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상자 말고 봉지에"…고물가에 가벼워진 추석 장바구니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입력 2026.09.22 16:22  수정 2026.09.22 16:25
G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

선물세트 대신 낱개…달라진 소비

가격 상승에 한우 대신 수입산으로

계란 한판 7000원대…소비자 부담

재료값 널뛰자 차라리 반찬 구매

추석 명절을 이틀 앞둔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경동시장 전경. ⓒ데일리안 김찬주 기자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시장에는 명절 장보기에 나선 시민들의 목소리와 손님을 맞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뒤섞이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한가위 풍경이 펼쳐졌다.


다만 분주한 발걸음과 달리 장바구니 속 물건은 가벼워 보였다.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필요한 만큼만 봉지에 담아가는 소비자들이 눈에 띄었다. 일부 상인들은 평소라면 상자째 내놓고 팔던 과일을 낱개로 소분해 판매하는 모습도 보였다.


추석 명절을 이틀 앞둔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경동시장 농수산물 코너 안쪽 과일가게 매대에서 시민들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데일리안 김찬주 기자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정모씨는 "경기야 어쨌든 명절엔 과일 상자가 잘 팔리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좀 유별나다"며 "물가가 많이 올라서 손님들도 사과 몇 개, 배 몇 개처럼 낱개로 달라는 요청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과일가게 매대 곳곳에서는 평소라면 가장 앞에 진열됐을 과일 상자들이 홍옥 3개·5개 '만원', 신고 배 3개 '만원' 등 크기별로 소분된 바구니 뒤로 밀려나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50대 이모씨는 "이것저것 사야 할 건 많은데 물가가 너무 올라 세트로 구매하는 건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딱 20만원 예산 안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낱개로 조금씩 여러 종류를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추석 명절을 이틀 앞둔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경동시장 농수산물 코너 일대 과일가게 매대에 사과가 진열돼 있다. ⓒ데일리안 김찬주 기자

실제 소비자들의 소포장 선호는 관련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농촌진흥청의 추석 농식품 소비 행태 조사에서 응답자의 62%는 대용량 상자 상품보다 낱개·소포장 상품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고물가에 따른 명절 소비 심리 위축은 과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정육점에서는 한우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은 수입산 소고기를 찾는 소비자들이 눈에 띄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등심 100g 기준 수입산은 3500원, 한우는 1만5000원으로 5배 가량 차이가 난다"며 "이번 추석 때는 손님들이 명절이라고 무조건 한우를 찾기보다 가격을 먼저 보고 고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17일 기준 한우 1+등급 등심의 9월 평균 가격은 100g당 1만3330원으로 지난해보다 15.6% 올랐다. 평년과 비교해도 13.8% 높은 수준이다.


정육점에서 만난 40대 여성도 "한우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양지나 설도 같은 국거리용 소고기도 수입산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추석 명절을 이틀 앞둔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데일리안 김찬주 기자

한우 가격 상승에는 사육 마릿수 감소가 영향을 미쳤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9월 한우 사육 마릿수가 321만8000마리로 전년보다 3.3% 줄었으며, 12월에는 315만6000마리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도축 마릿수도 86만4000마리로 전년보다 8.8%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계란 가격도 명절 장바구니에 부담을 주는 품목 중 하나다.


50대 최모씨는 "다섯 가구가 모여 전 몇 종류 부치려면 계란이 최소 3판은 필요한데, 요즘 가격을 보면 예전처럼 넉넉하게 사기가 어렵다"며 "고깃값, 채소값에다 계란 값까지 오르니 차례 음식 하나 준비하는 데도 돈이 꽤 든다"고 말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이달 기준 특란(XL) 30구 평균 소비자 가격은 7181원으로 전년 대비 7.4% 올랐다. 상반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따른 살처분으로 생산량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추석 명절을 이틀 앞둔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경동시장 내 계란을 판매하는 가게. ⓒ데일리안 김찬주 기자

명절 음식 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반찬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재료를 따로 사서 요리하는 비용뿐 아니라 조리 시간까지 고려하면 반찬가게에서 필요한 음식만 사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시장 내 반찬가게를 찾은 40대 이모씨는 "전을 직접 부치려고 재료를 하나씩 사면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며 "이번 추석 기간이 짧아 가족 모두 모이지 않아서 먹을 만큼만 사 먹는 게 낫다"고 말했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은 "전이나 나물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만 따로 구매하는 손님들이 많다"며 "재료값도 올랐고 집에서 직접 만들려면 시간도 들어가니 필요한 것만 사가는 것"고 말했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전국 만 20~69세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추석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지출에 "매우 부담된다"고 답한 비율은 60.8%로 지난해 51.2%보다 9.6%포인트 높아졌다.


추석 상차림 비용도 지난해보다 올랐다. 전문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추석을 앞두고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차례상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30만2500원, 대형마트 39만7700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1.2%, 1.6% 오른 수준이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시장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여전했지만 소비 방식은 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과일은 상자 대신 낱개로, 소고기는 한우 대신 수입산으로, 명절 음식은 직접 만드는 대신 필요한 것만 사는 식이다. 고물가가 명절 장바구니의 구매 단위와 소비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개인별 명절 장보기 예산은 예년과 비슷해도 살 수 있는 물건은 줄었다"며 "소비자들이 구매량과 품목을 줄이는 방식으로 물가에 대응하면서 명절 소비 방식도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현장'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김찬주 기자 (chan720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