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30분 문 여는 은행점포…누구를 위한 시간표인가 [기자수첩-금융]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입력 2026.10.01 07:07  수정 2026.10.0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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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뒤편에 고스란히 남겨진

금융 취약계층의 문턱과 공공성

한 시민이 은행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오전 8시 50분,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영업점 앞에는 개점을 기다리는 서너 명의 어르신과 자영업자가 줄을 서 있다.


스마트폰 화면 터치 몇 번으로 송금과 대출이 끝나는 ‘손안의 은행’ 시대라지만, 은행 셔터가 올라가는 순간을 직접 기다려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그런데 내년 4월부터는 이 풍경이 30분 더 늦춰질 전망이다.


금융 노사가 장장 5개월에 걸친 교섭 끝에 전국 은행 개점 시간을 오전 9시에서 9시 30분으로 변경하기로 잠정 합의하면서다.


주 4.5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맞물린 가운데, 은행원의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진일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하지만 문 밖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개점을 기다리던 한 고객은 "지금도 은행 한 번 방문하려면 짬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이제는 더 어려워지는 거냐"고 말했다.


물론 노동 환경 개선과 직원의 삶의 질 향상은 존중받아야 할 가치다.


문제는 그에 따른 대가가 금융 소비자와 취약계층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디지털 전환을 앞세워 지난 수년간 점포를 급격히 줄여왔다.


동네 은행이 사라져 버스를 타고 원정 상담을 가야 하는 고령층, 장사를 시작하기 전 서둘러 잔돈을 바꾸거나 대출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 소상공인에게 대면 점포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생활 인프라다.


금융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국이 지난 7월부터 우체국 등을 활용한 '은행대리업' 시범운영에 나섰지만, 취급 업무가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기존 영업점을 온전히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소비자의 체감 문턱을 더 높이는 또 다른 대목도 있다.


이번 합의에는 개점 지연뿐 아니라 영업 종료 전 마감 업무를 준비하는 '고객마감제도(라스트콜)' 도입도 포함됐다.


개점은 30분 늦추고, 폐점 무렵에는 일찌감치 고객 입장을 제한하겠다는 의미다.


비대면 거래 비중이 90%를 넘었다는 통계가 나머지 10%의 디지털 소외계층이 겪어야 할 금융 단절을 정당화해 줄 수는 없다.


은행은 사기업이지만 국가로부터 인가받은 라이선스로 이익을 누리는 공공재적 성격의 금융 인프라다.


대규모의 이자이익을 경신하며 내부 복지를 논하면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공적 책임은 어디까지 양보되어야 하는가.


그동안 금융노조는 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금융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축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양민호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총파업 기자간담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금융서비스 축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금융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를 마련하고, 이를 청년 일자리로 연결하는 것이 금융노조의 방향"이라고 밝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 역시 "영업시간 단축이 곧바로 금융 서비스의 축소로 이어지진 않을 예정"이라며 "은행원들의 출근 시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30분 늦게 열릴 은행창구 앞에서 금융 소외계층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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