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사과' 요구 못하고 불의의 '사고'라 회피하는 대통령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6.10.02 11:00  수정 2026.10.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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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불명→누가 심었나 모른다→방어용일 수도→절제 기조 담화

정부·여당의 굴욕적 북한 감싸기 빌드업…들끓는 민심은 나몰라라

'불의의 사고' 언급하며 우리 장병 '가해자 없는 피해자' 만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 활주로에서 열린 제78회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군인들이 북한이 몰래 매설한 지뢰에 중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북한은 일절 언급하지도 않은 채 ‘불의의 사고’로 규정합니다. 무려 ‘국군의 날 기념사’를 통해 전 군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질 만한 이런 굴종의 발언을 던진 겁니다.


불의의 사고에는 가해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대응 조치를 할 수도 없고, 사과를 받아낼 상대도 없습니다. 왜 이런 상황을 만들려는 걸까요.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본인의 ‘대북 관계에서의 성과’가 ‘국민의 안전’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생각이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 9월 21일 최전방을 지키는 우리 군인 3명이 비무장지대(DMZ) 수색 작전 중 지뢰 폭발로 부상을 당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 정부와 여당이 보인 행태를 타임라인순으로 짚어보겠습니다.


우리 군은 사건 발생 직후 군인들의 부상 원인을 ‘미상 폭발’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곳까지 부탄가스통이라도 떠내려갔을거라 생각한 것일까요. 뭐 어쨌든, 당시만 해도 상황 파악이 어려웠을 테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게 정상이라고 칩시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22일 취임한 국방부의 수장 강신철 장관은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건의 원인을 ‘지뢰 추정 폭발물’로 언급한 뒤 “우리 것이든 북한 것이든 누가 심었느냐, 심은 것이냐 유실된 것이냐를 지금 알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정부는 ‘불확실성’을 감안한 조심스러운 태도였다기보다는 문제의 지뢰가 우리 것으로 밝혀져 북한과 마찰을 빚을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조작할 생각이었다는 상상까진 하지 않겠습니다. 그들도 정권이 바뀐 뒤 줄줄이 감방 동기로 만나고 싶진 않을 테니 말입니다.


합동참모본부가 28일 서울 국방부에서 DMZ 지뢰 폭발 사고 관련 브리핑을 진행했다. 사진은 이 날 브리핑에서 공개된 현장 모습. ⓒ합동참모본부

야당과 국민들의 분노가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심기를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추석 연휴 내내 현장 조사가 미뤄지는 상황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야당 의원들뿐이었습니다. 연휴 기간 장대비라도 내려 증거가 은폐되길 바란 자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장대비는 내리지 않았고, 우리 군의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28일 우리 장병들을 다치게 한 지뢰가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북한군 지뢰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어졌음에도, 이 나라를 이끄는 자들은 굴욕적 대응을 멈추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진성준 국회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라디오 방송에서 북한 지뢰가 우리 군을 겨냥한 공격 목적이 아니라 방어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지뢰는 방어용으로 많이 쓰입니다. 아군의 영토에 지뢰를 심어 적의 진격을 늦추는 용도라면 방어용이 맞습니다. 하지만 상대 영토에 심어 놓는다면 그건 공격용입니다. 지뢰 폭발은 군사분계선(MDL) 남쪽에서 벌어졌습니다. 진 의원의 가족이 오가는 개인 땅에 누가 지뢰를 매설해 놓는다면 그걸 공격 행위가 아니라고 할 것인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무기의 개념에 대한 무지는 어쩔 수 없다 쳐도, 국회 국방위원장이라는 사람이 굳이 아군이 피해를 입은 사안을 놓고 적군의 잘못이 아닐 가능성을 꾸역꾸역 들이미는 이유는 무엇인지 국민들은 궁금해 합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같은 날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우리 군의 발표 내용을 부인하면서 이번 사건을 우리 측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군이 국경선에서 실사격을 한다면 가차 없이 보복하겠다는 협박까지 던졌습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기가 막힙니다. 청와대는 김여정의 협박에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닫습니다. 한때 대북 첩보전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국가정보원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비공개 간담회에서 김여정의 담화에 대해 “로키(low-key·절제 기조)로 담화했다”고 평가하며 처절한 북한 감싸기에 나섭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군은 일말의 자존심이라도 지키려는 노력을 보였다는 겁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정상적인 수색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장병들이 북한군의 지뢰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면서 “북측의 사과와 함께 책임 있는 조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유엔군사령부도 같은 날 언론 공지를 통해 “현장 조사 과정에서 MDL 이남 대한민국 측 지역에서 북한 대인지뢰 1발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엔사는 정전협정 위반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으며, 확립된 정전협정 체계에 따라 조치하고 있다”고 밝히며 북한의 잘못이 분명하다고 확인해줬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어떻게 북한의 사과를 받아낼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무력 충돌 위험을 고조시키는 군사적 대응은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고, 과거 목함지뢰 사건 때 우리의 강력한 응징 수단이었던 대북 확성기는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후 철거해 버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김정은과의 회담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경제적 압박도 힘듭니다. 어차피 북한도 오랜 세월 경제제재를 버티며 중국과 러시아라는 뒷배를 만들어놓은 상태라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은 ‘비겁한 회피’였습니다. 이달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얼마 전 비무장지대에서 불의의 사고로 부상을 당하신 우리의 장병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하면 마땅한 대응 방법도 없고, 사과를 받아낼 자신도 없으니 ‘불의의 사고’라고 회피해버린 겁니다. 마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한 듯 ‘재수가 없어 그런 일을 당했으니 안타깝다’는 식의 발언을 위로랍시고 한 겁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뉴시스

이 대통령보다 한술 더 뜬 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었습니다. 사실 김여정의 담화가 나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비위를 맞추던 정 장관이 지뢰 폭발 사건으로 논란이 한창 뜨겁던 지난 29일 유럽 출장을 떠난 건 우리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당초 5일까지였던 일정을 굳이 일부 취소하고 1일 조기 귀국했습니다. 그리고는 기어이 우려되던 발언을 던졌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우리의 노력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 왜 이러한 불행한 일이 반복되는지 깊이 성찰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공격에 당한 우리가 대체 뭘 성찰해야 한다는 걸까요. 우리 국민은 이해를 못 하지만 김정은과 김여정을 비롯한 평양의 지도부는 아주 흡족해 할 만한 발언일 것 같습니다.


우리 군인이, 우리 국민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의 도발로 심각한 부상을 당했는데 우리 대통령과, 장관과,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북 관계에서의 성과에 차질이 생길까 벌벌 떠는 모습만 보여왔습니다.


과연 우리 정부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북한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까요? 북한은 사과할 생각이 없어 보이고 우리 정부도 사과를 받아낼 의지가 전혀 없다는 걸 이재명 대통령이 증명해 줬습니다. 대통령이 “한국인 건드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라고 하지 않았냐고요? 대통령은 “그래서 어쩌라고요”라는 말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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