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대출규제에도 집값 상승…“안 했으면 더 심했을 것”
금융권 AI 해킹에 “기본 대응도 미흡”…망분리 규제 손질
200조 국민성장펀드 ‘전건 승인·이해충돌’ 논란…국책은행 책임론도
집값 불안과 금융권 해킹 사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성장펀드 투자심사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금융당국의 정책 실효성이 국정감사에서 집중 검증을 받았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금융권을 덮친 해킹 사고부터 좀처럼 잡히지 않는 수도권 집값까지 금융당국의 정책 실효성이 국정감사 도마에 올랐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규제를 잇따라 강화했지만 서울 집값 상승세를 꺾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최근 금융회사 7곳에서 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서도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체계가 검증대에 올랐다.
150조원에서 200조원으로 확대되는 국민성장펀드도 투자 안건 전건 승인과 심의위원 이해충돌 문제가 제기되면서 투자심의의 실효성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8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금융위원회와 한국산업은행, IBK기업은행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대출 옥죄었지만 집값은 상승…이억원 “안 했으면 더 심했을 것”
이날 국감에서는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가계대출 규제의 실효성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금융당국은 수도권·규제지역의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등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해왔다.
하지만 서울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대출규제가 실제 집값 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는 불리해진 반면 현금 동원력이 큰 수요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시장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대출규제로 집값을 잡는 데 실패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규제가 이어지는 사이 서울 외곽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지역으로 집값 상승세가 번지는 현상도 짚었다.
이에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저희들이 그걸 안 했으면 아마 더 심하지 않았을까”라며 주담대 규제의 효과가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잇따른 규제에도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대출규제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권 해킹에 “기본 대응도 미흡”…망분리 규제 손질
금융권 해킹 사고를 둘러싸고는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체계가 집중적인 검증을 받았다.
최근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하나은행, BNK부산은행을 비롯해 금융회사 7곳에서 해킹에 따른 정보유출 피해가 확인됐다.
공격에 활용된 인터넷주소(IP)가 다른 금융회사에도 접근을 시도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 위원장은 “AI 해킹 위협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 대응 방식은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도 굉장히 미흡하다”며 “철저하게 더 점검하고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망분리 규제가 금융회사의 AI 보안기술 활용을 제약한다는 지적에는 “AI를 막으려면 결국 AI를 쓸 수밖에 없다”며 “망분리 규제를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지 여러 단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무위는 이날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등 5대 은행장을 추가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들은 오는 19일 금융감독원 국감에 출석할 예정이다.
200조로 커지는 국민성장펀드…‘전건 승인·이해충돌’ 도마
국민성장펀드는 투자심의의 실효성과 공정성이 집중적인 검증을 받았다.
금융위는 국민성장펀드를 기존 150조원에서 200조원으로 확대하고 지원 대상과 직접투자 규모도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8월까지 기금운용심의위원회에 상정된 투자 안건 30건이 모두 승인됐다며 심사의 실효성을 문제 삼았다.
일부 안건은 사전심사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는데도 최종 승인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 의원은 AI 기업 업스테이지와 퓨리오사AI 투자를 사례로 들었다.
투자심의 과정에서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최종 승인이 이뤄졌고 민간투자가 충분히 확정되기 전에 정부가 먼저 투자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이해충돌 가능성도 도마에 올랐다.
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승인된 투자 안건 30건 가운데 7건에서 심의위원과 투자 대상 기업 간 이해관계가 확인돼 해당 위원이 심사에서 제외됐다.
일부 위원이 투자 대상 기업 계열사의 사외이사를 맡거나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인이 투자 대상으로 선정된 사례도 거론됐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투자 편중 문제를 지적했다. 송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승인된 11건의 투자금액 중 수도권 비중은 55.4%였고 대기업 비중은 86%에 달했다. 중소기업 비중은 2%에 그쳤다.
이 위원장은 투자심의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에는 선을 그었다.
일부 위원의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위원회 전체 논의를 거쳐 투자가 결정됐고, 이해관계가 있는 위원은 해당 안건 심의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민간자금만으로는 잘 안 움직이니까 정부가 마중물이 돼서 민간자금을 같이 끌어와 미래를 준비해 달라는 것”이라며 “이 자금들이 소홀히 운영되지 않도록 이런 부분을 더 신경 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사고에 23년 장기추심까지…국책은행 책임론
정책금융기관의 내부통제와 사회적 책임도 도마에 올랐다.
기업은행은 지난 8월 전력반도체 업체와 관련해 대출 등 여신 74억4000만원과 지분투자 20억원을 합쳐 94억4000만원 규모의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과거 기업은행이 투자한 업체에서 사기 행위가 적발됐는데도 해당 업체 대표를 지낸 인물이 새로 설립한 회사에 다시 대출과 투자를 집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민영 기업은행장은 “최근 금융사고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대단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사고 보고 및 대응체계를 강화해 내부통제의 빈틈을 철저히 메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기 연체채권을 담은 유동화회사 ‘상록수’ 문제도 제기됐다.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은행이 19년 동안 상록수로부터 총 215억원의 배당을 받았고, 산업은행도 23년간 사실상 운영을 맡으며 84억원의 수수료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장 행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답했고,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도 장기간 채권 추심이 이어진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23년 동안 계속해서 추심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책임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해당 채권을 새도약기금이 매입하도록 정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대출규제와 금융권 보안부터 국민성장펀드 투자심사, 국책은행 내부통제까지 금융정책 전반의 실효성이 검증대에 올랐다.
정책의 취지와 규모보다는 실제 성과와 집행 과정에서 드러난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과제가 금융당국에 남았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