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시기로 구분할 때 가장 많이, 그리고 흔하게 쓰이는 것이 바로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다. 조선은 7년 동안의 치열한 전투 끝에 결국은 일본을 물리치고 승리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숨통만 남았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침략국인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에도 막부를 열었고, 조선과 명나라가 전쟁에 휩쓸린 사이 만주의 여진족은 서서히 세력을 키운다. 그리고 조선을 돕느라 힘이 빠진 명나라를 멸망시켰고, 그 이전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조선까지 굴복시킨다.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꾼 전쟁의 시작은 선조 25년인 서기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전선들이 대규모로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작되었다.
정발 장군 동상 ⓒ직접 촬영
간략하지만 관백이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원래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그는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사에서 또 다른 가신인 아케치 미쓰나리의 기습으로 죽자 주군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그를 공격한다. 그리고 승리를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또 다른 숙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고, 표면적으로는 일본을 통일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미천한 신분과 불분명한 후계 구도라는 약점을 지닌 그는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안정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전리품과 영지를 얻어서 측근들을 육성하고 반대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노린 첫 번째 목표물은 바로 조선이었다. 위의 기사 뒷부분에 명확하게 나와 있다.
길을 빌려달라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을 위한 명분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조선을 점령해서 중국과 인도를 공격하려는 발판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심지어는 당시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의 총독에게 편지를 자신이 그곳을 공격해서 차지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우매한 망상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일본에서는 그를 제지할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침략 준비를 마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측근인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선봉으로 삼아서 조선을 침략한다.
조선은 몇 년 전에 보낸 통신사가 엇갈린 보고를 하긴 했지만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의 성들을 수리하고 능력 있는 장수들을 승진시켜서 남쪽 지방에 배치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순신과 원균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은 조선의 예상치를 넘었다. 이전까지 일본이 쳐들어와서 분탕질을 일으킨 삼포왜변과 을묘왜란 규모로 생각했다. 하지만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왜군은 무려 15만 명이 넘었다. 부산진성을 지키던 정발은 처음에는 조공을 하러 오는 것인 줄 알았다가 숫자가 많은 걸 보고 황급히 돌아왔지만 수백 명의 병력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부산진성은 몇 시간 만에 함락되었고, 정발 장군과 휘하의 병사들과 백성들은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고 만다.
왜군은 손쉽게 승리를 거뒀지만 한편으로는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다이묘들끼리 전쟁을 하면 백성들은 도시락을 싸서 근처 산으로 올라가서 구경을 했다. 주군이 바뀐다고 해도 삶이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백성들은 병사들을 도와서 악착같이 저항한 것이다. 대부분의 병사들과 장수들은 첫 번째 전투에서 손쉽게 이겼다고 좋아했지만 통찰력있는 소수의 인원들은 조선에서의 전쟁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을 것이다.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다대포성과 동래성을 공격한다. 다대포첨사 윤홍신과 동래부사 송상현 역시 병사들을 이끌고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고 만다. 7년간 이어질 기나긴 비극의 서글픈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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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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