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해야 솔직하다고?”…술방 밀어낸 맨정신 토크 [취하지 않는 사회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7.08 14:01  수정 2026.07.08 14:01

만취 도파민 자극하던 유튜브 ‘술방’ 대신, 소버 예능 인기

"술취한 출연자 리스크 커...게시판에 불쾌감 토로하는 시청자 증가"

몇 잔의 술을 연거푸 들이켠 스타가 혀 꼬인 목소리로 속내를 털어놓고, 화면에는 ‘취중진담’ 혹은 ‘알낳괴’(알코올이 낳은 괴물)라는 자막이 유쾌하게 깔린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유튜브 플랫폼을 장악했던 이른바 ‘술방’(음주 방송) 예능의 흔한 풍경이다. 초창기 시청자들은 이를 ‘가식 없는 날것의 매력’으로 소비했으나, 점차 포맷이 복제되면서 단순한 유흥을 넘어 공인들의 취중 실언과 이미지 추락 리스크를 양산하는 주범이 됐다.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캡처 ⓒ

특히 최근 일어나는 연예계 안팎의 심각한 음주 스캔들과 맞물려 “미디어가 대놓고 폭음과 일탈을 미화한다”는 사회적 경각심이 고조되자, 도파민을 자극하던 만취 자막과 연출들은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거센 눈총을 받는 비판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여론이 악화되자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유튜브와 OTT를 정조준해 관련 가이드라인을 전격 개정했다. 개정된 공식 지침에 따르면 미디어는 음주를 긍정적인 행위로 묘사하거나 지나치게 미화하는 연출을 자제(제2조)해야 하며, 유튜브 등 청소년의 접근성 높은 플랫폼에서 음주 장면이 무분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자막과 경고 문구 삽입 등 각별한 주의(제9조)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규제에 따라 무분별한 폭음과 폭탄주 제조를 코드 삼았던 초창기 웹 예능 술방들은 포맷의 한계에 부딪혔다. 실제로 유튜브 채널 조회수 추이를 분석해 보면, 2023~2024년 수백만 회의 고정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던 ‘조현아의 목요일 밤’ ‘슈취타’ 등 자극적인 술방들이 줄지어 종영하거나 무기한 휴식기에 들어갔다.


익명을 요구한 유튜브 웹예능 제작사 관계자는 “출연자가 실제로 술에 취해 통제 불가능한 발언을 하거나 편집 실수가 유출될 경우 채널 전체가 문을 닫아야 할 만큼 리스크가 커졌다”며 “시청자 게시판에도 ‘인사불성이 된 모습을 보기 거북하다’는 피드백이 늘면서 기획 단계부터 음주 수위를 낮추거나 다른 매개체를 찾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재형이 진행하는 '요정식탁'의 한 장면 ⓒ 요정재형

반면 똑같이 술을 다루더라도 포맷의 질적 전환을 이루어냈거나 술을 배제한 채널들은 롱런 가도를 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가수 정재형이 진행하는 ‘요정재형’이다. 이 채널은 초록색 소주병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던 기존 술방의 문법을 완전히 비껴갔다. 게스트를 취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호스트의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사적 공간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수제 요리와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과 샴페인, 위스키 등을 한두 잔 소량 곁들이는 ‘라이프스타일 및 미식 큐레이션’에 집중한다. 술은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미니멀한 오브제이자 문화적 매개체가 되고, 콘텐츠의 본질은 게스트의 커리어와 예술적 가치관을 다루는 깊이 있는 토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시청자가 느끼는 정서적 피로도가 낮아 롱런이 가능한 구조다.


나아가 현재 유튜브 토크쇼 시장의 최상위권에는 술을 완전히 배제한 완벽한 ‘소버 예능’들이 차지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뜬뜬의 ‘핑계고’와 TEO의 ‘살롱드립’이 대표적이다. 이들 채널의 스튜디오 테이블 위에는 술잔 대신 갓 우려낸 찻잔과 커피잔, 가벼운 다과류가 놓인다. 호스트의 무해하고 영리한 입담, 편안하게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적 사랑방 같은 연출 분위기만으로 스타들의 진솔하고 깊은 내면 고백을 밀도 높게 이끌어낸다. 만취하지 않은 ‘맨정신의 티키타카’가 시청자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매회 수백만 회의 고정 조회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한 문화콘텐츠 제작 담당자는 “미디어 산업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술을 마시고 이성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야만 가식 없는 진솔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해묵은 제작 문법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라며 “현대의 시청자들은 억지로 술을 권해 연예인을 망가뜨리는 자극적인 도파민 분출보다, 맑은 정신으로 주고받는 타율 높은 유머와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안정적인 정서적 교감에 훨씬 더 높은 문화적 가치와 진정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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