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일어섰다 – 곽재우와 권율의 초반 활약 [정명섭의 실록 읽기㊺]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9.29 10:33  수정 2026.09.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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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반, 조선군은 거의 모든 전선에서 패했다. 훈련도 부족하고 무기도 낙후되었으며 지휘 체계도 엉망이었다. 물론 조선도 일본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나름 준비를 하긴 했지만 일본군 20만명이 쳐들어 올 줄은 몰랐다. 왕은 도망쳤고, 한양은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40여 일만에 빼앗겼다. 그리고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일본군은 평양까지 점령했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정규군이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섰다. 의병(義兵)이었다. 'Righteous armies'라고 번역되는 의병은 보통 민병대로 해석된다. 정규군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무장을 하고 싸운다는 개념이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레드코트라고 불린 영국군과 싸운 미국의 민병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들은 정식 선전포고 후에 대륙군이라는 이름으로 정규군으로 편성되었다.


조선의 의병은 서양의 민병대나 예비군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국가를 단순히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충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사대부들이 의병을 일으키고, 백성들이 여기에 호응하는 형태로 조직되었다. 일본이 쳐들어와서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임금이 의주까지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었다.


권율 장군의 집터 표지석 ⓒ직접 촬영

여기에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조선을 명나라로 쳐들어갈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백성들에게 양반과 관리들을 처형하고, 신분제를 폐지한다는 달콤한 회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면서 국경인과 공위겸 같은 순왜라고 부르는 일본에게 협조하는 자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 의해 해상 보급이 막히면서 상황이 바뀐다. 군량이 부족해진 일본군은 현지 조달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사실상 약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군이 한 약속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의병에 가담한다. 의병 운동의 불꽃은 전국 각지에서 타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이 홍의장군 곽재우다.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킨 것은 서기 1592년 4월 20일이었다.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관군이 무너지고 조정이 우왕좌왕하던 때에 경남 의령에서 사재를 털어 병사들을 모았다. 그해, 11월 25일 선조 실록에는 김수가 곽재우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실록에 남아있다.


의병을 남보다 제일 먼저 일으켜 4월 20일 사이에 기병하였는데 처음 기병할 때 사람들이 의심했었지만 신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붉은 옷을 걸치고 의병들을 지휘했는데 일본군에게는 기이하고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었다. 홍의 장군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곽재우는 정규전 대신 게릴라 전술을 택했다. 강을 이용한 기습과 매복으로 일본군의 보급로에 타격을 가했고, 일본군이 반격하면 퇴각을 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의령, 함안 일대를 끝까지 지켜내어 일본군이 전라도로 진출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기여 한 것이었다. 전라도는 조선의 곡창지대였다. 그 땅을 지킨 것이 이후 전세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라도를 지키는 힘을 보탠 또 다른 인물이 바로 권율이다. 권율은 문신 출신으로 정규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그의 대표적인 승리는 이치 전투와 행주산성 전투로 꼽힌다. 이치 전투는 1592년 8월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고개에서 벌어졌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이치 전투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치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하여 동복현의 군사를 거느리고 위대기·공시억 등과 함께 재를 점거하여 크게 싸웠다. 적이 낭떠러지를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를 의지하여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쏘는 대로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종일토록 교전하여 적병을 대파하였는데,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흘러 초목까지 피비린내가 났다. 이날 황진이 탄환에 맞아 조금 사기가 저하되자 권율이 장사들을 독려하여 계속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이치 전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라도를 지켜낸 중요한 승리였다. 일본군이 전라도를 손에 넣었다면 조선은 주요 곡식 공급처와 이순신의 수군도 잃었을 것이다.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들과 권율의 관군이 힘을 합쳐 전라도를 지켜낸 것은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전쟁의 흐름은 한순간에 바뀌거나 뒤집히지 않는다.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임진왜란 초반, 일본에게 기울었던 전세가 다시 뒤집힌 것은 의병과 수군, 그리고 권율 같은 뛰어난 지휘관 때문이다. 아울러, 의병의 등장은 조선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단순히 왕의 백성이 아니라 이 땅을 지킬 의무와 권리가 있는 존재로 자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진왜란은 조선에 거대한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그 상처 속에서 백성이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곽재우가 사재를 털어 군사를 모으고 권율이 이치 고개의 방어선을 지켜내던 그 순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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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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