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만에 입장 표명…"구체적 헌법적 근거·사유 찾을 수 없다"
기존 후보 재제청·추천위 재구성·장기 대치 등 3가지 시나리오
공백 해소 부담과 제청권 선례 문제 사이서 고심 이어질 듯
조희대 대법원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면서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졌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자리가 200일 넘게 비어 있는 상황에서 공백 장기화라는 부담까지 감수하고 자신의 제청권을 둘러싼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향후 조 대법원장이 어떤 방식으로 후임 대법관 인선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대법원장은 전날 취재진에게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써 한다"며 "이번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로는 8월28일자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이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달리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제청을 사실상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한 지 25일 만이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 1월21일 후보추천위원회가 김민기·박순영·윤성식·손봉기 후보자를 추천한 뒤 약 7개월간 대법관 제청을 미뤘다. 이후 대법관 공백이 길어지자 지난달 18일 통상적인 청와대와의 사전 협의 관행을 깨고 손 부장판사를 단독 제청했다. 청와대는 열흘 뒤인 28일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인 서면 제청"이라며 재제청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기존 추천 후보 가운데 손 부장판사를 제외한 후보를 다시 제청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 대법원장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향후 첫 번째 시나리오는 조 대법원장이 기존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된 다른 후보를 다시 제청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장기화한 대법관 공백을 해소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장점이 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이 이번에 재제청 요구 자체에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명확히 밝힌 만큼, 청와대 요구에 따른 재제청으로 해석될 경우 향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후보를 요구하는 절차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해 처음부터 대법관 후보를 추천받는 방안도 있다. 기존 추천위의 추천 결과를 전제로 한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후보군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 대법원장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다. 그러나 추천위 구성부터 후보 추천과 제청, 국회 동의 절차까지 다시 거쳐야 해 공석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부담이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당분간 별도의 재제청에 나서지 않고 현재 입장을 유지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조 대법원장으로서는 제청권에 관한 자신의 해석을 유지하면서 청와대와의 헌법적 권한 충돌에 대한 판단을 기다릴 수 있다. 실제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의 입장에 대해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즉각 반박했고, 대법관 1인의 공백이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향후 국회나 헌법재판소 등을 통한 권한 다툼으로 논쟁이 확대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다만 청와대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아직까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는 검토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조 대법원장에게는 대법관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부담과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였을 때 제청권 행사에 선례가 남을 수 있다는 헌법적 부담이 동시에 놓이게 됐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권한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조 대법원장이 어떤 절차를 선택할지에 따라 이번 갈등의 향방도 달라질 전망이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가장 정상적인 절차는 국회 임명동의안 제출 후 국회 표결을 통한 해결이라고 본다. 대통령은 대법원장의 제청을 임의로 반려하거나 보류하지 않고 바로 헌법상 동의권을 가진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에 맡기는 방식이다"며 "만약 국회에서도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대법원장은 국회의 부결에 따른 후속 조치로서 합법적으로 신규 후보자를 재제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단순히 코드나 성향 불일치 등을 이유로 제청을 물릴 수 없도록, 거부나 재요청이 가능한 사유를 법률적·도덕적 중대 결격사유로 국한하는 기준을 공식화하는 방안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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