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갈등·정당 내홍까지 줄줄이 법원행
협상 테이블 식어가고 가처분만 쌓인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일단 법원으로 가고 보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에서 배제된 후보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돌던 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갔다. 같은 재판부가 사흘 사이 김영환 충북지사의 가처분은 인용하고 주호영 의원의 가처분은 기각했다. 당내 징계에 불복한 인사들이 법원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정당 안에서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법원 결정문 한 장씩을 받아 들고 나왔다.
노동 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삼성전자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사측은 핵심 공정 유지를 위한 가처분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일부 받아들였다. 노사가 결론을 내기도 전에 법원이 먼저 판을 깔았다. 결국 파업 90분 전 극적 잠정합의로 사태는 봉합됐지만 법원이 협상장 밖에서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은 남는다.
가처분은 본래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우려될 때' 본안 판결 전에 임시로 권리를 보전하는 수단이다. 반도체 공정이 멈추면 실제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생길 수 있고 공천 결과가 뒤바뀌면 선거 일정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각각의 신청에 나름의 근거가 없지는 않다. 문제는 그 '긴급성'의 문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요건이 느슨하게 해석될수록 가처분은 분쟁 해결의 최후 수단이 아니라 첫 번째 수단으로 굳어진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법원이 나서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노사 갈등, 정당 내홍, 공천 결과, 이 모든 게 가처분 신청서 한 장으로 법원 앞에 줄을 섰다. 법원이 반복적으로 공백을 메울수록 협상 테이블은 가벼워지고 정당의 자율성은 사법부의 사후 승인에 종속된다. 잣대가 사안마다 엇갈리자 승복하는 문화 대신 또 다른 가처분만 쌓였다.
문제는 악순환이다. 법원이 개입할수록 당사자들은 스스로 결론을 낼 유인을 잃는다. 협상이 결렬되면 법원으로, 징계가 불만스러우면 법원으로, 공천이 억울하면 법원으로 간다. 갈등을 스스로 봉합할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가처분 신청서가 대신 놓인다. 법원의 잣대가 사안마다 엇갈리면 패자는 또 다른 가처분을 준비한다.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법정이 먼저가 되는 구조, 그 끝에 남는 건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가처분이다.
법원은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첫 번째 선택지가 된 법원은 마지막 보루로서의 무게도 잃는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상수가 됐다는 자조가 나오는 건 우리가 법원을 너무 자주 불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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