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0억원 받고 中 대주주에 매각 추진…조직·고용 계획은 설명 부족
회사의 가치 키운 구성원들, 새 주인 맞는 과정에서도 존중받아야
경기 성남시 위메이드 사옥의 위메이드와 위믹스 로고.ⓒ연합뉴스
여기 큰 변화를 앞둔 조직이 있습니다. 아랫사람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자리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높으신 분들은 구체적인 설명 대신 "아무 문제 없다"고 공언합니다.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린다고도 합니다. 듣기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 말을 하는 사람은 한 몫 든든하게 챙겨 떠날 준비를 마쳤고, 듣는 사람들은 남아서 그 미래를 감당해야 합니다.
판교의 한 중견 게임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위메이드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6월 갑자기 창업자이자 오너인 박관호 의장이 본인 보유 지분 39%가량을 홍콩 소재 투자회사 네오펄스에 매각하기로 한 겁니다. 거래 대금만 9200억원에 달합니다.
박 의장은 지분 정리 사실을 사내 게시판에 알리며 임직원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위메이드의 '미르' 지식재산권(IP)가 중국 내에서 대흥행 한 만큼, 경쟁력이 확보된 시장에서 새 출발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죠. 그는 "부모가 다 자란 자식을 더 큰 세상으로 떠나보내듯", "새로운 회사에서 여러분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수사로 임직원들을 다독였습니다.
그럼 박 의장의 말대로, 위메이드는 더 큰 시장에서 기존 임직원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 할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우선 문제는 지분을 사가는 쪽입니다. 중국계 자본이 새롭게 대주주로 들어오는데요, 일부 계층에 만연한 반중 감정의 색안경을 벗더라도 우려되는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박관호 위메이드 의장.ⓒ위메이드
먼저 지분 인수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새 대주주는 컨소시엄입니다. 매각대금 9200억원 가운데 약 4000억원을 중국 게임사 '킹넷'이 조달하는 구조입니다. 나머지는 네오펄스 측이 부담합니다. 킹넷이 단독으로 위메이드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킹넷의 홍콩 공시를 따라가면 홍콩 투자자 '목푸이밍'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여러 투자법인을 거쳐 네오펄스를 지배하고, 킹넷은 그 중간에 있는 네오스피어 지분 49%를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거래가 완료되면 목푸이밍 측은 네오스피어 지분 51%, 킹넷 측은 49%를 보유합니다. 이들이 간접 지배하는 네오펄스가 위메이드 지분 40.25%를 가진 최대주주가 됩니다. 참 복잡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누가 어떻게 내릴지, 기존 사업과 조직을 어떤 기준으로 유지할지도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결국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내부 임직원들입니다. 멀쩡한 중견 게임사에 다니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대주주가 바뀌는데, 그 대주주가 중국계인 데다 실질적인 의사 결정 주체가 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입니다. 고용 불안 우려가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새 대주주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 보면 우려는 더욱 커집니다. 중국 시장이 위메이드에 원하는 것은 '미르' IP의 온전한 소유권과 게임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이지 회사의 모든 사업이 아닙니다. 상장까지 한 중견 게임사는 필연적으로 회사 유지를 위해 비매출부서의 덩치도 커지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고정비도 늘어납니다. IP 확보가 1순위인 새 주인으로선 그리 달갑지 않은 구조입니다.
애초에 회사를 통째로 인수한다는 것 자체가 중국 자본에게는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방안은 비싼 인수대금 없이 미르 IP에 대한 권리만 온전히 확보하는 것이니까요.
미르 IP를 둘러싼 위메이드와 중국 업체들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복잡했습니다. 과거 박관호 의장과 개발진은 액토즈소프트에서 첫 작품 '미르의 전설'을 만들었고, 2000년 위메이드를 설립한 뒤 후속작 미르2를 내놨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르2·3는 양사 공동저작권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중국에서 크게 흥행하고 수많은 파생 게임의 바탕이 된 것도 첫 작품보다 미르2였습니다.
중국 샨다게임즈, 지금의 셩취게임즈는 2004년 액토즈를 인수했습니다. 그러나 액토즈를 손에 넣었다고 미르2·3의 권리까지 온전히 가져간 것은 아닙니다. 위메이드 측에도 공동저작권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양측은 중국 내 라이선스 권한과 수익 배분 등을 놓고 오랜 소송전을 벌였습니다. 결국 2023년에는 양측의 합의로 위메이드 자회사 전기아이피가 액토즈에 중국 독점권을 부여했고, 해당 권리는 여전히 효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번 인수에 참여한 킹넷도 셩취게임즈와는 별개로 위메이드와 미르 IP 분쟁을 겪은 바 있습니다. 자회사 절강환유가 서비스한 미르2 기반 게임 '남월전기'의 로열티 미지급 문제 등으로 위메이드와 다퉈왔습니다. 올해 2월 화해 계약을 체결하고 4월 약 430억원의 화해금을 수령했습니다. 이처럼 미르 IP는 중국 업체들로서는 갖고 싶지만 쉽게 뺏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떡'을 취할 수 없다면 '그림' 자체를 가져야겠죠. 킹넷이 컨소시엄으로 외부 자본까지 조달해 가며 위메이드 인수를 시도한 배경입니다. 킹넷 공시에는 인수 완료 이후 미르 IP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추진해 킹넷 측이 활용하도록 하는 약정도 담겼습니다. 기존 셩취 계열의 중국 사업권과 어떻게 조정할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원천 권리자와 지분 관계를 맺고 IP 활용 권리까지 확보하려는 구상은 드러난 셈입니다.
위메이드 미르2. 중국에서는 한국의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위상의 '민속놀이'격 게임으로 평가 받습니다.ⓒ위메이드
참 복잡하게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복잡한 과정 속에서 임직원들은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수십 년간 미르 IP를 개발하고 운영하며 지금의 위메이드를 일궈낸 노동자들이 갑자기 대주주 변경을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심지어 미르 IP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위믹스 사업부, 비개발·비운영 직군, 위메이드의 자회사(맥스, 플레이 등) 임직원들은 고용을 위협받게 됐습니다.
위메이드의 전신격인 회사에서는 이미 '중국계 대주주: 절망편'이 찍혔습니다. 셩취에 인수된 액토즈는 과거 미르라는 걸출한 IP를 개발했던 게 무색하게도 어느덧 신작 개발보다는 해외 게임 퍼블리싱과 미르 IP 라이선스 사업만 수행하는 회사가 돼버렸습니다. 위메이드 임직원들이 액토즈의 현재에 자신들의 암울한 미래를 비춰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노동자들이 결단을 내립니다. 위믹스 사태로 한참 회사가 시끄러울 때도 출범하지 않았던 노조가 9월 30일 처음 등장했습니다. 노조의 요구는 단순합니다. 대주주 변경에 따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거부하고, 위믹스 사업을 포함한 주요 사업부의 고용 승계와 조직 존속 등을 요구합니다.
회사를 키워온 구성원들이 대주주 변경 이후의 사업과 조직 운영을 논의하는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노조 설립을 통해 드러냈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성과의 향방을 일방적인 통보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박 의장은 주식 매각의 대가로 9200억원을 손에 쥐게 됐습니다. 본인 재산을 팔겠다는 데 법적으로 문제될 일은 아니지만, 그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 구성원들을 외면한 것은 어떤 미사여구로도 포장할 수 없습니다.
중국계인 새 주인이 미르를 개발하고, 서비스를 운영하고, IP를 유지하며 회사의 다른 사업까지 꾸려온 구성원들은 비용으로만 계산해 밀어낸 채 미르 IP만 필요한 자산으로 취한다면 거래의 윤리나 고용불안에 대한 문제는 물론, 국부유출 논란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아직 인수 이후 구조조정 여부가 구체화되진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설명하고 협의해야 합니다. 어떤 사업을 이어갈지, 조직을 바꿔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기여와 권리를 어떻게 존중할지 밝혀야 합니다. '더 좋은 미래'라는 말은 이런 질문에 답할 때 비로소 직원들에게도 의미가 생깁니다.
정부와 국회도 들여다봐야 할 부분입니다.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게임과 IP입니다. 필요한 부분만 빼먹고 한국에는 고용불안만 남기는 방식의 매각이라면 당연히 개입해야 합니다. 인수자와 기존 경영진이 어떤 사업을 이어가고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 설명하게 하고, 국내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과 개발자들의 개발 역량은 여전히 세계적입니다. 그만큼 좋은 매물이 될 수도 있지만, 매각 과정이 주먹구구식이 된다면 한국 게임산업의 토양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기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떠나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위메이드의 매각이 부정적 선례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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