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시선보다 내 속도대로”…김민하, 부국제 사로잡은 스토리텔러 [31st BIFF]

데일리안(부산) =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10.08 21:11  수정 2026.10.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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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제 개막식 사회부터 '낮과밤은 서로에게' '꿀알바'까지 공개

"'파친코' 이후 1년 공백...나를 객관화하는 시간 필요했다"

“스무 살 때부터 학생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놀러 오면서, 언젠가 저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배우 김민하가 오랜 꿈이던 액터스 하우스 무대에 올랐다. 김민하는 8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 문화홀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해 관객과 만났다. 그는 “초대를 받고 얼떨떨하기도, 놀라기도 했고 내가 할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도 했다”며 “그래도 기쁜 마음이 가장 컸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민하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얼굴이다. 개막식 단독 사회를 맡았고,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와 ‘온 스크린’ 부문 초청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꿀알바’의 주연으로 부산을 찾았다. 그는 “개막식 사회자로 무대에 오르기 직전엔 엄청 긴장할 줄 알았는데, 레드카펫을 걷고 나니 오히려 차분해졌다”며 “무대에서는 재미있었던 기억이 크다”고 돌아봤다. 이어 “객석에 앉아 있을 땐 흘려듣기도 했는데, 직접 화자가 되니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며 “그 뒤로는 누구의 말이든 더 집중해서 들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배우 김민하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꿈이 있기에 현실이 더 값지다”


전날 열린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친언니와의 통화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영화제에 오면 현실에서 떨어져 구름 위에 있는 기분이 든다”며 “언니에게 ‘꿈꾸는 것 같아서 내일 다시 촬영하러 현실로 돌아가는 게 두렵다’고 했더니, 언니가 ‘꿈을 꾸기 때문에 지금 현실이 더 값진 것’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촉촉한 꿈 한 스푼 정도가 있어야 폭신폭신한 카스텔라를 유지할 수 있다”며 “꿈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한 카페를 배경으로 네 쌍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로만 채워진 작품이다. 김민하는 친구에게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진을 연기했다. 그는 “나도 재미있는 꿈을 꾸면 일기장에 적고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며 “대본이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또 그는 “오래전부터 김종관 감독님의 팬이라 GV를 쫓아다니고 단편까지 다 찾아봤다. 공교롭게도 첫 촬영 날이 내 생일이었다. 소망하면 이뤄지는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꿀알바’는 시급 50배부터 시작하는 고액 아르바이트만 소개하는 수상한 인력사무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는 “판타지, 호러, 스릴러, 블랙코미디가 다 담긴, 한국에서 보지 못한 장르”라며 “상업 작품에서 보여드리지 못했던 날것의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고 자신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파친코’ 이후 1년간 멈춘 이유


김민하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애플TV+ ‘파친코’ 이야기도 이어졌다. 그는 “2020년 촬영 직후 업계에서 ‘파친코에 아무도 모르는 신인이 캐스팅됐다’며 예상치 못한 주목을 받았다”며 “그래서 1년간 쉬었다. 소속사도 찾지 않고 작품도 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나를 객관화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때 조급하게 일을 시작했다면 지금의 길은 없었을 것”이라며 “들뜬 나를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가 걸러내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당시의 부담도 솔직하게 꺼냈다. 그는 “하루아침에 주목받는 게 처음이라 정말 무서웠다”며 “‘생각보다 잘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기대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파친코’ 이후 해외에서만 활동할 거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고민이었다. 그는 “한국인인데 외국인인 줄 아는 분들도 많았다. 한국에서 어떻게 다시 발을 붙이고 꾸준히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대본을 읽는 기준이 더 확고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tvN ‘태풍상사’로 처음 16부작 주연을 맡았던 경험에 대해서는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늘 무섭다”면서도 “현장이 워낙 따뜻해서 떨고 있어도 그 온기들이 안아줬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시대극을 준비하며 얻은 깨달음도 전했다. 김민하는 “시대가 달라도 인간이 느끼는 깊은 감정은 돌고 돈다”며 “선자의 시대를 산 외할머니와 IMF를 겪은 부모님께 정말 많은 걸 여쭤봤다. 처음엔 ‘그냥 그랬지’ 하시다가도 두 시간을 신나서 말씀하시더라”고 했다. 이어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기억과 감각은 되돌릴 수 있다. 그런 순간을 선사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보여지는 것보다 내 속도대로, 50~60년”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하나 코리아’에서 연기한 북향민 해선에 대해서는 “대본을 읽었을 때 누가 나에게 편지를 써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해선이 화장품 매장에서 틴트를 고르며 망설이는 장면을 꼽으며 “그런 사소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귀한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많이 놓치고 지루해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개를 앞둔 작품이 줄줄이 이어지는 데 대한 고민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쉼 없이 작품을 하다 보니 이전 작품의 말투가 습관처럼 나올 때가 있다”며 “예전엔 내가 나온 작품을 잘 못 봤는데 이제는 공부하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쟤 좀 그만 나오라’ 하실까 봐 걱정한 적도 있지만, 요즘은 워낙 빨라서 안 하면 잊힐 것 같아 열심히,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말해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배우로서의 버킷리스트를 묻자 영화 ‘루시’ 같은 SF 액션과 ‘매드맥스’처럼 여성 인물이 시원하게 뿜어내는 액션을 꼽으면서도 “버킷리스트라기보다는 50~60년 쭉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김민하는 연기를 시작할 때와 달라진 점으로는 ‘남의 시선’을 들었다. 그는 “처음엔 남의 시선이 가장 중요해서 내 가치관이 뭔지도 모른 채 연기했고, 쉽게 우울감에 빠지거나 무너지기도 했다”며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먼저 알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텅 빈 상태로 휩쓸리는 건 전혀 다른 일이더라”고 했다. 더해 “한 방을 노리기보다 내 속도대로 꾸준히 하다 보면 좋은 기회를 만날 거라 믿는다. 그 속도를 지키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점점 더 선명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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