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주소지’ 옮긴다고 지방 안 살아난다 [기자수첩-금융]

배수람 기자 (bae@dailian.co.kr)

입력 2026.09.11 07:06  수정 2026.09.1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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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수렴 없는 졸속 이전 추진

금융노조 반발만 거세져

물리적 분산, 1차 이전 실패 답습

금융 집적효과 및 지역 자생 방안 고려해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공공기관 이전 및 공공기관 기능개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1차 공공기관 이전 후 10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게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기관만 덜컥 내려보내니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왔다 갔다 고생만 하는 겁니다. 서울을 떼 놓고 무언가를 할 환경이 아니에요.”


1차 지방이전으로 지역 혁신도시에 둥지를 튼 한 공공기관 임직원의 말이다.


최근 정부의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지방 이전 문제는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노조는 물론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노조까지 가세해 일방적인 이전 계획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을 지역 곳곳으로 분산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침체한 지방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겠단 구상이다.


‘지방 소멸’이 더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닌 만큼 ‘지역균형발전’은 정부가 내려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에 정부는 선도기관을 중심으로 지방 이전 작업에 착수하도록 속도를 끌어올린단 계획이다. 수도권 잔류는 사실상 ‘제로(0)’로 만들겠다는 대통령 지시도 고삐를 당겼다.


금융권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아직 관련 법 개정도, 구체적인 이전 기관 언급도 없었지만, 정치권 안팎으로 금융기관의 지방 이전 언급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방향성은 공감한다. 하지만 과정이 잘못됐다.


기업은행은 대구로,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부산·나주로, NH농협은행은 호남으로 보낸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아쉽지만 원칙도, 논리도 충분치 않다.


가령 제조업의 경우 지방의 넓은 부지와 물류망을 활용하면 이전하더라도 곧장 공장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반면 금융은 기본적으로 자본과 정보, 인력이 촘촘하게 얽혀 작동하는 대표적인 네트워크 집적 산업이다.


국내외 대기업 본사와 민간 금융사, 글로벌 투자자를 비롯해 금융당국, 주요 정책 부처가 모두 서울, 수도권에 밀집한 데다 수시로 협업이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국책은행과 금융 공공기관만 따로 떼어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건 정부가 나서서 물리적으로 네트워크를 단절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이로 인한 정보 비대칭과 행정 비효율은 우리 금융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 인력 이탈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의가 있던 2022~2023년 연간 퇴사자는 100명 수준으로 확대됐다. 평소 30~40명에 그치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었다.


숙련된 인재들이 빠져나간 금융기관이 지금처럼 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 지방에 내려가 제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할지도 의문이다.


기업이 떠난 자리에 덜컥 은행 문을 연다고 지역 경기가 살아날 리도 만무하다.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 153곳의 기관이 지방 곳곳으로 흩어졌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장기간 추진된 프로젝트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2023년부터는 혁신도시 인구가 수도권으로 순유출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정부는 10~11월 중 구체적인 이전 계획을 발표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난 상태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방 이전을 거스를 수 없다면, 이제라도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정교한 맞춤형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어디로, 누구를 보낼 것인지가 아니라, 자생할 수 있는 금융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1차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값비싼 수업료를 충분히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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