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대화로 그린 삶과 관계…김민하·주종혁·한선화·장률·심은경 한자리에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려한 규모 대신 작고 사소한 순간을 들여다보는 영화에 첫 자리를 내줬다. 김종관 감독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다. 제한된 공간과 네 번의 대화로 완성한 작품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제작 규모와 무관하게 의미와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며 개막작으로 선택했다.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 기자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김종관 감독을 비롯해 배우 김민하, 주종혁, 한선화, 장률, 심은경, 전소영, 김동휘와 정지혜 프로그래머가 참석했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하나의 계절이 흐르는 동안 한 카페에 머물다 간 사람들의 대화를 담은 작품이다. 네 개의 에피소드가 같은 공간을 거쳐가며 저마다의 관계와 감정을 펼쳐놓는다.
김종관 감독· 김민하· 주종혁· 한선화· 장률 ·심은경· 전소영· 김동휘ⓒ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정지혜 프로그래머는 개막작 선정 배경에 대해 “지난해와 재작년에는 제작 규모 측면에서 올해보다 큰 작품이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제작 규모와 무관하게 이 작품이 가진 의미와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고 밝혔다.
그가 주목한 것은 김종관 감독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영화 세계다. 정 프로그래머는 “한 창작자가 굉장히 고심하고 꼼꼼하게 설계해 자신만의 감성과 세계를 빚어낸 작품”이라며 “제한된 공간에서 대화로 이어지는 드라마가 감성적으로 축적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개막작이 지녀야 할 대중성도 갖췄다고 판단했다. 그는 “많은 관객이 야외극장과 극장에서 두 시간 가까이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며 “감독과 배우들의 하모니, 연기의 내공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넓은 연령층이 함께 보기에 손색이 없어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종관 감독에게는 자신의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을 연다는 사실 자체가 작품이 추구한 가치에 대한 지지로 다가왔다. 그는 “우리 영화는 작고 사소한 것,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미와 아름다움에 집중했다”며 “세계적인 위상을 가진 영화제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작고 사소한 것의 중요성에 손을 들어준 것 같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는 일반적인 서사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사건을 쌓아가는 대신 네 번의 대화에 집중한다. 김 감독은 “처음 현우가 시계를 보면서 작은 세계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우리 영화도 비슷하다”며 “대화라는 하나의 단면을 확대해서 보면서 이 사람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흘러갈지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찰나의 순간을 통해 삶의 더 넓은 면을 바라보는 방식은 김 감독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작업이기도 하다. 그는 “문학에서도 짧은 순간을 묘사하면서 삶의 다양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있다”며 “우리 영화에도 그런 힘이 있었으면 했다. 관객과 깊은 관계를 맺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제목인 ‘낮과 밤은 서로에게’ 역시 네 개의 이야기를 관통한다.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과 감정, 꿈과 현실이 결국 맞닿아 있다는 의미다.
김 감독은 “첫 번째 이야기는 한 사람은 낮에, 한 사람은 밤에 있으면서도 연결돼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같은 공간에 있다가 서로가 낮과 밤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며 “인물들의 사연 안에는 그들이 만들려는 영화도 있고 꿈과 현실도 있다. 낮과 밤처럼 서로 대비되지만 연결돼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낮과 밤도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공간에 머문다. 이 영화가 서로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며 “여러 층위가 있는 만큼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이 각자의 감상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러한 여백은 배우들의 연기에도 적용됐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특정 배우를 미리 떠올리지 않고, 감정을 규정하는 지문 역시 거의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저예산 영화를 많이 만들다 보니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작업해왔다. 오히려 무언가를 명확하게 계획하는 것 자체가 나중에 빈틈을 만들기도 했다”며 “그래서 여백을 두는 걸 좋아한다. 대본 안에 배우들이 들어올 때마다 영화가 시시각각 바뀐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 말을 하면서 웃을지, 슬픈 감정일지 지시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의 해석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배우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며 “이 이야기에 어떤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 캐스팅한다. 배우가 들어오면 저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되고, 그 안에서 좋은 방향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배우들 역시 김 감독이 열어둔 공간 안에서 자신의 인물을 찾아갔다. 김민하는 오래전부터 김 감독의 작품을 좋아해온 팬이었다고 고백하며 “토론토에 있을 때 대본을 받고 너무 기뻤다. 대본을 받은 날 감독님께 이런 글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바로 보냈다. 촬영하는 날도 생일이어서 또 하나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며 “영화를 보고 나니 한 공간에서 오간 수많은 이야기가 모여 편지나 소설, 영화가 되고 큰 흐름의 파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작품을 본 뒤에는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도 되짚었다. 그는 “너무 큰 사건만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며 “소소한 행복과 작은 물결까지 생각하게 해준 또 다른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이 작품을 통해 세 번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김민하와 호흡을 맞춘 주종혁도 김 감독의 오랜 팬이었다. 그는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저녁 자리에서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보자마자 속 이야기를 다 하고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공감해주셨다”며 “대본뿐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촬영하면서 마음이 편했고 하고 싶은 것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민하의 자연스러운 연기에도 자극을 받았다. 주종혁은 “감독님께서 민하 배우가 숨 쉬듯 연기한다고 하셨다. 저도 그 톤에 맞춰보고 싶어 연구했다. 그런 과정까지 재미있었다”고 덧붙였다.
한선화에게 이날은 또 다른 의미에서 특별했다. 기자간담회 당일이 생일이었던 그는 “고향 부산에서, 제가 사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감독님의 작품과 함께하게 돼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평소 ‘더 테이블’과 ‘최악의 하루’를 좋아해 집에서 와인을 마시며 감독님의 영화를 여러 번 돌려봤다. 그 작품을 만든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말했다.
장률은 다른 에피소드와 결이 다른 대화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장면이 조금 독특하고 말의 개연성에서도 다른 특색이 있다고 느꼈다. 오히려 그 부분이 재미있게 다가왔다”며 “배우들이 연기로 채웠을 때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될지 궁금했고 행복하게 작업했다”고 전했다.
심은경에게 혜진은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역할에 더 어울리는 배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고민이 컸다.
심은경은 “저에게 없는 성격이고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라 왜 감독님께서 저에게 이 역할을 제안하셨을까 궁금했다”며 “그래도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었던 감독님이었고, 새로운 역할에 도전한다는 의미가 컸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전소영에게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배우로서 많은 것을 배운 현장이었다. 당시 두 번째 작품이었던 그는 “시나리오를 받고 제가 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했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를 때였는데 감독님과 선배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나경을 이해하는 과정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전소영은 “처음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끝내 이해할 수 있었다”며 “동휘 선배님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영화 촬영장이 처음이었는데 현장이 편안해서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동휘도 “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들을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던 감독님이었다. 작품을 찾아보며 팬으로 지냈는데 배우가 되고 나니 재미있게 본 영화를 만든 감독님의 작품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뿌듯했다”며 “소영 배우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받아 편안하게 촬영했다”고 화답했다. 김동휘는 군 입대를 사흘 앞두고 촬영을 마쳤다.
네 개의 에피소드가 도착하는 마지막 장면에는 영화와 연극을 바라보는 김 감독의 생각도 녹아 있다. 그는 작품 전체를 현실에 발을 딛고 만들어진 하나의 환상 또는 환영으로 바라봤다.
김 감독은 “꿈이나 망상, 창작, 불확실한 미래도 일종의 환영이지만 결국 현실에 기반한다”며 “영화도 하나의 무대와 같다고 생각한다. 연극에서는 스포트라이트와 벤치 하나만 있어도 그것을 가로등이라고 믿게 만들고, 관객은 이야기에 빠져들면 어느 순간 무대라는 사실을 잊은 채 인물의 추위와 고통, 기쁨을 함께 느낀다”고 말했다.
그 빈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관객의 경험이라며 “관객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읽는다, 그런 무대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생각했고, 이 영화 자체도 하나의 무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장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6일 개막해 오는 15일까지 열흘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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