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전 현장에서 본 두터운 물감과 밝은 색점의 변화
사토 구니오에게 배운 유영국·장욱진, 서로 다른 화풍으로
전통과 자연, 일상의 재해석이 넓힌 한국 근현대회화
이대원의 밝은 풍경화에는 일본인 스승에게서 배운 서양화와 한국 전통미술의 원리가 함께 담겨 있다. 자수의 색실과 산수화의 점을 유화의 색채로 바꾼 그의 작업은 외부에서 배운 미술이 어떻게 자신만의 표현이 되는지 보여준다. 같은 스승에게 배운 유영국·장욱진의 서로 다른 화풍까지 연결하면 그 변화는 한국 근현대회화가 다양성을 갖춰간 과정으로 넓어진다.
20일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는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가 11월 8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가 10월 25일까지 열린다. 각각 지난달 6일과 5월 19일 개막한 두 회고전은 초기작부터 말년의 작업까지 살피며 익숙한 대표 화풍이 형성된 시간을 돌아본다.
이대원전의 초기작 앞에서는 먼저 물감의 두께가 눈에 들어온다. ‘온정리 풍경’의 산과 집, 길에는 붓이 지나간 흔적이 도톰하게 남아 있다. 또한 디테일한 표현을 실제 모습대로 옮기기보다 윤곽과 색의 덩어리로 풍경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대원 ‘온정리 풍경’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사토 구니오 ‘설정’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이 색채의 출발점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 전시장에 함께 걸린 사토 구니오의 ‘설정’(雪庭)이다. 명료한 색면과 단순화한 형태, 공예를 바라보는 관심에서 두 화가 사이의 연결을 읽을 수 있다.
사토 구니오는 도쿄미술학교 출신으로 1927년 조선에 건너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친 일본인 화가다. 학생들에게 서구의 새로운 미술을 소개했던 그의 제자 가운데 이대원과 유영국, 장욱진이 있었다. 이후 유영국과 장욱진은 일본의 미술학교로 진학했고 이대원은 집안의 반대로 법학을 전공하면서도 그림을 이어갔다. 공통된 배움에 각자의 경험이 더해졌다.
이대원이 독자적인 표현을 모색한 과정은 이번 전시에서 회화 옆에 놓인 공예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1950~60년대 추상미술의 흐름이 거세던 한국 화단에서 그는 가까이 두고 보던 자수와 나전, 도자기에서 색을 다루는 원리를 찾았다. 자수는 여러 색실을 섞지 않고 나란히 놓아 각각의 색을 살리고 나전은 어두운 바탕에서 빛을 낸다. 이대원은 공예품의 문양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원리를 캔버스의 점과 선으로 바꿨다.
1970년대 파주 농원을 반복해 그린 작품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뚜렷해진다. 나무와 들판을 채운 색점은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쇠라의 점묘가 눈에서 색이 혼합되는 효과를 추구했다면 이대원의 색점은 멀리서도 각자의 색을 간직한다. 여러 색이 빽빽하게 놓여 있으면서도 탁해지지 않는 화면은 자수와 나전에서 발견한 색과 빛의 원리와 이어진다.
이대원 ‘산(冬)’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1980년대 작품에서는 길어진 색선과 유연한 붓질이 더욱 두드러진다. ‘산(冬)’ 앞에서 느껴지는 밝음에도 구체적인 표현 방식이 있다. 산과 나무에 반복되는 점은 전통 산수화의 태점(이끼나 풀 등을 나타내는 점)과 호초점(후추알처럼 작은 점을 촘촘하게 찍는 방식)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대원은 이를 붉고 노랗고 푸른 색점으로 바꿔 산의 굴곡과 나무의 위치를 드러냈다. 짙은 파랑 속에 놓인 따뜻한 색들이 겨울의 차가움과 화면의 생기를 함께 만든다.
1990년대 이후에는 가까운 나무와 먼 산의 구분이 느슨해지고 여러 풍경이 한 화면에 겹쳐진다. 점과 선을 거듭 쌓아 깊이를 만드는 방식은 먹을 중첩하는 동양화의 적묵법과도 맞닿아 있다.
이대원과 생전에 교류한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이대원이 자신에게 난초를 칠 때의 기법으로 유화를 그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물감이나 캔버스는 서양의 것을 썼지만 기법은 동양적인 것을 많이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대원이 자연의 형상을 유지하며 화면을 채워갔다면 유영국은 자연에서 추출한 형태와 색의 관계에 집중했다. 서울시립미술관 회고전은 1935년 도쿄 문화학원에서 시작한 그의 실험을 보여준다. 당시 일본에 소개된 입체파와 러시아 구성주의 등을 접한 유영국은 회화뿐 아니라 부조와 사진을 넘나들었고 귀국 후에도 자연의 형태를 남긴 반추상과 기하학적 구성을 탐색했다.
1964년 첫 개인전 이후에는 자신의 추상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작품’ 등에서 고향 울진의 산은 실제 경치를 알아볼 수 있게 묘사하는 대상보다 선과 면, 색의 관계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 같은 산을 그려도 이대원은 계절과 빛을 색점과 색선으로 펼쳤고 유영국은 기억 속 자연을 색면의 균형과 긴장으로 바꿨다. 한 스승에게 배웠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각자의 선택이다.
ⓒ서울시립미술관
김 평론가는 유영국에 대해 “자기 작품 세계를 끝까지 끌고 갔던 작가”라며 “울진의 산을 점점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해 유영국만의 산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장욱진의 변화는 집과 사람을 얼마나 간결하게 담을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일본 제국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며 전통미술에 대한 관심을 넓혔다. 문인화와 벽화, 민화의 이미지는 이후 작업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황금빛 들판과 붉은 논두렁 사이를 걷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에서 ‘부엌과 방’으로 가면 형태가 한층 압축된다. 캔버스 천을 바탕으로 남기고 짙은 선과 면으로 집의 구조와 인물을 드러내 유화에서도 먹그림 같은 인상을 만든다. ‘마을’(1984)은 집과 동물, 사람을 가운데 배치하고 좌우의 해와 달, 나무로 균형을 잡으면서도 방향과 모양을 달리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대원이 색을 쌓으며 풍경을 확장하는 동안 장욱진은 형태를 줄이고 관계를 조율해 작은 화면을 채웠다.
세 화가의 행보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사와 일본의 미술학교가 서양미술을 접하는 주요 통로였던 시대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배운 형식에 무엇을 더할지는 달랐다. 이대원에게는 한국 공예와 산수화의 표현 원리, 유영국에게는 고향의 자연과 추상 실험, 장욱진에게는 전통의 이미지와 생활 경험이 자신의 그림을 만드는 바탕이었다.
이들의 작업은 해방 이후 한국 화단의 기반을 넓히는 활동과도 맞물렸다. 유영국과 장욱진은 신사실파 활동을 통해 새로운 회화를 모색했고 이대원은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박수근 등 동료 작가를 소개하고 후원했다. 각자의 표현을 만들고 다른 화가의 작업을 알리는 활동이 함께 쌓이며 한국 근현대미술의 폭을 넓혔다. 한국 회화의 고유한 표현은 외부에서 들어온 배움이 각자의 삶과 만나 다른 그림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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