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매 약속에도 버려진 '스카이코비원'
'백신 주권'에 따르는 위험, 국가도 져야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겨울, 우리에게는 백신이 없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삼키기 시작한 팬데믹 초입이었다. 눈을 뜨면 아침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속보로 떴다. 확진자 동선이 공개될 때마다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불가능했다. 생년에 맞춰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기다렸다. 퇴근할 즈음에는 중환자 병상이 없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카카오톡 단체 메시지 방에서는 모두 코로나 백신 이야기를 했다. 옆 나라는 벌써 맞기 시작했다더라. 우리는 언제쯤 맞을 수 있느냐.
백신 접종은 주요국에 한참 뒤진 2021년 2월에야 이뤄졌다. 우리가 만든 백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백신 제조사들은 자국 접종에 먼저 물량을 배분했다. 수출은 후순위였다. 그해 여름엔 백신 재고가 바닥나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물량을 받아 급한 불을 껐다. 내 나라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무력감. 국민 모두가 겪은 감정이었다.
국민을 다독이느라 지친 정부도 그때부터 '백신 주권(主權)'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음 팬데믹에는 우리 손으로 만든 백신을 우리가 먼저 쓰겠다는 다짐이었다. 정부는 2028년 국산 코로나19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상용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5000억원 규모 '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지원사업'도 진행 중이다. 위기가 닥치면 200일 안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급한 불을 끄자 관심은 시들해졌고, 정부는 무성의해졌다. 그러다 업계에 부정적 학습효과로 이어진 나쁜 선례를 남겼다. 사실상 자취를 감춘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의 일이다.
당초 정부는 SK바이오사이언스에게 1000만 도즈(1회분) 선구매(APA)를 약속하며 스카이코비원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실제로 정부에 공급된 스카이코비원 물량은 60만 도즈뿐이었다. 엔데믹으로 접어들며 수요가 꺾이자 추가 주문이 끊긴 탓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초도 물량을 생산한 뒤 완제 생산을 중단했다.
이번 지원 사업은 더 막막하다. 정부의 지원 범위는 백신 ‘개발’ 사업에 그친다. 만들어진 백신을 언제 얼마나 구매할 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개발 이후의 공백은 백신 제조사에 뼈아프다. 물론 모든 기업은 모든 투자결정에서 위험을 부담한다. 하지만 백신 주권은 다르다. 정부 스스로 다음 팬데믹에 대비하겠다며 내건 약속이다. 목표를 국가가 세웠다면, 위험도 국가가 나눠 져야 한다.
좋은 길을 보여준 나라도 있다. 호주 정부는 2020년 자국 제약사 시퀴러스와 1조원(10억 호주달러) 규모의 10년 장기계약을 맺었다. 기업은 전염병을 대비하기 위한 백신 공장을 짓고, 정부는 장기 계약을 통해 그곳에서 생산되는 백신의 구매까지 보전해주는 내용이다. 당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대규모 국가 투자를 미래 팬데믹에 대비한 보건안보 투자라고 명시했다.
다시 팬데믹이 온다면 코로나19와 같은 혼란을 피할 수 있을까? 호주는 그럴 수 있겠지만 우린 자신할 수 없다. 또 다시 허둥대며 '백신 주권'을 외칠 때 만들어 놓은 문서들을 뒤적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상용화에 성공한 백신의 구매 보전을 약속하고, 팬데믹이 닥쳤을 때 국산 백신을 우선적으로 쓰겠다고 명시하지 않으면 정부 백신정책을 따를 기업은 없다. 사회적 안전망은 위기가 닥치지 않았을 때 버릴 수 있는 비용 지출까지도 감수해야만 세워진다. 그런 각오는 기업에 강요할 수 없다. 오직 국가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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