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주인공이 되는 공간”…홍대 ‘틸트’가 파는 원음과 몰입 [공간을 듣다③]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9.04 11:01  수정 2026.09.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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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희 대표 "있는 그대로의 소리...'투명함'이 틸트의 정체성"

BTS·뉴진스도 다시 듣는다…대중가요의 뼈대 해부한 선곡

"1시간 동안 음악에 집중, 틸트가 파는 '집단 몰입의 상태'"

홍대입구역 인근 골목길, 내리막으로 살짝 굽어 있는 길을 따라 지하로 발을 디디면 묵직한 적막과 함께 독특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음악 중심 공간 ‘틸트’(TILT)다. 틸트는 억대 빈티지 오디오로 소리를 감싸는 전통적인 하이파이 감상실과도, 음료와 대화가 중심이 되는 일반 음악 펍과도 명확히 선을 긋는다.


오랜 시간 스튜디오 현장에서 음원을 믹싱하고 최종 사운드를 매만지는 엔지니어링 작업을 해온 김창희 대표는 지난해 틸트의 문을 열었다. 일상적으로 최고 해상도의 스튜디오 음향에 노출되어 있던 그는, 일반 대중이 창작자의 의도 그대로 소리를 마주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스튜디오에서 정확하고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늘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지인의 공간에 음향 시스템을 설치하려다 보니 건축적·환경적 제약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죠. 오늘날은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음악을 소비할 수 있지만, 소리가 지닌 고유의 부피감과 공간감이 온전히 전달될 때 음악 감상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 됩니다. 시대를 조금 거스르더라도, 음악가가 작업실에서 모니터링하는 그 정확한 소리를 온전히 들려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틸트

고가 빈티지 오디오로 소리를 풍성하게 채우는 기존 하이파이 공간들과 달리, 틸트는 왜곡 없는 원음 전달에 초점을 맞춘다. 메인 스피커는 고(故) 류이치 사카모토가 생전 애용한 것으로 알려진 동독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를 사용한다.


“하이파이 시장이 장비 매칭을 통해 소리를 따뜻하고 예쁘게 포장하는 면이 있다면, 우리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만들어진 초저역과 초고역까지 손실 없이 재생하는 장비죠. 덕분에 정교하게 잘 만든 앨범은 더없이 완벽하게 들리지만, 믹싱이 부족하거나 연주에 실수가 있는 앨범은 그 결점까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 투명함이 이 공간의 정체성이고요.”


공간의 물리적 구조 역시 철저히 소리의 몰입을 돕도록 계산되었다. 3m가 넘는 층고를 확보하고 특수 천장 흡음재를 둘렀으며, 내부 벽면에는 요철이 있는 화강암 벽돌 외장재를 적용해 자연스러운 잔향과 소리 반사를 유도했다. 특히 메인 홀로 진입하는 좁은 터널 바닥에는 국내 유일의 스페인산 ‘택타일 서브우퍼’ 진동 스피커 8개가 매립되어 있다.


ⓒ틸트

“메인 공간으로 넘어오는 터널 형식의 복도를 지날 때 저음이 나오면 바닥이 흔들리며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소리가 귀로만 들리는 게 아니라 촉각으로 확장되는 셈이죠. 또 청음을 하는 공간이 지나치게 안락하기만 하면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에, 비스듬한 슬로프와 낯선 구조를 의도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약간의 낯섦과 긴장감이 있어야 사람들의 청각이 훨씬 예민해지고 소리에 깊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픈 초기 두 달 반 동안 대중성이 낮은 난해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고집하다 겪은 시행착오는 공간 운영의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극장식 타임별 예약제를 도입하고, 대중음악을 틸트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큐레이션을 시작했다.


ⓒ틸트

“처음에는 낯선 음악만 틀다 보니 손님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김동률의 숨은 구조적 명곡들을 발굴해 들려주거나, 방탄소년단(BTS)이나 뉴진스 같은 아이돌 음악도 대중적 선입견을 걷어내고 음악적 구조의 완성도에 집중해 다시 들려줬어요. 대중음악을 다른 앵글로 제시하자 20대 젊은 층부터 중장년층까지 함께 앉아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라고요.”


75분 동안 대화와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엄격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깊은 침묵 속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치유를 경험한다.


“현대사회에서 1시간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 하나에만 집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세션이 끝나면 일상의 스트레스와 신체적 통증까지 잊을 만큼 위로받았다는 긴 후기들이 쏟아져요. 결국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외부 자극을 완벽히 차단한 채 소리에 빠져드는 ‘집단 몰입의 상태’ 그 감각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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