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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종혁 "귀족진보를 종북 아니라면 뭐라 불러야 하나"


입력 2021.03.09 00:10 수정 2021.03.09 05:05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저자

"현실을 대통령 착각에 맞춰야 하는 나라 됐다

세계사의 흐름과 동떨어진 진보 1.0 무너질 것

보수도 품격과 책임감 더 갖춘 2.0으로 변해야"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저자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저자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해 9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이른바 '조국 흑서'가 출간됐을 때, 보수정당의 관계자는 공저자들의 용기를 높이 사면서도 "왜 현 정권 비판마저 진보 진영에서 주도하느냐"며 "보수 진영의 담론의 빈곤이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고 아쉬워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많은 보수 지지자들의 이러한 목마름을 해갈해줄 책이 나왔다. 보수의 시각으로 문재인정권의 실정을 비판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다. JTBC '뉴스현장' 앵커를 3년간 맡아 진행했던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필봉(筆鋒)을 휘둘렀다.


저자 김종혁 전 국장을 지난 4일 여의도 국회앞에서 만났다. 김 전 국장 또한 지난해 4·15 총선 참패 이후 자괴감과 패배주의에 빠져 위축된 보수 진영을 깨우는 한편 '담론의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전 국장은 현재 문재인정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력을 '귀족진보'라 명명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586 운동권들이 이미 우리 사회로부터 많은 보상을 받았는데도, 급기야 자녀에게까지 자신들의 특권을 세습하려 하는 단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는 이들 '귀족진보'의 경제·안보정책의 잘못을 낱낱이 파헤쳐놨다. 이날 저자 인터뷰에서 김 전 국장이 현 정권의 특징을 무능·위선·종북과 뻔뻔스러움으로 규정하며 "그 사람들 종북 맞다. 종북을 종북이라고 하지 못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라고 일갈하는 대목에서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저자들은 진보 진영의 인사들이었다. 보수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것은 이들에게 주어진 역할도 아니었고, 보수 지지자들 또한 그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김 전 국장은 우리 사회를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시켜온 보수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보수'라 밝히기를 주저하는 '샤이보수'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본인부터 "나는 보수다"라고 몸으로 외치는 의미로 이 책을 썼다. 자연히 길을 잃은 보수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서는 연민이, 보수 2.0으로의 거듭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목소리에는 애정이 실려 있다.


다음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의 저자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표지 ⓒ백년동안 제공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표지 ⓒ백년동안 제공

-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책 제목이 매우 흥미롭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이 4·15 총선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총선 결과를 궁금해 했는데 이렇게까지 보수가 대패하리라고는 생각 못하셨던 것 같다. 4·15 총선이 끝나고나니 여기저기서 보수의 자학(自虐)에 가까운 비판들이 제기되더라. 심지어 '보수를 더 이상 내세우지 말자' '낡은 보수를 버리자' 이런 얘기들까지 있지 않았느냐.


그것을 지켜보며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더라. 이분들이 보수를 한 번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 4·15 총선에서 진 것은 보수여서 진 게 아니라 보수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졌는데 '보수를 그만두자, 버리자'고 하느냐. 그래서 보수는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힘을 보태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제목을 뭘로 할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이야기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제목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진중권·서민 교수와 권경애 변호사, 김경율 회계사, 강양구 기자가 책을 냈는데 책 제목이 '조국 흑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였다. '귀족진보·평민보수' 등 다른 제목을 고민하다가 출판사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정하게 됐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저자들이 진보 진영에 있던 분들이 아니냐. 진보가 진보를 비판하는 것을 보며 답답하더라. '조국 사태'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담은 '조국 흑서'는 보수 진영에서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니냐. 진보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조차도 진보가 하고 있으니, 이제 보수는 '비판 능력'조차 상실해버린 것인지 자괴감이 들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진보가 진보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는 보수의 입장에서 지금 집권하고 있는 '귀족진보'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런 나라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보수 진영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 문재인정권이 벌써 집권 5년차다. 왜 이런 나라를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 정권의 책무가 안보와 경제라면, '소득주도성장'을 내걸었던 이 정권의 경제정책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었다고 보나.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것들이 대부분 다 실패했다. 문재인정부는 총체적으로 실패한 정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래로 7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모든 대통령들은 각자 집권 기간 동안 이뤄낸 성과가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중국과 수교를 했으며, KTX와 인천국제공항도 그 때 만들었다. 일산과 분당에 200만 호를 건설해 주택 문제를 해결했다.


다음으로 등장한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단행했다. 공직자 재산공개제도 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반을 닦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사태를 극복했다. 또 우리나라의 IT 산업을 발전시킨 공이 있다.


이후의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를 했고 이라크 파병을 했다. 제주강정마을 해군기지를 세우는 등 자기 진영에 반대되더라도 국익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경우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잘 극복했고 주택 시장도 잘 관리해내서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집값 파동'이 사라졌다.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도 공무원연금개혁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는데 이를 해내는 등 나름대로의 업적을 보였다.


이제 4년이 지났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 게 뭐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정부 들어 대부분의 것들이 망가졌다. 가장 크게 망가진 것은 역시 경제다.


열심히 일해서 성과가 나오면, 성과를 가지고 분배를 한다는 게 경제학의 원론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분배부터 먼저 하면 성장이 이뤄진다'는, 거꾸로 가는 것 아니냐.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고 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러면 경제가 큰일난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는 전혀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늦어도 2019년이면 소득주도성장의 과실을 딴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2019년이면 코로나도 유행하기 전인데 뭐가 이뤄졌느냐. 아무 것도 이뤄진 게 없다. 소득주도성장을 구체화하겠다며 한 게 최저임금 인상이다. 한 해에 16.4%를 올렸다.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갑자기 올리면 큰일난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는 반(反)개혁세력, 가난한 서민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기득권층이라고 공격했다.


16.4% 올리자마자 자영업자들 중에서 견딜 수 없어 폐업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아르바이트생들은 일자리를 못 구해 전전하게 됐다. 두 번째 해에 10.9% 올리더니 세 번째 해에는 2.9%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1.5%를 올렸다. 1.5%는 1988년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이래로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처음에 16.4%라는 엄청난 액수를 올려놓고 부작용이 생기니 슬금슬금 줄이다가 결국 역대 최저 인상률로 줄어드는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다.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더 이상 아무도 소득주도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국민사기극이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더 이상 소득주도성장을 입에 담지는 않지만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지표가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만은 거듭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대통령이든지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을 때와 끝냈을 때를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 더 잘 살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 정권은 사상 처음으로 집권할 때와 그만뒀을 때의 1인당 GDP를 비교하면 더 떨어지는, 국민들이 더 못 살게 되는 판국이다. 2018년 1인당 GDP 3만3340달러에서 2019년 3만1681달러로 5% 떨어졌다. 2019년은 코로나가 유행하기도 전이다.


그해는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본다"고 했던 해였는데, 그게 되지 않았다면 미안하고 부끄러워해야 정상이 아니냐. 그런데 신년기자회견에서 "우리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터무니 없는 말을 했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대통령의 귀를 붙들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가 현실을 따라가야 하는데, 우리 '문재인 보유국'에서는 거꾸로 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현실이 대통령의 착각에 맞춰져야 한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현 정권이 이상주의에 빠져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기도 하지만, 대통령부터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니 경제가 잘될 턱이 없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저자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저자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경제정책과 함께 대통령의 양대 책무인 안보정책, 대북정책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현 정권의 특징을 무능·위선·종북에 더해 뻔뻔스러움이라고 규정했다. 무능이 경제정책에서 발현됐다면 종북은 대북정책을 가리킨 것으로 보이는데 현 정권 관계자들은 언제 한 번 한반도가 이렇게 평화로웠던 적이 있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헛소리다. 기가 막히다. 지금의 평화는 김정은이 봐주고 있는 평화 아니냐. 이 정권 들어서 수소폭탄 실험까지 했다. 지금 김정은이 우리가 무서워서 도발을 안하고 있는 것이냐. 저들이 '평화'를 하고 있는 것이 문재인정권 때문이 아니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느냐. '아랫사람이 써준 것을 졸졸졸 읽는 남조선 당국자' '북에서 총소리만 나도 오줌을 저리는 당국자'… 우리 국민이 선출한 국가원수이고 국군통수권자인데 옥류관 주방장이라는 자까지 나와 '국수를 처먹을 때는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더니'라고 했다. 대놓고 조롱하는데 이게 평화라는 것이다. 저분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평화라고 돼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저들은 칼자루를 잡고 우리는 칼끝에 서 있는데 휘두르지 않으니 평화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평화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런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쓴 진중권 전 교수 같은 분은 좌파·빨갱이·사회주의 같은 단어를 쓰지 말고 현 정권을 비판하라고 한다. 종북도 그러한 단어의 범주에 들어갈텐데 괜찮은 것인가.


"그게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는 악이고 진보는 선이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혔다. 이 프레임 자체가 가짜진보, 문재인정권과 586 운동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의 3대 세습으로 주민들이 고통받으며 신음하는데 입도 뻥긋 않는 진보, 방어적인 한미연합군사훈련에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북한 핵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진보, 그런 진보가 세상에 어디 있으며 그게 무슨 진보인가. 그것은 퇴보라고 생각한다.


'종북(從北)'이라고 이야기하면 문제다? 그 사람들 종북 맞다. 북한 눈치나 보고 북한이 하라는대로 하고, 우리나라 국민이 비무장상태로 총살당해도 김정은이 사과 같지도 않은 뭘 보냈다고 하면 '이렇게 빨리 사과한 것은 처음'이라고 감읍하는 이 사람들이 종북이다.


과거 많은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정치탄압을 했던 것은 보수의 원죄가 맞다. 하지만 명백히 우리나라 국민의 생명·안위보다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고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대로 해주려는 정권이 종북이 아니라면 뭐가 종북 정권이겠느냐.


보수가 결연히 싸워야 한다. 북한의 인권과 3대 세습, 핵과 도발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당당히 내야 한다. 보수가 그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니 조롱받고 진보가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허덕인다. 종북을 종북이라고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들은 항상 언어를 가지고 사기를 친다. 보통 사람들과는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 허위의 프레임을 만들어 세상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유시민 이사장이 뭐라고 했느냐. 정경심 씨가 컴퓨터를 가져온 것을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보존이라고 그랬다. 김정은은 계몽군주가 돼버렸다. 종북을 했는데도 종북이 아니라고 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 '종북이 맞다' '종북을 종북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르느냐' 요즘 세상에 이 자체가 굉장히 용기 있는 발언 같다.


"나는 진중권 전 교수라든지 현재 진보 진영에서 파시스트화 해가는 귀족진보를 비판하는 용기 있는 분들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북한에 관한 것들에 있어서는 생각을 달리 한다.


1990년에 동·서독이 통일됐다. 이후 '슈타지'라는 동독의 정보기관 비밀문서들이 공개됐다. 서독에서 암약하는 동독 간첩이 3만 명이나 돼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언론인·작가·군인·경찰·운동선수·연예인·교수 등 서독의 수많은 인사들 가운데에서 동독 간첩과 접선하고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이 3만 명이었다.


이게 상상이 되느냐. 그 잘 살던 서독에서 '닫힌 사회'인 동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3만 명이었다. '민족'과 '이념'이 개입해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본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학생운동권 일부는 북한 간첩과 만나 노동당에 입당하고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넘어가 김일성을 만났다.


2000년 이후 햇볕정책이 시행되며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북한 간첩과 만나고 접선했는데 2000년 이후 그런 일이 딱 끊어졌겠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지 않는가. 진 전 교수가 이야기하는 과거 보수의 '빨갱이' 몰이 행태는 잘못됐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대한민국에 북한을 찬양하는 주사파·김일성주의자나 간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나이브하다. 아마 통일이 되면, 그리고 북한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 남한에서 '북조선'을 위해 뛰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드러날 것이다."


- 아까 '파시스트화' 돼가는 귀족진보라는 표현을 썼다.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되고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끌었다고 자처하는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권력을 잡았는데 파시스트화 되고 있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가. 정권을 비판하는 전단을 살포하거나, 대학캠퍼스에 들어가 대자보를 붙인 행위조차 어떻게든 처벌을 하려고 든다. 이 정권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하나.


"정권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문재인정권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586 운동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나는 책에서 그들을 '귀족진보'라 규정했다.


옛 소련에서 인민에게 권력을 주겠다고 공산주의 혁명을 했다. 그런데 노멘클라투라라 불리는 특권층이 생겨나지 않았나. 그들은 인민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들의 모든 특권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었다. 586 운동권, 귀족진보들이 노멘클라투라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을 했는지 몰라도, 정치권에 들어오면서 386·486·586으로 진화했고, 집권한 뒤에는 마침내 특권을 공고히 하는 세습귀족의 형태가 됐다.


지난 1999년에 민주화운동보상법이 만들어졌다.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수천만 원에서 10억 원이 넘는 돈까지 보상이 이뤄졌다고 알려졌는데,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아무도 자세한 내역은 알지 못한다. 지난해에는 운동권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민주화유공자보상법이라는 것을 또 발의했다.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 특혜를 줘야 하고, 기업에 입사할 때도 가산점을 줘야 하며, 병원에 가면 치료비를 제공하는 등의 내용이다. 1980년대에 운동했던 것에 대해서는 이미 보상이 이뤄졌는데, 자식들에게까지 보상을 해주라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누가 시켜서 한 것이냐. 나 역시 대학에 다닐 때 시위에 가담했다가 강제징집을 당했던 경력이 있다. 누구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상해줬는데도 끊임없이 보상을 해달라고 한다. 자식까지 보상해주라는 것은 자신들 귀족진보의 특권을 세습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 헌법정신에 따라 운동권 귀족들, 특권세력들과 싸우는 게 이제 민주시민들이 해야할 일이 됐다."


- '귀족진보' 집단을 이야기할 때 시민단체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정권을 놓쳤을 때는 시민단체에서 보수정권을 비판하며 역량을 온존하다가 정권을 잡으면 대거 시민단체에서 나와 권력을 향유한다. 워싱턴특파원을 하면서 외국의 NGO들도 많이 봤을텐데, 외국에도 이런 사례가 존재하나.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라는 것은 말그대로 비정부기구다. 정부와 거리를 둬야 시민단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시민단체는 사실 시민단체가 아니다.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보조금을 받고, 정부와 한목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가면 쓴 권력'이다. 전세계 어디에 그런 시민단체가 있겠느냐.


이 사람들은 권력을 비판한다고 하지만 전제가 있다. '보수정권이 들어설 경우' 권력을 비판하겠다는 것이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권력과 오히려 한몸으로 움직인다. 평화·반핵·반전을 내건 단체들이 북한의 인권유린·핵실험·도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한미연합훈련을 하면 일제히 비난 성명을 낸다. 이런 이중잣대가 어떻게 가능하냐. 시민단체가 아니라 권력과 함께 가는 쌍생아다.


우리나라에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시민단체가 3만3000개다. 옛날 관변단체라는 것은 사실 좀 부끄러워할 줄이나 알았다. 지금의 시민단체는 부끄러워하지조차 않는다. 내가 정의이고 선이며 옳은 일을 하는데, 악을 절멸시키려 싸우는데 왜 부끄럽느냐는 태도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악마가 얼굴에 '악마'라고 써있으면 누가 가까이 다가가겠느냐. 사기꾼이 얼굴에 '사기꾼'이라고 써있느냐. 가장 사기꾼 같지 않은 사람이 사기를 친다. 정의를 외치며 선을 외치는 사람들, '저 사기꾼들에게 속지 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실상 가장 큰 사기꾼이고 악마일 수 있다. 국민들이 그것을 아셔야 한다.


입으로 늘상 '정의'를 외치고 '선'을 이야기한다고 그 사람들이 정의며 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우리는 '조국 사태'를 통해 보지 않았느냐."


- 자식들에게까지 특권을 세습하려 드는 귀족진보 계층 언저리에 들지도 못하면서, 귀족진보들의 무능과 위선으로 인해 실상 가장 큰 피해를 보면서도 이들을 두둔하고 옹호하며 떠받드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다. 이들 '대깨문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것은 우리 사회의 시대적 상황과 관계가 있다. 이른바 586 운동권은 '승리한 세대'다.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신화적 세대다. 그 아랫세대 40대는 이들 선배들을 신격화하며 대학을 다녔던 세대다. 결국 40~50대는 198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을 거치며 진보적 분위기의 세례를 받은 세대다.


30대는 청소년 시절에 미선이·효순이 미군 장갑차 시위와 광우병 촛불시위를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다. 우리 사회의 30대부터 50대까지가 미국·유럽의 '68세대'처럼 운동적 분위기에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세대다. 586 운동권들, 귀족진보들의 프레임 작업에 이분들이 주술에 걸려 있다.


이분들이 절대 심성이 나쁘다거나 인간성이 악한 분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분들은 정말로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분들일 수도 있다. 단지 이런 분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귀족진보들의 프레임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에는 보수의 잘못도 크다. 기득권을 향유하고 즐기기만 했지, '노블리스 오블리주'와 같은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다. 내가 책을 쓴 이유도 이제는 보수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 책에 보면 이분들이 언젠가는 환상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기대한 대목이 있다. 그 시점은 도대체 언제가 될 것 같은가.


"시점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유사한 사례는 많이 있다.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이라는 것이 있었다. 모택동 어록을 들고다니며 사람들을 마구 린치해서 학살하는 시대의 광기가 있었다. 독일에서는 십수 년 동안 히틀러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깨문 현상이라는 것도 그렇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언제 정신을 차릴지 예상할 수는 없다.


다만 언젠가는 깨어날 것이다. 그 시기가 가능하면 좁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지금 이런 모습은 옳지 않다는 것을 목소리 높여 외쳐야 하는 것은 책무다. '깨어나야 한다'고, 세계사의 정상적인 흐름을 봐야 한다고 책을 쓰고 주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 책에도 세계사적으로 유의미했던 대목들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다. 세계사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던 구한말이라든지… '대깨문' 세력이 환상에서 깨어나는 게 너무 늦어지면 국권을 피탈당했던 그 시절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 위정척사파들은 보기에는 굉장히 멋있다. '상투를 자르려면 내 목부터 자르라' 지금 돌이켜보면 말이 되나. 전세계가 산업화를 하며 정신없이 변하는데, 우리만 나라 문을 걸어닫고 오랑캐와 섞이면 안된다고 하다가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80년대도 마찬가지다. 폴란드에서는 바웬사가 자유노조 운동을 시작했으며, 마침내 동구권과 소련이 무너져내렸다. 구한말과 마찬가지로 나라밖에서는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거꾸로 공산주의 사상의 백화제방(百花齊放), 좌파 사상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열렸다.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세계는 어떻게 하면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해 국민들을 먹여살리고 국제적인 경쟁에서 승리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귀족진보는 과거에 골몰하고 있다. 정적들의 목을 어떻게 칠지, 적폐청산으로 상대를 어떻게 쫓아내고 또 한 번 정권을 잡아볼지만 고민한다. 1980년대에 전세계의 흐름에 역행해 좌파의 전성시대를 열었듯이, '우리민족끼리' 북한과 같이 살자며 한미동맹을 멀리하고 국제적인 흐름과는 동떨어진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이들이 나라를 더 이상 망가뜨리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저자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저자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그런데도 4·15 총선 패배 이후 보수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고 담론조차 빈곤하다.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져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다. 미로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길을 잃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보수는 어디에서부터 길을 잃었는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건국으로부터 시작해 김일성 공산주의와 싸우고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여기까지 만들어온 나라다. 한민족이 이렇게 전세계에서 큰소리를 치며 살아온 적이 5000년 역사상 있었느냐. 이렇게 전세계 국가들이 우리의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극찬하고 문화적인 발전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시점은 달리 없었다고 본다.


일제 식민지 이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은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놀라운 것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각각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선택해서 지금은 어찌 됐느냐. 저쪽은 세습왕조가 돼서 국민을 탄압하고 저항을 억누르며 핵으로 주변을 위협하는 나라 아니냐. 우리는 자유로운 국민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라가 됐다. 그런 나라를 만든 게 보수 세력이다. 보수가 저들에 맞서 전쟁도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 경제성장도 하면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보수는 재벌가 3세 비슷하게 됐다. 아버지는 창업해서 뭘 열심히 만들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을 봤으니 아버지보다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기업을 발전시킨다. 그런데 손주는 태어나자마자 금수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주어진 것을 흥청망청 쓰다가 망한다.


우리의 보수 선배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켜오고 만들어왔는지를 다 잊어버리고 지금의 보수는 특권의 과실만을 따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저들 진보는 맨땅에서 어깨동무하며 칼을 갈아왔다. 배부른 배짱이가 된 보수가 이 꼴이 된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길을 잃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선배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세워서 지켜왔는지 다시 자각을 하고, 보수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 말씀하신대로 진보가 각종 시민단체들을 통해 맨땅에서 칼을 갈아오며 '진지전'을 한 끝에 지금 우리 사회의 요소요소를 거의 다 장악했다. 청와대와 국회는 물론이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거의 다 수중에 떨어졌다. 보수가 지금 길을 잃은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이같은 상황을 반전시킬 희망은 남아있는 것인가.


"충분히 할 수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게 세계사의 보편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개혁·개방·경쟁의 시대다. 문을 걸어닫고 '우리민족끼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세계사의 흐름과는 맞지가 않다.


두꺼운 얼음은 도끼로는 깰 수 없지만 봄이 오면 녹는다. 대깨문과 맘카페가 귀족진보에 동조한다고 해도 세계사의 흐름에 뒤떨어진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너무 커버렸다. 문을 닫아걸고서는 살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전세계의 흐름과 같이 갈 수밖에 없는 나라다.


링컨이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이거나, 소수의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했다. 많은 국민들이 허위의 프레임에 빠져 있지만, 패배주의에 빠질 이유가 없다. 4·15 총선 참패 이후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그것이다. 어차피 저쪽이 세계사의 보편성에 맞지 않아 무너지게 돼 있는데, 마치 보수가 다 죽어버린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다. 대깨문이 됐든, 전체주의적 흐름을 만들든, 586 운동권이 어떻게 나오든 지금 이게, 이 정권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러면 대한민국 보수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내가 구체적인 방향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 넘을 수 있겠지만,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대한민국 보수 1.0이 이승만의 건국에서부터 시작해 박근혜의 탄핵으로 끝났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은 기분이 나빠하실 수도 있겠지만……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이 돼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미숙함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적 성과조차 빛이 바래고, 아버지에 대한 지지조차 상당 부분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보수 1.0은 그렇게 막을 내렸는데, 반대쪽은 진보 1.0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시작된 이 진보 1.0도 문재인정권을 마지막으로 무너져내릴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의 '무덤'이 되고말 수도 있다. 진보라 칭해졌던 무책임·무능·위선·종북에 뻔뻔스러운 실체까지 국민들이 깨닫게 될 것이며, 진보 1.0에 대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사실 보수 1.0과 진보 1.0은 서로가 마주보는 거울이고 '적대적 공생'을 이어온 게 아니었느냐.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이 필요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새로운 나라가 되려면 보수도, 진보도 2.0으로 거듭나야 한다. 품격 있는 보수와 양심적인 진보가 경쟁할 때, 대한민국이 발전할 것이다.


지금은 보수 1.0은 무너져내렸고 진보 1.0의 전성시대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뭘해야 하겠느냐. 우리 보수가 먼저 보다 합리적이고 품격 있으며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보수 2.0으로 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보수와 진보의 한 판 대결이 될 4·7 재·보궐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말씀하신대로 하나의 변곡점이 될, 그런 선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결국 선택은 유권자에게 달린 것이지만 나로서는 그런 희망을 갖는다. 애초부터 보궐선거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느냐. 박원순 전 시장과 오거돈 전 시장의 문제점 때문에 발생했다. 민주당에서는 자신들의 귀책사유로 보궐선거가 열릴 경우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당헌·당규까지 바꿔가며 출마를 시켰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게 무엇이냐. 선거는 왜 열려야 하며 투표는 왜 하느냐. 응징하고 심판하기 위해 선거를 열고 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 이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암울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다만 선거라는 것에는 여러 변수가 있고, 감정이나 착각에 의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또, 이번에도 돈을 뿌린다고 들었다. 여러 외적 변수가 있는데 야당이 잘 극복하고, 국민들도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 '조국 사태'로 유명해지기 전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 집권 플랜'이라는 책을 냈다. 보수에 10년 집권을 허용할 수 없으니 2012년 대선에서 진보가 승리해 보수 정권을 5년으로 끝내겠다는 의도였다. 지금 진보정권이 5년차에 접어들었는데 보수에는 내년 대선을 겨냥한 '집권 플랜'이 없는 것 같다. 내년 대선에서의 보수 집권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진보 집권 플랜' 같은 게 보수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선 이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보수 지식인들이 사실 적지 않다. 또 이 정권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지식인들도 많다. 그런데 이분들이 샤이(Shy)하다. 스스로 보수라고 이야기하지를 않는다. 그게 보수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석에서 귀족진보가 문제라는 분들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나는 보수'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없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보면 우리나라의 지식인이란 다 진보만 있는 것 같다. 이른바 연예인도 '개념 연예인', 운동선수도 '개념 운동선수'……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진보는 선, 보수는 악'으로 프레임이 짜여져 있으니 누구도 선뜻 이야기를 못 꺼낸다.


나는 보수다. 그리고 보수가 잘못된 게 아니다. 내가 책을 쓴 것도 그러한 일환이며 촉구다. 그게 일단 하나이고 질문은 내년 대선인데, 대선 한 판 승리한다고, 대통령 하나 보수에서 만들어낸다고 그게 보수의 승리는 아니라는 것을 잘 생각해야 한다.


2007년 대선을 생각해보라. 이명박 대통령이 정동영 후보에게 530만 표 차이로 이겼다. 그 때 3등을 한 것은 이회창 후보였다. 355만 표를 얻었다. 보수 후보들이 얻은 표가 진보 후보보다 900만 표 가량이나 많았던 것이다. 그 때만 해도 다들 '노무현 이후 진보는 끝났다'고들 이야기했다.


하지만 바로 대선 이듬해인 2008년 4월에 광우병 시위를 터뜨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불과 두 달 뒤다. 길거리로 다 쏟아져나와 도심을 마비시켰다. 보수가 천만 표 가까이 되는 격차로 크게 이겼는데도, 보수 대통령 이명박은 그 이후로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겨서 지금 의석이 180석이다. 원내 우호 세력까지 합하면 200석에 가까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이 정도 의석은 없었다. 수만 개의 시민단체를 우군으로 거느리고 있다. 민노총·전교조에 대깨문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하나 보수에서 이벤트성으로 당선시켰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가겠느냐. 6개월 이내에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다. 국회에서 사사건건 물고늘어져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제2의 광우병 사태'를 만들어 시민단체에서 길거리로 쏟아져나올 것이다.


물론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보수가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진보가 180석이 아니라 280석이 있더라도, 국민의 지지가 보수에게 있으면 저들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으로 '누구를 내세우면 이긴다' 그런 논의가 벌어지기 쉽다. 그에 앞서 보수는 어떻게 변해야 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가져올 것인지 그 부분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런 고민이 없는 채로 정치공학에만 집중하다보면, 그러다가 이명박 대통령 때 '광우병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보수는 완전히 재기불능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떻게 보수의 비전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귀족진보가 망쳐놓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이 나라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세울 것인지 그런 담론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국민들은 한때 우리 보수에 대해서 그랬듯이 지금의 진보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고 잘못한 것을 심판할 것이다. 그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뒷표지 ⓒ백년동안 제공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뒷표지 ⓒ백년동안 제공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저자 김종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1962년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시절 시위를 하다가 강제 징집돼서 휴전선에서 군 복무를 했다. 1987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뒤, 사회부 '시경캡'(경찰기자 팀장)·'법조캡'(검찰·법원출입기자 팀장)을 거쳐 정치부 여당반장, 청와대 출입기자,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다.


중앙선데이 편집국장과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며 보수와 진보를 균형있게 보도하려 애썼다. 이후 JTBC로 자리를 옮겨 낮방송 '뉴스현장'의 앵커를 3년간 맡았다. 그가 직접 써서 매일 방송했던 '김앵커 한마디'는 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김종혁 지음. 백년동안 펴냄. 280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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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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