 코디네이터 부재를 기존 지원정책과 사업의 약점으로 지적했다.
지금도 케어코디네이터를 둔 의원은 열 곳 중 한 곳에 그친다. 센터가 여러 의원을 지원하는 공동 코디네이터를 두고 건강검진 결과와 연계해 숨은 환자를 찾아내며, 의원과 센터가 환자 정보를 함께 볼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낮에 보건소를 찾기 어려운 직장인을 위해서는 비대면 상담과 야간시간의 교육상담도 시도해야 한다. 또 혈압·혈당 조절률과 합병증 발생 같은 성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공개하고 그 결과를 제도 개선에 반영해야 한다.
넷째, 시·도 단위의 교육상담 지원센터 역할을 강화해 교육·상담의 양과 질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 센터가 시·군·구로 확대된다면 지역 간 역량 편차를 메울 광역 거점이 필요하다.
대구시는 시범사업이 끝난 뒤에도 광역교육정보센터의 역할을 하는 '시민건강놀이터'를 신설해 매년 20억원 정도의 시 예산으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콜센터, 교육자료 개발, 민간의료기관과의 교육협약을 지속하고 구·군의 교육상담 역량을 지원하고 있다.
이 경험을 전국 17개 시·도로 넓혀, 광역센터가 표준 교육과정과 상담 매뉴얼을 만들고 간호사·영양사·운동지도자 등 교육상담 인력을 양성·인증하며, 기초 센터의 서비스 질을 점검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동네의원이 직접 하기 어려운 영양·운동·자가관리 교육은 광역센터와 시군구 센터가 맡아야 의원의 교육상담 부담도 덜 수 있다.
등록 환자가 기본교육에서 심화교육으로, 단일 질환에서 복합만성질환 관리로 단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 경로를 체계화하는 것도 광역센터의 몫이다. 광역센터의 설치 근거와 국비 지원도 만성질환관리법에 담아야 한다.
만성질환 관리는 한 두 해 성적표로 평가할 수 없다. 오늘 놓친 혈압과 혈당은 10년 뒤 뇌졸중과 심근경색, 신장투석 등으로 되돌아온다. 방향은 정해졌다면 이제 정부와 지자체, 의료계와 학계가 지난 16년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새 제도가 현장에 잘 뿌리내리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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