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가 직면한 세 개의 암초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7.24 07:00  수정 2026.07.24 07:00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풍랑을 헤쳐나온 이재명 정부 1년의 한미관계


우리 국민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의 '외교안보 1호 지시'로 사드(THAAD)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재검증하라는 명령을 기억한다. 당시 정부는 사드 배치를 지연시킴으로써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을 풀어보려 애썼으나 이는 도리어 한미 정상 간 상호 신뢰에 족쇄를 채우는 결과를 낳았다. 2017년 6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워싱턴을 두 차례나 오가며 사드 안건을 의제에서 빼기 위해 진땀을 뺐던 이유다. 진보 정권이 미국과 펼치는 '불편한 어깨동무'를 보며 국민은 내심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4월, 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발동해 모든 국가에 기본관세 10%를, 한국 등 주요국에는 개별 관세 15%를 더해 무려 25%에 달하는 '관세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 위기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8월 워싱턴 D.C. 1차 정상회담과 10월 경주 2차 정상회담을 거치며 한국에 적용되는 관세를 세계 평균 수준인 15%로 끌어내렸다.(물론 우리나라만 관세를 내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가 관세를 원상복구했다.) '금빛 신라금관' 선물 공세가 황금을 좋아하는 트럼프의 취향을 제대로 꿰뚫었다는 유쾌한 후문도 돌았지만, 대체로 실용외교가 거둔 성과로 평가받았다. 이어 11월, 한국 정부가 미국 조선업 협력에 1500억 달러, 반도체·AI·에너지 등 첨단 전략 산업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양국의 관세·투자 협상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진짜 위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달콤한 휴지기는 길지 않았다. 2025년 이후 미국 조야에서 한국 관련 언급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가끔 한국 총리가 워싱턴을 찾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여전히 관심을 두고 있다"라고 전하는 동향 뉴스 정도가 전해질 뿐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지만 전략적인 대화는 없었고, 그저 악수를 나누는 수준에 그쳤다. 유튜브 쇼츠 영상에서 "내 아내입니다"라는 코믹한 인사 장면이 조회수를 늘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2026년 하반기, 마침내 숨겨진 암초들이 한미 관계의 깊은 바다 밑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 가지 분야에서 미국과 충돌할 암초가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른 것이다. 기술적 실리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원칙론적 전략으로 상황을 직시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첫 번째 암초: 약속된 투자에 대한 신뢰를 묻는 미국의 냉소


첫 번째 암초는 강경화 주미 대사의 전격 귀국으로 부각됐다. 외교가에서 대사가 임지를 비우고 돌아오는 것은 본국의 항의성 소환이거나 극도로 긴박한 사안이 터졌을 때다. 연말 정기 공관장 회의가 아닌 시점에, 외교부 장관의 긴급 지시 형식으로 일시 귀국한 배경에는 우리 정부의 의지보다는 미국 측의 강한 메시지가 깔려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강 대사는 쿠팡 사태의 장기화를 언급하면서도 "워싱턴 현지의 기류와 평가를 본부에 직접 전달하러 왔다"라며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미국이 진짜 주목하는 대목은 바로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의 이행 여부다. 이 중 2000억 달러(약 300조원)는 미국이 추천하는 분야에 한국 기업이 투자하기로 한 금액이다. 하지만 핵심 플레이어인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지난 6월, 광주·전남 호남권에 800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각각 2655조원, 2100조원을 국내에 투입하겠다는 거대한 구상이었다.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건네며 기반 시설 비용의 전액 국비 지원을 약속했다.


문제는 이 광경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선이다. 미국은 표면상 침묵을 지키면서도 행동으로 압박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된 메모리 반도체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고율 관세를 때릴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고(7월 14일), 칩스법(CHIPS Act) 보조금의 대가로 삼성전자의 신주 발행까지 요구했다(7월 19일). 러트닉 상무장관 역시 삼성과 SK를 직접 거론하며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끌어오고 싶다"라고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냈다. 심지어 미 7공군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지인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를 두고 군사적 이해관계를 운운하며 간접적인 경고등을 켰다.


결국 한국 정부와 대기업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는 뒷전으로 미룬 채 국내 투자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미국이 ‘양두구육(羊頭狗肉)’ 혹은 약속 파기로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여기에 7월 24일 무역법 122조에 기반한 10% 임시 관세가 만료됨과 동시에, 미 상무부는 무역법 301조를 적용해 '강제노동'을 빌미로 한국을 포함한 60개 경제 주체에 10~12.5%의 신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역법 301조의 ‘구조적 과잉생산’ 평가를 통한 관세 부과도 뒤를 이을 것이다. 또다시 관세 폭탄의 파고를 넘어설 지혜가 시급해진 것이다.


두 번째 암초: 2027 미국 국방수권법(NDAA)과 '중국 영향력'이라는 칼날


두 번째 암초는 미 의회가 매년 입법하는 국방수권법(NDAA)에 있다. 현재 상·하원 상임위를 통과한 2027년도 국방수권법 보고서에는 매우 이례적이고 섬뜩한 항목이 들어앉아 있다. 바로 '대한민국 내 중국공산당의 악의적 영향력 평가(Assessment of Chinese Communist Party Malign Influence within the Republic of Korea)'라는 조항이다.


하원 보고서는 보다 구체적인데 주한미군 인력 및 시설에 대한 중국의 정보·안보 위협, 한국 내 중국 기술기업의 성장이 갖는 방위 위협 요소,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 등을 2026년 12월 1일까지 보고하라고 명시했다. 상원 보고서 역시 유사한 내용을 2027년 5월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결국 양원 합의를 거쳐 내년 봄에는 한국 내 중국의 입지에 대한 미 국방부의 종합 보고서가 세상에 노출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건국 250주년 연설에서 공산주의를 '암(Cancer)'으로 규정하며 6·25 전쟁 당시 미군과 중공군이 혹한 속에서 사투를 벌였던 '장진호 전투'를 직접 언급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미 의회가 한국 내 중국 기술기업과 영향력을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한국 정부에 확실한 진영 선택을 강요하는 서막이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이재명 정부로서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외교적 외나무다리에 선 격이다.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만 무스카트 항에 유조선들이 정박해 있다.(자료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세 번째 암초: 호르무즈 해협과 동맹의 '무임승차' 시험대


세 번째 암초는 중동의 거친 바다에 잠복해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수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까지 홍해 봉쇄에 나서며 중동 정세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량은 80% 이상 급감했고 수에즈 운하를 잇는 홍해 항로가 막히면서 유럽행 물류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위기에 놓였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원유 대부분을 중동에서 들여오는 우리의 상황을 감안하면 호르무즈 봉쇄는 국가 경제의 혈관이 막히는 생존의 문제다. 이에 미국은 '해양자유연합(MFC)' 구상을 발표하며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군사·경제적 참여를 촉구했다. 최근 이란 전쟁이 다시 확전되면서 미국이 우리의 참여를 더욱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오고 있다. 반면 유럽국가들은 외교적 관리를 중시하는 '호르무즈 항행 이니셔티브'를 따로 추진 중으로 우리 정부는 일단 유럽 주도의 이니셔티브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 해군이 호르무즈까지 달려가 상선을 직접 호위하기란 여건상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군이 피를 흘리며 지켜온 해상 안보의 혜택을 수십 년간 누려온 한국이, 동맹이 위기에 빠진 순간에도 뒷짐만 지고 있는 모습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동맹이란 비가 올 때 우산을 함께 쓰는 관계다.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파도를 헤쳐나간다)’의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당장 직접적인 군사 파병을 못 하더라도, 외교적 지지 선언이나 경제적 비용 분담 등 가능한 영역에서 성의를 보여야 한다. 무임승차국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한미동맹의 뿌리는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


단기적 실리를 넘어 선,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전략적 결단


2026년 하반기, 대한민국 외교는 거대한 세 개의 암초를 돌파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는 미·중의 전략적 패권 경합과 각자도생의 이기주의가 뒤얽힌 '복합세계(Multiplex World)'다. 패권국이 국제 사회의 공공재 비용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동맹에게 분발을 요구하는 시대다.


이재명 정부 외교의 핵심 슬로건은 '실리'다. 하지만 진정한 실리는 당장 눈앞의 소나기를 피하는 단기적 눈치 보기가 아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원칙을 바로 세우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수호하는 축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장기적 포석이야말로 진정한 국익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미·중 대립 구도에서 눈치나 보는 약소국이 아니다. 우리의 결정이 국제 정세의 물길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국력과 위상이 올라섰다. 직면한 세 개의 암초를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항해의 키는 다음 세대의 자유와 풍요를 지키고 증진해 나가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전략적 결단에 있다.



글/이인배 한반도미래포럼 수석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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