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레버리지에 데이고 김용범은 떠났다 [기자수첩-증권]

김하랑 기자 (rang@dailian.co.kr)

입력 2026.09.02 07:07  수정 2026.09.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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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상품 과열되자 뒤늦게 규제

김용범 사임…손실은 개미 몫?

투자 판단의 최종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그렇다고 정책을 설계하고 시장에 내놓은 정부의 책임까지 개인의 선택이라는 말로 지울 수는 없다.ⓒ뉴시스

증권가를 출입하다 보면 주식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증권사 직원부터 금융투자업계 관계자까지 매일같이 시장을 들여다보는 이들이다.


그런데 최근 만난 몇몇의 입에서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나도 레버리지에 물렸다."


처음에는 웃으며 꺼낸 얘기였지만 손실 규모를 듣고 나면 웃을 일이 아니었다.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억 단위였다.


시장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조차 이 정도였다. 상승장만 보고 뒤늦게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의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레버리지는 말 그대로 수익도, 손실도 배로 키우는 상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지난 5월 27일 국내 증시에 처음 등장했다. 기초자산의 하루 등락률을 두배로 추종한다.


삼성전자가 하루 10% 오르면 20%가량 수익을 내지만, 반대로 10% 떨어지면 손실도 20%로 불어난다.


도입 명분은 그럴듯했다. 해외에는 국내 주식을 기초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투자할 수 없다는 '규제 비대칭'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해외로 향하던 투자 수요를 국내로 돌리고 국내 자본시장의 매력과 상품 다양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도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상장 첫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16종에서만 10조원이 넘는 돈이 거래됐다.


일부 상품은 국내 전체 상장지수펀드(ETF) 중 거래대금 1위에 올랐고, 개인 투자자들은 하루에만 특정 상품을 수천억원씩 순매수했다.


문제는 손실 규모였다. 주가가 오를 때 두배의 수익을 안겨주는 구조는 하락장에서 그대로 두배의 손실로 돌아왔다.


변동성이 반복되면 '음의 복리효과'까지 발생해 장기 보유할수록 기초자산의 단순 누적수익률을 두배 한 것과 실제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금융당국도 출시 당시부터 장기투자에 불리한 고위험 상품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과열은 빠르게 나타났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16종의 시가총액은 5월 말 4조원대에서 7월 중순 11조9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 손실 우려도 함께 높아졌고, 결국 정부는 출시 두달도 되지 않아 보완책을 내놨다.


정부 스스로 "투자자 손실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음을 인정했다.


레버리지 광풍이 남긴 상처는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지난달 MBC 'PD수첩'은 레버리지 투자로 1억8000만원을 잃어 결혼 계획까지 흔들린 20대 예비신랑과 학자금 대출·카드론까지 끌어 투자한 청년 등의 사례를 다뤘다.


방송은 코스피 급락 과정에서 일부 레버리지 상품이 60% 이상, 최대 80%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


투자가 일상을 집어삼킨 사례도 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과거 전 재산과 빚을 끌어 주식에 투자했다가 약 80%의 손실을 보고 직장에서도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장이 열리는 오전 9시마다 주식에 매달리느라 반복해서 지각할 정도였다. 사람의 심리와 중독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조차 고위험 투자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그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위험한 레버리지와 선물 투자로 향하는 단계에 이르면 "투자라고 볼 수가 없고 도박"이라고 경고했다.


그 중심에 있던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1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실장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도입을 주도한 인물로 꼽히며 시장 급락 이후 책임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난 7월에는 직접 "레버리지 상품은 하락기엔 영향력이 두배로 커지는 측면이 있다"며 추가 대책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실장은 전날 사의를 표명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사표를 수리했다.


책임자가 떠난다고 정책의 결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코리아 프리미엄'을 내걸고 고위험 상품의 문을 열었고, 불과 두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투자 문턱을 높여야 했다.


그 사이 손실은 이미 투자자의 계좌에 찍혔다.


물론 투자 판단의 최종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그렇다고 정책을 설계하고 시장에 내놓은 정부의 책임까지 개인의 선택이라는 말로 지울 수는 없다.


김용범은 떠났다. 레버리지에 데인 개미들만 시장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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