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앤하이드' '더 라스트맨' 등 1인극 젠더리스 캐스팅 잇따라
"성별 배제하고 실력과 서사로 승부...관객에도 다층적 경험 제공"
연극 ‘지킬앤하이드’ ‘화이트래빗 레드래빗’, 뮤지컬 ‘더 라스트맨’ 등 현재 공연 중이거나 공연을 앞둔 1인극 무대에서 성별의 경계를 허문 캐스팅이 이어지는 추세다. 이는 단순한 기획을 넘어, 1인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젠더리스라는 문법을 수용하는 최적의 그릇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뮤지컬 '더 라스트맨' ⓒ주식회사 네오
최근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2차 공연(6월9일~8월9일 링크더스페이스 1관)을 앞두고 정민, 주민진, 김려원, 홍나현 등의 캐스팅 라인업을 공개했다. 이에 앞선 1차 캐스팅에도 김지온, 홍승안, 김이후, 김찬종이 생존자 역을 나눠 연기하는 등 캐릭터가 특정 성별의 전형성을 따르지 않도록 했다.
작품은 좀비 사태 속 방공호에 홀로 남겨진 ‘생존자’의 사투를 다룬다. 성별을 부차적으로 둔 캐스팅 덕분에 공포와 고독, 생존 욕구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관객들 역시 다회차 관람을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다. 1인극 형식이 성별 고정관념을 제거하면서,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다층적 경험과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이처럼 젠더리스 캐스팅은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관객은 배우가 남성인가 여성인가를 따지기보다, 그가 마주한 당혹감, 생존 본능, 내면의 고뇌 등 인간 보편의 정서에 집중한다. 성별이라는 사회적 프레임이 제거된 자리에 배우의 역량과 텍스트의 본질만 남게 되는 원리다.
이는 익숙한 서사에서 낯선 긴장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대표적으로 ‘지킬앤하이드’를 들 수 있다. 최근 ‘지킬앤하이드’는 신의정, 최연우, 전성민, 장보람 등 여성 배우를 내세운 캐스팅을 공개했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퍼포머 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배수빈, 정동화, 정욱진, 차정우의 바통을 이어받아 6월 12일부터 8월 23일까지 링크더스페이스 2관에서 같은 역할을 연기한다.
ⓒ(주)글림아티스트
이들이 연기할 퍼포머 역은 오랫동안 남성형 악인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지킬과 하이드를 비롯해 어터슨, 엔필드, 래니언, 경관, 목격자 등 무려 15개의 역할을 소화한다. 이때 관객은 기존의 전형성을 탈피한 새로운 인물의 결을 마주하게 된다. 성별이라는 외피를 걷어냈을 때 인물의 심연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역설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배우와 작품 측면에서도 젠더리스 캐스팅은 실질적인 효용을 가진다. 배우에게는 특정 성별에 고착된 배역의 한계를 부수고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남성용 배역’ 혹은 ‘여성용 배역’이라는 칸막이를 없앰으로써 배우가 가진 본연의 에너지만으로 무대를 장악할 수 있는 영토가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앞서 공연된 연극 ‘보이스 오브 햄릿’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의 사례를 통해 이미 가능성을 증명한 바 있다. 과거에는 실험적인 시도로 여겨졌던 젠더리스 캐스팅이 이제는 1인극 제작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한 공연 관계자는 “1인극 무대에서 가속회된 젠더리스 경향은, 특정 배우의 인지도나 화제성에 기대는 일시적 흐름을 넘어선다. 서사의 밀도를 높이고 작품의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한 효율적인 문법으로써 선택되고 있다”면서 “성별을 배제하고 실력과 서사로 승부하는 방식을 1인극 무대의 외연을 넓히고 배우들의 무대 기회를 넓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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