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70점 이상 기관만 입찰자격 부여
지하철 안내 수단에 기업·기관명 함께 표기
토스 “자연스럽고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
내릴 역을 확인하려고 올려다본 화면에 광고가 흐르고 역사 벽면의 스타 생일 광고 앞에는 팬들이 모인다. 역 이름 옆에는 기업과 기관의 이름이 붙는 것도 익숙해졌다. 지하철의 광고는 시민이 정보를 얻는 방식부터 공간을 이용하고 장소를 기억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객실 화면과 팬덤 광고, 유상 역명병기를 통해 달라진 지하철의 풍경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시민의 이용 편의와 공공성을 어떻게 지킬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하철 9호선 객실 내 화면을 보면 ‘가양’이라는 역 이름 뒤에 ‘부민병원’이 붙어 있고 노선 안내에는 ‘마곡나루(서울식물원)’가 함께 표기돼 있다. 전자(부민병원)는 계약을 통해 기관 이름을 알리는 ‘유상 역명병기’이고 후자(서울식물원)는 지명위원회를 거쳐 무상으로 부착된 부역명이다.
올해 9월부터는 이러한 유상 역명병기에 새로운 이름들이 더해졌다. 9호선 신논현역에는 ‘토스’, 신목동역에는 ‘이대목동병원’이 부역명으로 표기된다. 전광판 광고처럼 순간적으로 시선을 끄는 방식이 아니라 승객이 매일 이동 경로와 역을 확인하는 공식 안내체계 속에서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구조다.
ⓒ서울시메트로9호선
유상 역명병기는 출입구 역명판, 승강장 안내표지, 열차 내 안내방송 등 지하철의 공식 안내 수단에 기업·기관명을 함께 표기하는 사업이다. 벽면 광고판 한 면보다 넓고 지속적인 노출 효과를 가진다.
기업들이 역명병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장소와의 지속적인 관계성 때문이다. 올해 1월 약 2000명의 임직원과 신논현역 인근으로 사옥을 이전한 토스 측은 “구성원들이 실제 일하고 생활하는 거점에서 브랜드를 자연스럽고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2호선 성수역과 무신사의 결합이 비슷한 사례다. 무신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성수역 역명병기를 시작했다. 토스가 새 업무 거점을 브랜드와 연결하려 했다면 무신사는 성수동 일대에서 축적해 온 본사와 오프라인 매장, 패션 상권으로서의 이미지를 역 이름과 결합한 사례다.
역명병기는 목적지에 대한 정보 제공과 브랜드 홍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신목동역 이대목동병원이나 가양역 부민병원처럼 의료기관의 이름은 병원을 찾는 방문객에게 직관적인 길찾기 단서가 된다. 반면 금융기관이나 일반 기업의 이름은 방문객에게는 위치 정보가 되는 동시에 해당 기업을 방문하지 않는 대다수 승객에게는 브랜드를 친숙하게 만드는 노출 수단으로 작용한다.
특히 9호선 노선을 보면 장소와 업종의 관계가 더욱 선명해진다. 기존 국회의사당역(한국산업은행), 샛강역(KB금융타운), 여의도역(신한투자증권) 등 여의도 금융가 일대의 역명병기에 이어 강남대로의 중심인 신논현역에 ‘토스’가 더해지며 한 노선 안에서 금융·핀테크 산업의 지형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됐다.
9호선 열차 내부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이번 9호선 1단계 구간 입찰에서는 신논현·신목동을 포함해 총 7개 역이 계약을 완료했다. 국회의사당과 샛강은 재입찰을 거쳤고 가양(부민병원), 등촌(강서대학교), 여의도(신한투자증권)는 연장 계약 체결을 마쳤다.
서울교통공사 구역에서도 역명병기는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공사에 따르면 8월 31일 기준 유상병기 역은 총 38곳이다. 유형별로는 기업체가 16곳으로 가장 많았고, 의료기관(12곳), 대학교(6곳), 다중이용시설(3곳), 공익기관(1곳)이 뒤를 이었다. 기업과 의료기관이 전체의 약 74%를 차지한다.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의 명칭이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만큼 철저한 기준과 공공성 검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은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부장은 “시민의 이용 편의와 지역 대표성, 공공성, 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재정적 입찰 금액이 높다고 해서 곧바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인정받지 않도록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운영기관들도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접근성과 공공성을 평가하는 정량평가(70점)와 심의위원회의 정성평가(30점)를 합산해 70점 이상을 받은 기관에만 입찰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했다. 서울시메트로9호선 역시 역 중심 반경 1km 이내라는 거리 요건을 충족한 기관을 대상으로 외부 위원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낙찰기관을 선정하고 있다.
도시의 지명은 오랜 시간 쌓인 지역의 기억을 담고 있지만 그 곁에 붙는 기업의 이름은 3년이라는 계약 기간을 갖는다. 역 이름 옆의 공간을 채우는 일은 광고 수익 창출을 넘어 도시를 어떤 이름과 이미지로 시민들에게 안내하고 기억하게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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