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서 관객과 만나
'대도시의 사랑법'부터 '유미의 세포들'까지
배우 김고은이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 무대에서 지난 14년의 연기 인생을 되짚었다.
김고은은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 문화홀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해 관객과 만났다. 그는 “지난해에는 다리를 다쳐 직접 오지 못했는데, 올해는 찾아뵐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쁘다”며 “액터스 하우스는 처음인데 여러분을 만날 생각에 너무 설렜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부산은 열정의 도시라 올 때마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대도시의 사랑법’ 재희, 날것의 인물…세상에 꺼내놓고 싶었다”
가장 먼저 꺼낸 작품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었다. 출연을 결정한 뒤 2년 반가량 촬영이 미뤄졌던 작품이다. 김고은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재희는 날생선처럼 푸닥푸닥한, 날것의 인물이었다”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기방어가 보였고, 20대의 시행착오를 막 겪어내는 모습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재희를 보면서 좋은 언니가 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희가 좋았다”며 “이 인물을 세상에 꺼내고 싶었고,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희와 같은 2010년 대학에 입학한 동갑내기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20대를 지나는 모든 사람이 비슷한 불안감, 망망대해에 떠 있는 기분을 느낀다”며 “재희를 연기하며 내가 느껴왔던 감정이라는 공감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작품 보는 시선, 선배들에게서 배워"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서 20대부터 40대까지를 연기하며 분장에 크게 기대지 않은 이유도 밝혔다. 김고은은 “주변의 40대 선배나 언니들을 보면 분장을 했다고 할 만큼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갑자기 분장을 하는 건 현실과 떨어지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직업이 아우라를 바꾼다고 봤다”며 “30대의 은중은 현장에 뛰어드는 터프한 PD, 40대는 한발 물러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고 말했다.
작품 전체를 보는 시선은 선배들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그는 “서툰 나에게 큰 역할이 주어졌을 때 선배님들이 ‘이 신은 네 목적성이 뚜렷하니 네 장면’이라고 짚어주셨다”며 “그런 것들이 쌓여 내 캐릭터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과 조화를 이루는 눈을 가장 절실하게 키우고 싶어졌다”고 돌아봤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모은의 숏컷, ‘반대 의견’까지 준비해 제안
캐릭터의 외형을 직접 설계하는 과정도 공개했다. 김고은은 “대본을 다시 읽으면 첫 이미지가 그려지고, 대본을 파봤을 때도 납득이 되면 감독님께 제시한다”며 “반대 의견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답까지 준비해 간다”고 밝혔다. ‘자백의 대가’ 모은의 숏컷이 대표적이다. 그는 “감독님이 너무 세 보이려는 콘셉트로 보일까 걱정하실 걸 미리 알고, 오히려 목선이 다 드러나 연약해 보일 거라는 답을 준비했다”며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아이가 어떻게 사람을 죽였을까 하는 생각이 더 들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모은을 사이코패스로 접근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오지로 의료 봉사를 다닐 만큼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정작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기혐오로 무너져 내린, 감정이 고장 난 사람이라고 설정했다”고 말했다.
‘파묘’의 무당 화림에 대해서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멋있는 인물이라 어설픔이 조금도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프로들 사이에서도 유독 프로페셔널한 사람은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 미세함이 캐릭터를 만든다고 봐 작은 제스처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힘듦 외면하지 않아...스스로에게 시간 줘야”
배우로서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식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촬영 전까지는 나를 많이 괴롭히지만, 현장에서는 풀어준다”며 “큰 감정신을 앞둘수록 더 웃고 장난을 친다. 에너지를 응축해 뒀다가 들어가는 순간 집중한다”고 했다. 이어 “나를 여유롭게 내버려 두는 것도 큰 용기”라며 “배우가 여유로워야 수많은 스태프와 현장에 도움이 되고, 예상치 못한 디렉션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김고은은 “어릴 땐 ‘그게 뭐가 힘드냐’며 나를 몰아쳤는데, 안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 힘든 줄 알았던 게 쌓여 엉뚱한 데서 터지더라”며 “외면했을 뿐 없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는 힘듦을 봐주고 나에게 시간을 준다”고 털어놨다. 작품이 잘 안 될 때는 “일부러 잘한 부분을 찾아 돌려보며 스스로 칭찬해준다”고도 했다.
“'유미의 세포들' 유미, 나의 30대를 열어준 작품”
5년에 걸쳐 시즌3까지 완주한 ‘유미의 세포들’은 “나의 30대를 열어준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김고은은 “시즌2 반응이 좋았으니 그만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사실 반대도 했다”며 “체력적으로 벅찼지만 하길 정말 잘했다. 감독님과 5년을 호흡해 눈만 봐도 아는 관계에서 오는 힐링이 있더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청룡시리즈어워즈 대상 수상 소감을 언급하자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주어지는 일도 언제까지나 주어지는 게 아니고, 일 안에서 끊임없이 증명해야 그게 다음 일의 발판이 된다”고 답했다. 이어 “내 안에는 아직 새로운 내가 많다. 계속 궁금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료들에게 다가가는 비결로는 ‘관찰’을 꼽았다. 그는 “리딩이나 미팅 때는 경청하고, 물어보시기 전까지는 내 얘기를 하지 않는다”며 “한번 다가가면 확 열리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배가 되고 보니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후배는 오히려 불편하더라. 나 같은 후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너스레를 떨어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김고은은 마지막으로 “지난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는 것 자체를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며 “기회가 된다면 마음에 와닿는 작품을 더 남기고 다시 이런 자리를 갖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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