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대구는 두 번 울고 웃었다 [기자수첩- 정치]

데일리안 대구 = 김수현 기자 (water@dailian.co.kr)

입력 2026.05.28 07:00  수정 2026.05.28 07:00

낮엔 눈물, 밤엔 환호…같은 도시 다른 표정

노년은 "지켜달라" 청년은 "머물게 해달라"

거대 공약에 묻힌 시장 골목 작은 목소리들

새 시장이 받아들 것 표 아닌 수백만 개 사연

25일 오후 대구 동구 불로동고분공원에서 한 시민이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의 선거벽보를 보며 길을 지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 23일의 대구를 두 장면으로 기억한다. 하나는 눈물이었고, 하나는 웃음이었다.


낮 두 시 칠성시장.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골목에 들어서자 노점을 지키던 노인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할머니는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끝내 울었다. 옆 사람도, 그 옆 사람도 말없이 눈가를 훔쳤다. "공주님"이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이라기보다, 가슴 깊이 눌러둔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소리에 가까웠다.


도착 한 시간 전부터 시장 어귀에 서서 기다린 이들도 있었다. 평생을 좌판 앞에서 보낸 손이 떨리며 또 다른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 눈물의 정체를 한참 생각했다. 그것은 한 정치인에 대한 지지이기 이전에, 박정희와 육영수로 기억되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그 시절 이후 대구가 걸어온 길고 가파른 내리막에서 묵묵히 버텨온 사람들의 서러움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세월이, 그 짧은 악수 한 번에 왈칵 쏟아진 것이다.


그날 밤, 서문시장 야시장. 같은 후보가 이번엔 청년들에게 둘러싸였다. 풍경은 정반대였다. 눈물 대신 웃음, 침묵 대신 휴대전화 셔터 소리가 울렸다. "잘생겼다"는 장난스러운 환호 사이로, 한 청년이 외친 한마디가 유독 또렷하게 박혔다. "테슬라 공장, 우리 일자리 잘 부탁드립니다."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웃고 있는 건 입꼬리뿐이었다. 그 말은 곧,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고백이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서울로, 수도권으로 짐을 싸는 동안 끝까지 대구에 남고 싶은 청년의, 차마 무겁게 꺼내지 못해 농담에 실어 보낸 부탁이었다.


낮의 눈물과 밤의 외침. 같은 도시, 같은 후보를 향한 같은 날의 풍경인데 언어가 이토록 달랐다. 노년은 '지켜달라'고 했고, 청년은 '머물게 해달라'고 했다. 한쪽은 지나온 시절을 끌어안았고, 한쪽은 오지 않은 내일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목소리는 결국 한 곳에서 만났다. 이 도시를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그들은 같은 마음이었다.


선거운동 현장을 따라다니는 동안, 그 마음은 곳곳에서 다른 얼굴로 기자를 붙들었다. 어느 시장 어귀에서는 한 후보가 유세차에서 목청을 높이는 내내, 시민들이 박수도 환호도 없이 팔짱을 낀 채 지켜봤다. 무심해 보이던 그 얼굴들은,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널 때서야 멀리서 슬며시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소리 내지 않아도 마음은 있었다. 새벽 시장에서 만 한 60대 여성은 달랐다. "보수의 심장을 지키겠다고 하기 전에, 시민들 심장이 먼저 건강한지 봐야 하는 것 아니냐"던 그 말에는 원망이 아니라, 그만큼 오래 기다려온 사람의 지친 애정이 묻어 있었다.


불로시장에서 본 장면도 오래 남는다. 한 후보가 좌판을 돌다 버섯을 파는 상인에게 손을 내밀자, 상인은 "손이 더러워서…"라며 슬그머니 손을 뒤로 뺐다. 후보가 "괜찮습니다" 하며 그 손을 끝내 잡았다. 흙 묻은 손과 내민 손이 맞잡히던 그 짧은 순간, 시장 골목이 잠시 환해지는 것 같았다. 가게 안에 앉아 있던 손님은 "무조건 된다 마!" 하며 등을 떠밀었고, 또 다른 상인은 "테레비서 맨날 봤다"며 제 일처럼 반가워했다. 그 반가움 끝에는 늘 같은 말이 따라붙었다. "장사가 안된다", "여기 좀 살려달라." 환대와 절박함은 언제나 한 몸이었다.


흔히 대구를 '보수의 심장'이라 부른다. 편리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너무 많은 것을 가려버린다. 심장이라는 한 단어 안에는 박근혜의 손을 잡고 우는 70대와 일자리를 달라 외치는 20대, 표정을 감춘 채 손가락만 펴 보이는 중년과 흙 묻은 손을 부끄러워하던 노점 상인이 다 함께 살고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의 세월과 사연을 안고, 6월 3일 같은 칸 앞에 설 것이다.


선거운동 내내 두 후보는 똑같이 '대구 경제'를 외쳤다. 첨단산업 유치, 청년이 떠나지 않는 도시, 대구의 자존심. 구호는 웅장했다. 그러나 칠성시장 할머니의 눈물에도, 야시장 청년의 떨리던 농담에도, 버섯 좌판 상인의 한숨에도 그 말이 정말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이 원한 건 어쩌면 거창한 청사진이 아니라, 자신이 견뎌온 시간을 누군가 알아봐 주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전투표가 시작됐고, 6월 3일이면 대구는 답을 적어낸다. 다만 개표가 끝난 뒤, 새 시장이 부디 기억했으면 한다. 자신이 받아든 것이 '대구의 표'라는 차가운 숫자가 아니라, 울고 웃고 끝까지 이 도시에 남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 마음을 선거운동 기간의 구호보다 오래 품을 수 있다면, 대구가 흘린 눈물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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