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의 나침반을 되찾자…한국은행, 다시 본연으로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5.27 07:04  수정 2026.05.27 07:04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전임 총재 시절 미온적 긴축과 다목적 통화정책에 기인

'신 3고', 기대인플레이션을 높게 고착시켜 민간 소비 감소 초래

한은, 긴축 기조와 거시건전성 정책 구분해 물가안정에 집중해야

'신(新) 3고' 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통화정책을 둘러싼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한국은행

2026년 5월, 한국 경제는 숫자보다 훨씬 더 무거운 공기를 마시고 있다.


연초 2% 안팎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들어 2.57%까지 올라서며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2%)를 뚜렷이 상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원·달러 환율은 최근 1 달러당 1460원 안팎에서 움직이며 '강달러·약원'이 상수처럼 굳어지는 양상이다.


고물가와 고환율이 동시에 압박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에서,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물가안정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지난 몇 년간의 통화정책을 되돌아보면, 한은이 상기 원칙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창용 전 총재 시기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이라는 법정 책무보다 경기 둔화, 가계부채, 환율, 부동산 등 온갖 고려 요인을 한꺼번에 떠안으려다 결과적으로 어느 쪽에도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팬데믹 이후 급격한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선제적·공격적 긴축에 나서지 못하며, 물가 기대심리를 확실히 꺾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도 일반적이다.


이제는 한은이 다시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물가는 반드시 잡는다'는 신뢰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에 환율 요인도 여전히 인플레이션 상방 위험을 키우고 있다.


올해 원달러 환율은 1530원을 넘기며 17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5월 초에도 1460원 안팎의 높은 수준이 고착되고 있다.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를 밀어 올려 에너지·원자재·식품 가격을 자극하고, 이는 다시 소비자물가로 전가된다.


이른바 '신(新) 3고(고물가·고환율·고금리)'는 이미 민간 소비를 짓누르고 있다.


높은 물가와 원화 약세, 대출이자 부담이라는 삼중고가 가계와 기업의 여건을 동시에 압박하면서 소비 부진과 내수 위축이 현실화되고 있다.


실질임금 상승이 미미한 가운데 체감물가가 계속 오르면, 가계는 필연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이나 부채 상환에 매달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내수 회복은 지연되고, 기업의 매출과 투자도 위축되는 악순환이 강화된다.


통화정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기대 물가를 충분히 제어하지 못하면, 부담은 결국 저소득층과 한계 가계 등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집중된다.


한은은 지난 통화정책의 실패를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전임 총재는 취임 이후 줄곧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해 왔지만, 실제 정책 운용에서는 금융 불균형, 가계부채, 성장 둔화, 부동산, 환율 등 다양한 목표를 동시에 관리하려 했다.


물가 안정 목표를 최우선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실제 금통위 의사록과 대외 발언에서는 성장 둔화, 가계부채, 환율 부담 등을 이유로 동결에 머무르면서, 사실상 통화정책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물가가 목표 수준을 상당 기간 상회했음에도 '조만간 안정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머무른 것도 뼈아프다.


실제로 2025년 소비자물가는 한은 목표를 웃도는 흐름을 이어갔고, 고환율이 상수처럼 굳어지면서 고물가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상방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듯한 태도를 거두는 데 실패했고, 그동안 기대인플레이션은 생활 전반에 '높은 물가가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놓았다.


최근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일시적(transitory) 인플레이션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경계하고 있다.


즉, 일시적 물가 급등을 완화하기 위해 훨씬 더 가파른 긴축과 더 큰 실물경제 희생을 감수해야 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듯하다.


미국 연준(Fed)은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대폭 인상해 물가를 2%대 중반 수준까지 끌어내린 뒤에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완화될 때까지 높은 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하겠다는 이른바 'higher for longer'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 근처로 내려온 이후에도 성급한 금리 인하 대신, 기대 인플레이션이 재차 오르지 않도록 점진적·조건부 완화를 선택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전임 총재 시절의 통화정책 실패와 최근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기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은은 명시적이고 단호한 물가 목표 재확인이 필요하다. 한은은 정책금리 동결·인하에 대한 과도한 시장기대를 낮춰야 한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미 2026년 하반기 이후 금리 인하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지만, 한은은 물가·환율의 추세가 명확히 안정되는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가계부채·부동산 문제는 통화정책이 아닌 거시건전성 정책 수단으로 대응해야 한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 안정이 중요하지만, 이것을 이유로 물가안정에 필요한 수준의 긴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계부채 문제는 차주의 상환능력 기반의 스트레스 DSR 도입, 금리인하요구권과 은행 가산금리 규율 강화 등 보다 정교한 정책조합으로 다뤄야 한다.


통화정책이 모든 문제를 떠안으려 할수록, 정작 물가라는 가장 핵심적인 목표를 놓치게 된다.


글/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jyseo@smu.ac.kr/rmjiseo@hanmail.net)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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