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년] 자동차는 관세, 배터리는 중국, 석화는 구조조정…K산업 생존 지도는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6.05.29 07:00  수정 2026.05.29 07:00

수출 7000억 달러 성과에도 수출기업 체감경기 '급랭'

자동차·철강·가전은 美 관세, 배터리·석화는 中 공급과잉 직격

최악 피했지만…정책 상당 부분 '사후대응' 머물러

위 이미지는 AI로 생성됨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동안 한국 산업의 지도는 ‘성장 산업’이 ‘버티는 산업’으로 변화했다. 정부는 출범 1년 성과로 한미 관세협상 타결, 역대 최대 수출, 중동발 에너지 위기 대응, 제조업 인공지능 전환 등을 내세웠다. 지난해 수출이 사상 처음 7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올해 2월 누계 기준 한국의 세계 수출 순위가 5위권으로 올라섰다는 점도 성과로 제시됐다.


하지만 기업들이 체감한 1년은 달랐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수출기업 경기전망지수는 70으로 전분기보다 20포인트 급락했으며, 정유·석유화학은 56, 철강은 64에 그치며 업종별 체감경기 격차도 커졌다. 수출 총액은 반도체와 일부 호조 업종이 끌어올렸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비용·관세·공급과잉 부담은 더 무거워진 셈이다.


지난 1년 산업계를 흔든 변수는 크게 미국발 관세, 중국발 공급과잉, 중동발 에너지 리스크 등 3가지로 나뉜다. 자동차·철강·가전은 미국 통상정책의 최전선에 섰고, 배터리와 석유화학은 중국의 물량 공세와 가격 경쟁에 흔들렸다.


지난 1년 산업정책의 무게중심은 ‘육성’보다 ‘방어’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새 시장을 여는 데 앞서, 이미 열린 충격을 막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는 평가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뉴시스
①  관세가 뒤흔든 韓 자동차


가장 먼저 흔들린 곳은 자동차다. 미국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도 불구하고 25%의 관세 부과를 선언하면서 국내 자동차 업체와 부품업체에는 그야말로 ‘날벼락’이 떨어졌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한미 관세협상을 통해 예고됐던 상호관세와 자동차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협상 자체는 방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EU와 같은 수준의 관세 조건을 확보하면서 ‘한국차만 불리한’ 최악의 상황은 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세 없이 수출하던 자동차업계 입장에서 15%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숫자다. 기존보다 낮아졌을 뿐, 여전히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을 갉아먹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관세로만 부담한 비용은 7조를 훌쩍 넘는다.


당장 관세 타격을 피할 뚜렷한 방안이 없다는 점은 더욱 큰 부담 요소다. 미국 현지 생산 확대, 하이브리드·전기차 라인업 조정, 원가 절감, 가격 전략 재검토로 관세에 대응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할 방법은 차값 인상 뿐이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면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어 이 역시도 명쾌한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방어해야 할 핵심 제조업’으로 분류했다. 내년 자동차 산업에 정책금융 15조원 이상을 공급하고, 자동차·부품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품목에는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전기차 승용 보조금도 확대하고, 국내 생산 기반 유지를 위한 지원도 추진하기로 했다.


문제는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단순히 관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관세로 현지 생산을 압박하고, 중국은 전기차 가격 경쟁으로 글로벌 시장을 흔든다. 유럽은 탄소규제와 현지생산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완성차는 수출로 벌고 국내에서 버티는 기존 공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국면에 들어섰다. 정부 지원도 단기 금융과 보조금 확대를 넘어 국내 생산기지를 어떤 차종과 기술의 ‘마더팩토리’로 남길 것인지까지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SK온 미국 테네시공장 전경 ⓒSK온
② 저가 공세 넘어  글로벌 보폭 키우는 中…韓 배터리의 경쟁력 찾기


배터리는 지난 1년 사이 중국이라는 파고 속에서 혼란이 짙어졌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 미국 전기차 정책 변화, 중국 배터리 업체의 저가 공세가 동시에 겹치면서 한국 배터리 3사의 입지가 크게 흔들린 모양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32.7GWh로 전년 대비 13.7% 성장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3사의 합산 점유율은 25.5%로 전년보다 10.4%p 하락했다. 반면 CATL과 BYD는 중국 밖 시장에서도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다.


문제는 중국의 위협이 단순한 저가 공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과잉설비와 출혈 경쟁을 정리하기 위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기존 양적 선점을 지향하던 정책은 품질·기술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선도기업 중심의 시장 재편과 해외 현지화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중저가 영역의 가격 압박이 완화될 여지가 있지만, 기존 중국 업체와의 차별점이었던 고성능·차세대 기술 경쟁 영역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배터리 대응의 방향을 ‘가격 경쟁’이 아니라 ‘기술 경쟁’으로 잡았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K-배터리 경쟁력 강화방안에서 정부는 전고체·리튬금속·리튬황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2029년까지 약 2800억원을 지원하고, 2030년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점유율 25%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LFP보다 성능을 높인 LMFP, LMR, 나트륨 배터리 등 ‘LFP 플러스’ 전략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배터리업계의 당장 과제는 기술개발만으로 풀기 어렵다. 북미 공장은 전기차 수요 둔화로 가동률 부담을 안고 있고, 일부 업체는 EV 라인을 ESS 중심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 LFP 배터리는 국내 완성차에도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정부가 차세대 기술에 돈을 투입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당장의 수요 공백과 소재·광물 공급망 취약성, 국내 생산 유지 비용까지 함께 다루지 않으면 ‘미래 기술은 있는데 현재 공장은 쉬는’ 상황이 길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케미칼 대산산단 NCC설비. ⓒ롯데케미칼
③ 정부가 직접 나선 석유화학 구조조정


석유화학은 1년 사이 뼈아픈 구조조정의 문턱을 넘어섰다. 중국발 범용 제품 공급과잉, 글로벌 수요 둔화, 나프타 가격 부담이 겹치면서 국내 NCC 설비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기 사이클을 버티면 반등이 왔지만, 이번에는 중국의 증설과 중동 원가 경쟁력이 구조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언제 좋아지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기느냐’가 됐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로드맵을 내놓은 뒤 사업재편을 압박했고, 올해 2월 첫 사업재편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롯데케미칼 대산 사업장을 분할한 뒤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해 NCC 및 다운스트림 설비를 통합 운영하는 내용이다.


양사는 통합 신설법인에 총 1조2000억원을 출자하고, 롯데케미칼 NCC 가동중단과 중복·적자설비 정리를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한 대표 사례다.


관건은 속도다. 석유화학 사업재편 민관협의체는 여전히 운영 중이지만, 여수·울산 등 다른 산단에서는 기업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최종안 도출이 쉽지 않아서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설비를 줄이면 지역 고용, 협력사, 항만 물동량, 전력·열 공급망까지 흔들린다. 정부가 세제·금융·인허가 특례를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어떤 설비를 줄일 것인가’만큼 ‘줄어든 지역 산업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도 중요하다.


또 고부가·친환경 소재 전환이라는 방향 속에서 고용 충격과 지역경제 공백을 메울 구체적인 로드맵 역시 아직 뚜렷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 ⓒ뉴시스
④ 방어하기 급급했던 지난 1년…앞으로는 달라야


이재명 정부 1년의 산업정책은 위기 대응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관세협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고, 자동차·배터리·석유화학 등 업종별 지원책을 냈으며, 중동발 에너지 위기에는 원유·나프타와 LNG 대체 물량 확보로 대응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분명하다. 미국이 관세를 발표하면 긴급회의를 열고, 중국 공급과잉이 손익을 무너뜨린 뒤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정책의 상당 부분이 사후 대응이었다는 점에서다.


산업별 응급 처방은 나왔지만, 산업 간 연결 전략이 약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자동차는 관세와 보조금, 배터리는 기술개발, 석유화학은 구조조정, 조선·방산은 수출금융 식으로 각각의 처방은 나왔지만, 이들을 하나의 제조업 재편 전략으로 묶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전기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터리, 소재, 부품, 전력망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정책은 여전히 업종별 칸막이 안에서 따로 작동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다음 1년이 더욱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관세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 통상환경이 됐고, 중국은 저가 공세를 넘어 더 강한 기업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환율과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 수출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 간 체감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위기를 막는 데 그치지 말고, 어떤 산업은 키우고 어떤 산업은 줄이며 어떤 산업은 바꿀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국내 생산기지를 지키는 비용 경쟁력과 미래 기술을 사업으로 연결하는 실행력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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